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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60분, 양승태와 과거사 국가가 두 번 죽인 사람들
추적60분, 양승태와 과거사 국가가 두 번 죽인 사람들
  • 정시환 기자
  • 승인 2019.04.24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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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KBS 1TV '추적60분'
사진= KBS 1TV '추적60분'

 

[스페셜타임스 정시환 기자] 지난 20일, 60여 명의 사람들이 서대문 독립공원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사법부에 ‘사법 농단을 반성하고 정의를 실현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원풍모방’ 노동자들로 1980년대 전두환 정권 당시, 영문도 모른 채 삼청교육대 등에 끌려가 고문을 받는 등 잔혹한 인권유린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노동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였다. <추적60분> 취재 결과, 당시 정권에 의해 이른바 ‘노동계 정화’ 조치가 자행되면서 블랙리스트에 올라 재취업조차 할 수 없게 된 노동자는 총 943명, 그중 원풍모방 노동자들의 수만 400여 명에 달했다. 하지만 청년들이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는 동안에도, 국가는 평범한 노동자들을 잔혹하게 탄압한 당시의 인권유린에 대해 뚜렷한 ‘사과’도 ‘배상’도 하지 않고 있다. 이들이 지난 2010년 이후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1, 2심에서 일부 승소를 거듭하다가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다. 그런데 지난해 5월, 헌정 사상 초유의 사법 농단 사태가 벌어진 이후 이 같은 판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자행된 사법부 농단의 하나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긴급조치 9호’ 피해자를 비롯해 사법부의 농단에 의한 피해를 주장하는 이들의 피해 건수는 1,500여 건. 그들은 왜 국가로부터 아무런 배상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 국가권력은 왜 노동자들의 인권을 유린했나?

원풍모방 노동조합 사태의 진실

19살에 상경해 ‘원풍모방’에 입사했다는 이규현 씨. 지금도 1980년 12월 그날의 아침을 잊을 수 없다. 당시 이 씨는 출근 직후 영문도 모른 채 경찰에 연행되어 서대문 형무소로 끌려갔다고 한다. 그곳에서 약 22일 동안 모진 고문을 당한 뒤 ‘삼청교육대’에 입소했다는 이 씨. 김연희(가명) 씨 역시 1976년 상경해 원풍모방에 입사했다가 모진 고초를 당했다고 한다. 당시 시위에 참여해 노조원들에게 ‘회사를 정상화하라’라는 문구가 적힌 머리띠를 나눠줬다는 이유로 경찰에 붙잡혔다는 김 씨. 20살 나이에 10개월가량 옥살이를 해야 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노동계 정화 사업이라는 명목 하에 원풍모방 노조 조합원 576명을 해고하고 간부 8명을 구속한 후, 블랙리스트까지 만들어 4백 명에 달하는 원풍모방 노동자들을 재취업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한다. <추적 60분>이 확보한 당시 경찰 조사보고서를 살펴보면 노동자들에 대해 국가가 자행한 심각한 인권 침해 정황이 발견되는데.

  
“블랙리스트도 개별 기업 단위에서 작성한 게 아니라 국가에서 공권력을 이용해서 작성해서 계속 노동자들 동향 감시를 해요. 지속해서 생계에 위협을 준 거죠. 그래서 국가폭력이다. -노동운동 전문가 김상숙 교수 -

 

■ 양승태 사법부는 왜 국가폭력 피해자의 피해를 인정하지 않았나

2010년 이후 국가를 상대로 진행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사법부는 1, 2심 모두 일부 승소로 원풍모방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판결의 이유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시효가 소멸됐다는 것. 당시 민법은 피해자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 및 가해자를 인지한 날로부터 3년 안에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으면 청구권이 소멸된다고 규정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갑자기 소멸시효가 6개월로 대폭 단축됐다는데. 지난해 5월 헌정 사상 초유의 사법 농단 사태 이후 드러난 대외비 문건 속에는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을 위시한 사법부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소멸시효를 단축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게다가 그 배경으로 박근혜 정부가 과거사 피해자들의 배‧보상 예산에 많은 돈이 투입되는 것에 대해 난색을 보였다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당시 비상식적인 계산법을 많이 갖고 왔어요. 어쨌든 돈을 마련하는 건 법을 만드는 당연한 과정이긴 한데 이제 나라가 거덜 난다는 식으로 논리를 갖고 온 거죠, 정부가“ -당시 법안회의 참석 의원 보좌관-

 

”두 번 당한 거잖아요. 국가한테 두 번 폭력을 당한 거잖아. 가장 믿었던 법마저 없는 사람한테는 이렇게 되는구나.“ -국가폭력 피해자-

 

■ 국가폭력 피해자를 구제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정부는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2005년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출범시켰다. 2010년까지 5년이라는 활동 기간 동안 접수된 국가폭력 피해 건수는 1만 1,200여 건. 하지만 1년이라는 짧은 접수 신청 기간과 5년이라는 짧은 활동 기간 탓에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과거사 피해가 많다. 최근 과거사위를 재출범하고, 피해자 구제를 위한 과거사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등의 법안이 수차례 법안심사위원회에 상정됐지만 18, 19, 20대 국회를 거치며 번번이 무산됐다.

 

“이걸 또 어떻게 해야 돼? 또 얼마나 싸워야 돼? 이런 생각이 들어서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올바르게 공정하게 우리나라 법치를 세워라. 법치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지는 것 아닙니까?” -국가폭력 피해자-

 

이번 주 KBS 1TV <추적60분>에서는 양승태 사법부의 국정 농단에 의해 또다시 국가폭력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사례를 통해, 무엇이 문제이고 이를 해결할 방안은 없는지 모색해본다.

jjubika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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