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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뭐볼까? 15일~] 인간극장, 시어머니 그리고 46년 차 며느리 명숙 씨 복잡미묘한 고부전쟁
[오늘뭐볼까? 15일~] 인간극장, 시어머니 그리고 46년 차 며느리 명숙 씨 복잡미묘한 고부전쟁
  • 최선은
  • 승인 2023.05.13 1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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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간극장
사진= 인간극장

 

[스페셜타임스 최선은 기자] 충남 서산, 소문난 효부 며느리가 있다. 22살에 시집와 46년간, 며느리로 산전수전 다 겪은 강명숙(67) 씨. 그녀의 시어머니 유이석(90) 여사는 며느리 뒤 졸졸 따라다니는 ‘사랑의 껌딱지’다. 집안일을 할 때도 곁을 지키고, 외출할 때도, 심지어 한밤중 잠든 아들 며느리 방에 들어가 명숙 씨가 있는지 확인하곤 한다. 시어머니가 이런 모습을 보인 것은 불과 1년 전, 사실 이석 할머니는 며느리의 눈물 콧물을 빼던 ‘호랑이 시어머니’였다. 과연 명숙 씨와 시어머니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스물두 살, 어린 나이에 시집온 명숙 씨에게 시어머니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시집올 때 빈손으로 왔다’는 핀잔에 한없이 작아졌고, 며느리가 들어오자마자 살림에서 손을 뗀 시어머니 덕에 물정도 모른 채로 큰살림을 맡아야 했다. 게다가 7살, 5살 된 어린 시동생들까지 떠맡아 키워야 했다는데... 그렇게 자식 셋과 시동생 둘을 혼자 키웠고, 사소한 잘못에도 불호령을 내리던 시어머니가 무서워, 친정 나들이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엄한 시아버지와 매서운 시어머니, 그때 흘린 눈물을 모으면 한강을 채울 거라는 며느리 명숙 씨. 그런데 서릿발 같은 시어머니가 180도 변했다. 아흔을 넘기면서 조금씩 찾아온 노인성 치매, 눈앞에 며느리가 보여야만 안심이 된다. 그 숱한 ‘고부갈등’은 다 잊고, 사이좋은 고부 사이로 기억하는 시어머니. 그러니 원망도 한풀이할 대상도 없어진 며느리 명숙 씨는 마음이 복잡하기만 하다. 

 

시어머니는 평생 자식을 소원하던 사람이었다. 자손이 귀한 집에 시집와 명숙 씨 남편 완수 씨를 낳고, 오랜 시간 자식을 보기 위해 갖은 애를 쓰다가 겨우 늦둥이를 낳았다. 그러다 보니 이석 할머니에게 가장 소중한 건 ‘핏줄’, 명숙 씨에겐 서릿발 같았어도 손주들에게는 봄날의 햇살처럼 따스했다. 기억이 희미해지는 이석 할머니가 유일하게 며느리를 놓아주는 시간은 고기 유통업을 하는 손자들이 배달을 나갈 때.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할머니를 보다못해 모시고 다닌 것이 벌써 10년째, 이제는 이석 할머니의 가장 큰 즐거움이 됐다. 걷기도 힘들어 손자 등에 업혀 다니는 할머니지만, 트럭에 올라탈 때만은 누구보다 재빠르다. 그 시간은 사랑하는 손자들과의 낭만적인 데이트다. 좁은 좌석에 꼼짝 못 하고 몇 시간을 다녀야 하지만 힘들어하지도 않고, 오히려 활기가 넘친다. 

 

아흔의 시어머니를 모시는 67세의 며느리 명숙 씨.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일이 더 많아졌다. 평생 흩어져 산 적 없는 가족, 1년 전에는 아예 두 아들과 시동생이 합심해 동업까지 시작한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았던 땅에 고기 유통업과 캠핑장을 결합한 사업장 문을 열었다. 시어머니 모시기도 바쁜 명숙 씨는 자식들과 시동생 일을 돕느라 24시간이 부족할 지경이다. 하지만 손주바라기 이석 할머니는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아침저녁 문안 인사에 틈틈이 들여다보는 손주들 때문에 입이 마냥 귀에 걸렸다. 

 

대가족 살림 진두지휘하랴, 시어머니 모시랴, 눈코 뜰 새 없지만 46년 시집살이에 눈물이 모여 한강을 이룰 동안 자식들은 고맙게도 효자로 자라났다. ‘효부 밑에 효자 난다’는 말이 하나 틀리지 않았다. 며느리로 46년, 명숙 씨도 어느새 두 며느리의 시어머니가 되었다. 여기에 한참 어린 손아래 동서까지 있으니 명실상부한 차세대 시어머니로 등극했다. 46년 차 며느리이자 동시에 시어머니인 명숙 씨의 복잡 미묘한 고부전쟁은 계속된다. 

jjubika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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