2024-04-19 23:20 (금)
인간극장 자기밖에 모르는 도예가 ‘자기’ 멋에 살다!
인간극장 자기밖에 모르는 도예가 ‘자기’ 멋에 살다!
  • 정시환 기자
  • 승인 2021.12.03 1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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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극장 자기밖에 모르는 도예가 ‘자기’ 멋에 살다!
인간극장 자기밖에 모르는 도예가 ‘자기’ 멋에 살다!

 

[스페셜타임스 정시환 기자] 낙엽이 버석거리는 가을의 끝자락, 경기도 여주의 한 작업장에는 꽃이 피어나고 있다. 흙내음 가득 찬 이 공간의 주인은 바로 도예가 박광천(68) 씨. 21세기 최고의 명작을 빚는 게 인생 최대의 목표, 거장의 마음과는 달리 겉모습은 영락없는 시골 농부. 틈만 나면 밭에 가서 삽질하고, 한겨울에도 개울에 뛰어들어 물고기를 잡는다. 게다가 생활력은 빵 점에 가까워 아내 없이는 오도 가도 못 하고, 일은 벌이는데 수습을 못 해 아내만 찾아대는 철부지 남편이다. 평생을 자기밖에 모르고, ‘자기’만 아는 남자. 도예가로서 광천 씨는 도자기 분수대와 온갖 도예 기법을 개발했고, 해외에서도 전시 활동을 하며 이름을 알린 명실상부 여주시 도예 장인. 그런 그의 곁을 실과 바늘처럼 꼭 붙어 다니는 두 명의 동반자가 있다. 

 

광천 씨보다 5분 먼저 태어난 형이자 영혼의 단짝, 박광선(68) 씨. 외모부터 성격, 행동까지 똑같고 심지어 꿈도 같이 꾸는 쌍둥이다. 어린 시절, 광천 씨는 그림에 탁월한 소질을 보였다. 그러나 농부의 아들은 농부가 되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혔고, 그런 광천 씨를 감싸준 건 다름 아닌 광선 씨. 동생이 화공이자 도공으로 자리 잡고, 현재의 위치가 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옆에서 응원해주었다. 광천 씨는 그런 형이 세상에서 제일 크게 보였다. 칠순이 가까운 나이에도 5분 거리에 살고, 매일같이 붙어 다니는 두 형제. 심심하면 개울에 가서 물고기를 잡고, 밭일하고, 철없는 행동도 함께한다. 서로가 있기에 인생이 즐겁다는데, 철부지 남편을 지켜보는 아내 속에서는 불이 난다. 

 

평생 예술가 남편의 그림자로 산 윤영애(66) 씨. 손 귀한 남편 대신 운전대를 잡고, 종일 자신만 찾아대는 남편 때문에 24시간을 대기 중이다. 일상생활은 기본, 사포질, 낙관 찍기 등 도자기 작업까지 도와주는 만능 해결사이자, 광천 씨의 길을 묵묵히 따라준, 명장의 숨겨진 공신이다. 그 세월이 편하기만 했을까, 속앓이도 많이 했다. 자유로운 기질에 애주가였던 남편은 술독을 끌어안고 친구들 집을 전전했고, 영애 씨는 밤새 찾아다니기 일쑤였다. 작품밖에 모르는 남편 때문에 생활고도 겪었다. 아들 셋 키운다는 생각으로 뒷바라지하며 이어 온 결혼생활이 어느덧 40년째. 언제 철들려나, 예술가의 아내는 고달프다. 

 

모두가 힘들다는 코로나 시대지만, 특히나 예술가에게는 고단했던 시기. 근 1년 만에 광천 씨의 작품전시회가 잡혔다. 오랜만에 찾아온 귀한 기회에 각오가 남다른 광천 씨, ‘21세기 명작’을 탄생시키기 위해 몇 차례의 실험 가마를 걸치고, 일 년에 세 번만 땔 수 있는 전통 장작가마에 불을 지핀다. 성공률은 15% 정도, 이틀간 불을 때고, 도자기를 식히는 데에만 3일이 걸리는 힘겨운 과정이지만, 그만큼 대작이 탄생할 가능성이 크기에 모험한다. 아들과 함께 개발한 도자기를 전시하기 위해 작업장의 불은 꺼질 새 없고, 밤낮으로 자기에 몰두한 광천 씨를 보살피느라 광선 씨와 순애 씨도 덩달아 바빠졌다. 꽃 한 송이를 피우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하고 외로운 길이다. 그러나, 그 길을 기꺼이 동행하는 가족들이 있기에 광천 씨는 인생을 빚으며 ‘자기’ 멋에 산다.

jjubika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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