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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직격 122회 '불타는 미래, 멸종에 저항하다'
시사직격 122회 '불타는 미래, 멸종에 저항하다'
  • 정시환 기자
  • 승인 2022.06.17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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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KBS1TV '시사직격'
사진= KBS1TV '시사직격'

 

[스페셜타임스 정시환 기자] 지난 5월 31일, 경남 밀양에 또다시 화마가 닥쳤다. 5일 동안 타오른 불길은 축구장 1천 개를 합한 것보다 넓은 면적을 태웠다. 동해안을 집어삼킨 울진 산불이 발생한 지 고작 3개월 만의 일이었다. 

 

같은 시기, 경상도와 강원도 영동지방에는 유례없는 5월 가뭄 경보가 내려졌다. 강원도 지역의 올해 6월까지 강수량은 평년의 60% 정도에 그쳤다. 모내기 철을 나야 하는 농민들은 막막하기만 하다. 국제사회에서 ‘기후 변화’라는 단어는 ‘기후 위기’로 대체된 지 오래다.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는 위기의 증거들은 우리가 사는 이 땅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고 경고한다.

 

 기후위기의 최전선, 벼랑 끝에 선 사람들

 

<시사직격>은 21세기에 봉래산 정상에 올라 때아닌 기우제를 지냈던 강원도 영월을 찾았다. 고도가 높아 고랭지 배추재배로 유명한 조전리에서 만난 한 농민은 올 상반기 내내 가뭄과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작년 겨울부터 눈이 거의 내리지 않아 바짝 말라버린 땅. 봄에 심은 배추들이 자랄 시기인데, 속이 제대로 영글지 못하고 잎이 말라 올해 수확량의 절반이 상품 가치가 전혀 없다고 한다. 배추도 사람도 속이 말라간다.

 

“죽고 싶은 심정이죠. 몇 년간 농사를 잘 짓다가도, 일 년만 이렇게 흉작이 들면 후유증이 오래가요. 빚을 내서라도 또 농사를 지어야 하니까요. 한번 이런 일이 있으면 농민들은 농사를 다시 짓고 싶은 생각이 없어집니다.” -강성은 / 영월군 조전2리 배추 농가 농민-

 

어민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멍게 수확이 한창이어야 할 통영에서는 이미 두어 달 전부터 수확할 멍게가 없어 손을 놓은 곳이 태반이다. 수온 상승으로 멍게 폐사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동네에서 가장 작황이 좋다는 이종만 씨의 양식장도 5월 말에 벌써 올해의 수확을 마무리 짓고 있다. 기후위기의 피해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미 누군가는 손쓸 수 없는 재난 앞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 기후 우울증, 기후위기에 대한 두려움

 

18살 고등학생 김도현 씨는 ‘청소년기후행동’이라는 단체에서 또래 청소년과 함께 기후 행동에 참여한다. 기후문제에 관심을 가진 이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상담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커졌다는 그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선 더욱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기후문제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생소한 개념이지만, ‘기후 우울증’은 2010년대에 학계에 보고되어 꾸준히 연구가 진행되어왔다. 스웨덴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로 인해 널리 알려지게 된 ‘기후 우울증’이라는 개념은 2017년 APA 미국 심리학회지 보고서에 따르면 ‘환경 파괴에 대한 만성적인 두려움을 느끼는 상태’를 의미한다.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활동가들은 이러한 증상을 다들 한 번쯤 거쳐 가는 과도기라 말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기후 변화 앞에 사라져가는 생명에 대한 상실감과 죄책감 때문이다.

 

“기후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은 스스로가 행복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인생을 즐기는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들은 본인 스스로가 탄소를 배출하는 것에 큰 죄책감을 느낍니다.” -토마스 J. 도허티 / 미국 기후 심리학자-

 

 저항하라, 멸종은 이미 시작되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3월부터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을 시행하면서 탄소 중립을 법제화한 14번째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한국의 녹색성장 방향성을 ‘그린 워싱(위장 환경주의)’이라며 비판한다. 여전히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는 한국 기업이 투자한 석탄발전소가 지어지고 있으며, 현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이 명시하는 ‘2030년까지 2018년의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40% 감축’이라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는 기후위기를 막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작년 10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는 경로를 협의하기 위해 전 세계 197개국이 모여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을 개최하였으나, 각국의 이기심만을 확인했다는 혹독한 평가와 실망만을 남겼다. 

 

2018년 영국, 수천 명이 세계 곳곳의 주요 다리를 점거하고, 교통 시스템을 마비시키며 문제적으로 등장한 ‘멸종 반란’. ‘소멸’을 상징하는 깃발에는 동그라미 안에 모래시계가 그려져 있다. 이 행성에 사는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이 시기가 지나면 되돌릴 수 없을 겁니다. 기근과 흉작이 찾아오고 수없이 많은 종이 멸종하겠죠.” -엘레노아 루이스 홈즈 / 기후 시위 활동가-

 

<불타는 미래, 멸종에 저항하다> 편은 금요일 10시 KBS1TV <시사직격>에서 방송된다.

jjubika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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