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02:00 (금)
'인간극장' 농부와 첼리스트, 버섯 농부가 사랑한 첼리스트 그녀
'인간극장' 농부와 첼리스트, 버섯 농부가 사랑한 첼리스트 그녀
  • 정시환 기자
  • 승인 2022.04.24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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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극장' 농부와 첼리스트, 버섯 농부가 사랑한 첼리스트 그녀
'인간극장' 농부와 첼리스트, 버섯 농부가 사랑한 첼리스트 그녀

 

[스페셜타임스 정시환 기자] 독일에서 유학한 첼리스트가 농부와 사랑에 빠진 건 아마도 운명이었다. 7년 전, 어머니의 권유로 청년 농업인 모임에 참여한 임보람(34) 씨. 그곳에서 만난 이준근(31) 씬 표고버섯 농사를 짓던 청년 농부였다. 세 살 연상의 그녀에게 푹 빠졌던 24살 청년. 연애가 처음이었던 순박한 농부는 한 달 기름값이 이백만 원이 나올 정도로 불꽃 같은 사랑을 했다. 그리고 지금, 아이 셋과 뱃속 아기까지 벌써 네 아이의 부모가 됐다. 그런 농부의 마음을 사로잡은 또 다른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보람 씨가 연주하는 첼로의 선율! 표고버섯 한 우물만 파던 준근 씨에게, 새로운 꿈이 생겼다.

 

17살에 유학을 떠났던 보람 씬 재정적인 문제로 학업을 끝마치지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첼로를 놓고 다른 길을 찾아가던 때, ‘아내 덕분에 첼로의 아름다움을 알았다’라는 남편. 개인방송을 개설해 보람 씨의 연주를 알리면서, 촬영부터 편집까지 도맡아 적극적으로 외조했다. 남편으로 인해 다시 첼로를 잡기 시작한 아내. 그 곁에서, 준근 씬 문득 아내의 첼로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현악기 제작법을 배우기를 결심한 준근 씨는 둘째가 태어난 지 겨우 70일 됐을 때, 가족과 함께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나, 받아주는 곳이 없어 여러 지역을 전전했고 아일랜드의 한 공방에서 겨우 현악기 제작을 배우기 시작했다. 고되고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그러는 동안, 아내 보람 씨는 길거리 연주를 하며 가족의 생활비를 벌었다. 1년 반의 유학 후, 농부로 귀환한 준근 씨. 살림집 방 하나에 작업실을 차렸다. 낮에는 버섯을 따고, 밤에는 첼로를 잡으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 미국에서 엄청난 소식이 날아왔다. 준근 씨가 시카고에 있는 유명 현악기 제작학교의 입학 허가를 받은 것! 언 땅에 씨앗 뿌리듯 일궈가던 꿈, 부부는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그러나, 아직 넘지 못한 산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아버지였다. 이덕현(67) 씨는 아들이 농부로 살기를 바랐다. 독일로 유학 간다고 했을 땐, 호적을 판다고 했을 정도. 1년 반 만에 버섯농장으로 돌아왔지만, 혹시나 허튼짓할까 봐 불호령을 내리기 일쑤, 준근 씨는 항상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현악기 제작자의 꿈을 인정받고, 올가을 미국 유학을 떠날 계획을 세운 준근 씨.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아버지께 선포할 날짜까지 정해뒀다. 그리고 다가온 ‘그날’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겨버렸다.

 

그런데, 결전의 날 아침. 갑자기 아내가 예정일보다 2주일 빠르게 넷 째를 출산하게 되는데... 준근 씨를 쏙 빼닮은 새싹 같은 아들. 이제 네 아이의 아빠가 된 준근 씨, 다시 용기를 내어 아버지께 자신의 목표를 털어놓기로 한다. 평생 엄하기만 했던 아버지, 이번엔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서로를 만나 인생이 바뀌었다는 부부. 농부는 아내를 위한 악기를 만들고, 첼리스트는 남편을 위해 기꺼이 버섯 농부가 되었다. ‘농부 현악기 제작자’로 불리고 싶다는 준근 씨와 ‘농사짓는 첼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보람 씨. 전혀 다른 길에서 만난 두 사람은 이제 같은 꿈을 꾸고 있다.

jjubika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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