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11:40 (목)
동행, 열세 살 히어로 민성이
동행, 열세 살 히어로 민성이
  • 정시환 기자
  • 승인 2021.04.29 2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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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동행
사진= 동행

 

[스페셜타임스 정시환 기자] 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전라북도 부안의 한 시골마을. 이곳에는 온종일 할머니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열세 살, 민성이가 있다. 한참 사춘기를 겪을 나이임에도 여전히 할머니의 곁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 민성이. 엄마가 암 투병을 하다 세상을 떠나는 걸 지켜본 이후로 가족이 아픈 게 무서운 민성이는 혹시나 할머니가 아픈 무릎과 허리로 혼자 걸어 다니다 다치기라도 할까 봐 늘 불안하다. 그래서 병원이면 병원, 시장이면 시장, 어딜 가든 짐을 모두 뺏어 들고 할머니를 부축해야 마음이 놓인다.

 

집에서도 가만히 앉아있는 법이 없다. 할머니가 집안일을 하지 않고 쉬게 하려면 자신이 부지런히 움직여 할머니의 눈에서 일거리를 모조리 치워놔야 한다고. 이렇게 하루하루 해오다 보니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꽤 늘어난 민성이. 빨래와 청소, 설거지는 물론이거니와 할머니의 떨어진 입맛을 돌아오게 하는 김치부침개를 뚝딱 만들어내는 솜씨도 보통이 아니다. 할머니와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은 민성이. 또래보다 작은 체구로 민성이는 오늘도 할머니의 히어로를 자처한다. 

 

# 보고싶은 아빠 

 

오랜 시간 암 투병을 했던 엄마를 살리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던 아빠. 하지만 3년 전, 엄마는 세상을 떠났고 아빠는 괴로움을 잊기 위해 술에 입을 대기 시작했다. 그런 아빠를 보며 함께 눈물을 삼키곤 하던 어느 날, 민성이는 알코올성 치매로 바닥에 쓰러져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는 아빠를 발견했다. 엄마를 잃은 지 1년 만에 아빠마저 중환자실에 입원한  상황.

 

다행히도 아빠는 가족의 곁으로 돌아오기 위해 열심히 병원 치료를 받고 있지만 민성이의 아빠를 향한 그리움은 날로 커져만 갔다. 코로나19로 방역수칙이 강화돼 면회를 하기도 어려웠다는데. 함께 산에 오르고 공도 차던 건강했던 아빠를 하루빨리 되찾고 싶은 민성이. 민성이는 아빠를 만나면 꼭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보고 싶었어요’, ‘사랑해요’

 

# 민성이에게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싶은 할머니 

 

엄마, 아빠에 대한 상처에도 씩씩하게 잘 자라준 손자, 민성이. 할머니는 당신만큼이라도 민성이에게 비바람을 막아주는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싶었지만 형편이 넉넉지 않다 보니 누울 자리도 겨우 마련해 주고 있는 상황이다.

 

오랫동안 비어있던 폐가를 개조한 가족들의 집. 재작년 태풍에 무너져버린 한 쪽 벽면으로는 끊임없이 바람이 들어오고 방 한 칸은 거미와 개미가 들끓어 마음 편히 몸을 뉠 수 없다. 게다가 화장실이 집안에 없다 보니 캄캄한 밤에 화장실이라도 갈라치면 무서운 마음에 할머니를 깨우고 마는 민성이. 할머니는 이런 민성이를 볼 때마다 고생만 시키는 게 미안하고 속상한데. 오히려 할머니한테 더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하다고 말하는 손주, 민성이. 열세 살 나이에 너무나 빨리 철이 들어버린 손주를 보면 더 안쓰러운 마음에 할머니는 오늘도 민성이를 위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고 싶다. 

jjubika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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