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7:50 (금)
KBS 시사기획 창, 설계자와 희생자…부동산 투기의 실체에 접근하다
KBS 시사기획 창, 설계자와 희생자…부동산 투기의 실체에 접근하다
  • 정시환 기자
  • 승인 2023.04.12 1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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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 KBS '시사기획 창'
사진 제공 : KBS '시사기획 창'

 

[스페셜타임스 정시환 기자] <시사기획 창>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고3 수험생 자녀를 둔 중년 여성을, 아이를 혼자 키우는 싱글맘을, 노모를 모시고 사는 노총각을, 내 집 마련을 꿈꾸며 밤잠을 반납하며 일해 온 젊은 청년을 만났다. 어쩌면 완전히 다른 삶을 살던 사람들, 이들은 '전세 사기 피해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확정 일자를 받는 것도, 근저당 내역을 살피는 것도, 전세보증보험을 들어놓은 것도 큰 의미는 없었다. 피해자를 위한 정부 지원책은 오히려 투자자를 도와주는 장치가 됐다. 취재진이 한 부동산 전문가에게 피해를 막을 방도는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현 제도 안에서 대책은 없습니다. 전세에 살지 말라고 권합니다."

 

전세 제도를 뜯어보니 누구든 당할 수 있는 구조였다. 당하고 나면 마땅한 대책은 없었다. 막막한 현실에 누군가는 삶을 포기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피해자들의 건축주는 한 사람이다. 건축주 남 모씨는 주로 '나홀로 아파트'와 낮은 빌라를 지었다. 빨리 완공되기 때문이다. 이 집으로 주택담보대출을 받고 세입자를 들여 전세보증금도 챙겼다. 이렇게 생긴 돈으로 또 집을 지었다. 모두 2,700채이다. 겉으론 성공한 사업가 같았지만, 그의 민낯은 사실 은행·세입자의 돈으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한 투기꾼에 불과했다. 

 

남 씨는 구속되었다.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를 것이다. 그런데 남 씨의 집에 세 들어 살던 사람들도 함께 대가를 치르고 있다.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전세보증금을 못 받고 쫓겨나고 있다. 적게는 4천만 원에서 1억 원 남짓.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다 할 수 있는 돈이지만, 이 전세보증금은 이들이 평생 모아온 전 재산이었다.

 

단지 전세시장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부동산을 자산 축적의 수단으로 삼았다. 남들보다 적은 노력으로, 남들보다 쉽게 돈 벌수 있는 도구가 됐다.  

 

사람이 살기 힘든 낡은 아파트일수록 사랑받았다. 재건축, 재개발을 기대하는 수요가 몰렸다. 조합이 설립되면, 사업비를 아껴 사회에 환원하기보다 돈 빼먹을 궁리가 더 앞섰다. 수많은 부정비리가 반복되어도 이렇다 할 처벌은 없고 그 뒤를 잇는 사람들은 '보고 배운대로' 오랜 관행처럼 굳어진 탐욕을 학습하고, 때로 진화시킨다. 

 

우리나라 무주택자는 40%에 달한다. 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전세는 맡겨놓은 보증금을 못 찾을 불안감에 빠지고, 집을 사자니 투기 세력이 올려놓은 집값에 허리가 휘청일 지경이다. 소위 말하는 '영끌'을 해서 집을 샀더니 금리 인상에 생활은 더 곤궁하다.

 

경제정의실천연합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예전엔 직장인이 연봉을 18년 동안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서울에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었다면, 지금은 그 두 배인 36년이 걸린 다고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목표에는 반칙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반칙하고 싶은 마음을 바로잡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반칙이 통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으면 된다. 우리에게 그동안 그 원칙이 있었는지, <시사기획 창>과 함께 따져 본다.

jjubika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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