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30 00:20 (토)
인간극장, 그 바다에 94세 청년이 산다
인간극장, 그 바다에 94세 청년이 산다
  • 정시환 기자
  • 승인 2022.10.23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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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극장, 그 바다에 94세 청년이 산다
인간극장, 그 바다에 94세 청년이 산다

 

[스페셜타임스 정시환 기자] ‘인천 송도’ 하면 십중팔구는 아파트 숲으로 둘러싸인 신도시를 떠올릴 것이다. 바다에 접해있어도 어부가 있다고는 생각지 못할 터. 20여 년 전, 갯벌을 막아 매립을 하면서 어민들 대부분은 바다를 떠났지만, 여전히 송도 앞바다를 지키는 어부가 있다. 올해 94세의 정덕성 옹은 70년 가까이 송도 앞바다에서 조개 줍고, 고기를 잡아 왔다. 사리 때만 되면 스티로폼 쪽배와 삿대에 의지해서 바다로 나가는데, 묵직한 그물을 힘차게 털어낼 땐 청년이 따로 없다. 그래도 노구를 이끌고 한 달에 절반은 바다에 나가 있으니 자식들 입장에선 걱정이 될 수밖에. 작년부터 함께 사는 딸, 정춘경(61) 씨는 아버지를 말리고 말리다 결국 그물을 걷어주는 보조가 되었단다. 숨 쉬는 그날까지 어부로 살겠다는, 정덕성 어르신. 아흔넷의 청년에게, 바다는 어떤 의미일까.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나 스물하나에 맨몸으로 피난 왔던 실향민 청년, 송도에 터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아내 덕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일꾼으로 모내기를 하러 갔던 집에서 아내를 소개받았고. 그렇게 송도 토박이였던 아내를 만나 삼 남매를 낳고, 오순도순 정을 쌓으며 살아왔다. 아내는 동네에서도 소문난 헌신적인 사람, 바다에서도 함께 손발을 맞추던 의좋은 짝꿍이었다. 고된 바다 일을 하고 와도 아내 얼굴만 보면 피로가 싹 풀렸었는데. 지난해 5월, 아내는 10년 전에 앓았던 담도암이 재발하며 손쓸 겨를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금슬이 좋았던 만큼 황망함도 컸는데. 모친상을 치르러 온 딸 춘경 씨, 맥없이 앉아 계신 아버지를 지켜보다 결국 한집살이를 결심했다.

 

그렇게 이틀 만에 아버지가 계신 송도로 온 춘경 씨. 그런데 가만 쉬는 법이 없는 아버지 때문에 덩달아 숨 돌릴 틈이 없다. 항상 시간에 쫓기는 바다 일, 종종걸음을 쳐서 고기를 잡아 오면 아버지 밥해드리느라 정신이 없는데. 아버지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텃밭으로 향하신다. 손수 흙을 나르고, 연탄재를 깨고 부숴 만든 텃밭. 좀체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아버지 탓에 나도 몰래 잔소리가 나간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후회하기도 여러 번. 작년에는 허전함에 우시는 아버지를 달래려, 툭하면 아버지와 드라이브를 다녔다.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노력 중인데. 아버지 침대맡에 좋아하시는 달달한 간식들을 챙겨드리고, 아버지가 경운기로 한 시간가량을 가던 바다를 이제는 차로 모신다. 함께 물에까지 들어가 그물을 걷는 딸, 춘경 씨는 환갑이 되어서야 아버지의 바다를 온몸으로 알아가는 중이다.

 

한 달에 보름, 고기를 잡는 사리 때가 끝나면, 덕성 할아버지가 꼭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아내가 있는 인천의 공원묘지. 생전에 그랬던 것처럼 아내와 살뜰히 인사를 나누고 나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다음에 가야 할 곳은, 저 멀리 이북 땅이 보이는 임진각. 그곳에 가 채울 길 없는 그리움을 달래본다. 스물하나에 떠나온 고향 마을, 아버지가 깨를 털던 마당, 친구들과 물장구치던 바다까지 어느 하나도 잊지 못했다.

 

“통일만 되면 경운기 끌고 고향으로 갈 거라고” 고향 바로 아래 있는 송도에 터를 잡았는데, 어느새 73년이 흘렀다. 피난을 나올 때도 배를 타고, 지금의 바다를 건너왔는데…. 바다는 고향으로 향하는 마음의 길이자 아내와 함께 청춘을 바친 기억의 창고가 되었다. 그렇게 눈물과 웃음이 녹아있는 그 바다에는, 94세의 청년이 산다.

jjubika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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