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1:40 (금)
한국기행 - 한 번쯤 로망대로
한국기행 - 한 번쯤 로망대로
  • 정시환 기자
  • 승인 2022.09.26 16: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기행 - 한 번쯤 로망대로

 

[스페셜타임스 정시환 기자] 바쁘게 돌아가는 서울 강남 한 복판.

빽빽하게 들어선 빌딩숲 사이, 조금은 낯설기까지 한 초록 숲.

4층 건물 옥상에 자리한 양달샘 씨의 텃밭이다.

 

이른바, 옥상 농사를 지은 지 올 해로 13년 째.

각종 과실과 채소가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는데.

농사 잘 짓기로 소문난 그의 철학은 자연농법.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옥상의 특성 상 흙 대신 나뭇잎과 보리씨를 이용해 토양을 만든다.

 

이젠 베테랑 농부가 됐지만, 그의 원래 직업은 영화배우.

내일을 알 수 없는 불안한 삶, 헛헛한 마음이 들어

더 늦기 전에 한 번은 해 보고 싶은 걸 해야겠다, 싶었단다.

 

미국에서 온 누나와 매형, 조카와 옥상에서 수확한 과일과 채소로

특별한 음식을 마련해 함께 즐기는 게 농사를 짓는 즐거움이란다.

 

“부러움이라는 건 그런 거 아닐까요.

생각하면 무한대로 생기는 거고, 생각을 안 하면 하나도 없는 거고요.“

 

행복한 농부 양달샘 씨.

팍팍한 도시에서 그만의 로망을 실현하며 마음 부자로 살아가고 있다.

 

    2부. 시간이 거꾸로 가는 동네 – 9월 27일 (화) 밤 9시 30분

 

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의 한 마을.

마치 1970년대와 1980년대로 돌아간 것 같은 이곳엔

마을 곳곳, 옛 물건으로 전시돼 있다.

평범했던 마을을 드라마 세트장처럼 꾸민 주인공은 공주빈 씨.

 

이곳에서 나고 자란 그는 비어있는 시골집에도 레트로 물건을 전시해 놓으며

주말마다 찾아오는 세컨하우스로 만들었다.

그것이 그의 오랜 로망.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초등학교 동창들이 놀러 오는 날.

마을에서 46년 째 운영하고 있는 주빈 씨의 어머니 다방을 찾아

달걀노른자 동동 띄운 쌍화차 한 잔에 추억을 떠올린다.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행복했을 때가 정신없이 놀았고, 정말 걱정 없이 살던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이었거든요.“

 

시골집 창고를 국민학교(초등학교)로 꾸며놓은 그의 주말 집에서

풍금을 치고, 도시락을 먹으며 추억에 젖는다.

그런가하면, 친구들과의 오랜 로망이었던 여행을 떠나는데.

그의 32년 된 올드 카를 타고 바다에 가 전어를 먹으며 회포를 푼다.

 

팍팍한 일상으로 지칠 때,

옛 추억은 가장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

 

3부. 나의 정원 일지 – 9월 28일 (수) 밤 9시 30분

 

전라남도 순천에 자리한 대문 없는 정원.

66,115㎡ (2만 평)이나 되는 넓은 정원을 누구나 오갈 수 있도록 만든 유병천 씨.

오래 전부터 정원을 만들고 싶었다는 그.

평생 모은 재산을 정원에 쏟아 부었단다.

 

다양한 과실수와 채소를 심어 놓은 건, 오가는 손님들을 위한 것.

지나가다 들러 쉬고, 마음껏 따 먹으라는 주인장의 배려.

물론, 입장료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재미있고 행복하게 즐기다 가시면

저는 그걸로 위로가 돼요.”

 

홀로 중장비를 동원해 연못을 만들고 나무를 심는 남편이 안타까워

일손을 돕는다는 아내 김정희 씨.

정원 앞에 있는 갯벌에 나가 칠게를 잡고 음식을 해 먹으며

아내는 남편의 로망을 지켜주고 있다.

 

누구나 찾아와 마음 쉬고 가길 바란다는 유병천 씨.

그의 정원은 행복으로 채워지고 있다.

 

    4부. 주말의 고택– 9월 29일 (목) 밤 9시 30분

 

5년 전, 곰탕 먹으러 왔다 우연히 발견한 고택에 매료돼 눌러 앉았다는 부부.

연고지도 없는 전라남도 나주에 살고 있는 남우진, 기애자 부부의 이야기다.

 

멋스러운 고택이 폐가로 남아있는 게 눈에 아른거려

몇 달을 일일이 고쳐 지금은 주말 주택으로 사용 중이다.

한옥의 특성상, 때때마다 관리해야 하는 게 많다보니 자연스레 늘어가는 일.

콩기름을 발라 마룻바닥을 관리하고 정원을 돌보는 것도 부부의 몫.

하지만 마루에 앉아 바람 소리, 새 소리 들으며

차 한 잔 마시는 여유는 도시가 주지 못한 행복을 안겨준다고.

 

“이런 여유로움을 선택한 거죠.

이거 아니면 우리가 굳이 어렵고 까다롭고 불편한 한옥에서 사는 의미가 없는 거죠.”

 

비어있는 구들방은 찾아오는 객들의 사랑방.

장작을 패 뜨끈뜨끈하게 방을 데워주면 손님들은 일상의 피로를 던다.

그 맛에 불편함도 어느새 즐거움이 됐단다.

 

저녁이면 부부가 옥상 테라스에서 오붓한 저녁을 보내는데.

도시에서는 가질 수 없었던 부부만의 시간.

이런 소소한 행복이 부부가 오랫동안 꿈꿔온 삶의 로망이었단다.

주말의 그 고택에선 삶의 향기가 피어나고 있다.

 

    5부. 일 년의 반은 야외에서 – 9월 30일 (금) 밤 9시 30분

 

“떠나고 싶을 때 떠나고, 있고 싶은 만큼 있고.

혼자 조용하게 힐링하는 이 시간은 돈으로 계산이 안 될 것 같아요.“

 

멀쩡한 집을 놔두고 일 년의 반을 야외에서 사는 사람이 있다.

가구 디자이너로 일하는 이인항 씨는 언제든 마음이 원할 때면

캠핑카를 타고 발길 닿는 대로 떠난다.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이 꼭 필요했다는 것이 그의 오랜 로망.

 

그의 이번 캠핑지는 충청북도 단양.

세탁기에 샤워실 등 없는 것 없는 캠핑카가 있으니 불편함도 없단다.

여유롭게 홀로 식사를 하고, 카약을 타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하루는 조용히 보냈다면, 또 하루는 시끌벅적 친구들과 보내는 날.

친구들이 몰고 온 캠핑카까지 총 세 대.

캠핑카 세 대를 붙이고 각종 도구를 꺼내 야외 부엌을 만든다.

각종 살림살이에 감성 소품까지 줄줄이 나오는데...

어디 그 뿐일까. 요리 실력은 유명 요리사 못지않다.

밖에 나오면 더 잘 해 먹고, 살림도 더 잘 해야 한다는 게 세 남자의 철칙.

 

한 번쯤 꿈꾸는 남자들의 로망.

그들은 야외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jjubika1@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