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2:20 (금)
KBS 동행, 민들레와 고등어
KBS 동행, 민들레와 고등어
  • 정진욱 기자
  • 승인 2020.08.01 1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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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동행, 민들레와 고등어
KBS 동행, 민들레와 고등어

 

[스페셜타임스 정진욱 기자] 시내에서도 한 시간 가량을 들어가야 하는 산골 마을. 하루에 버스가 단 세 번밖에 들어오지 않고 그마저도 집 앞에는 정류장이 없어 경운기를 타고 나가야 한다. 스물 한 살의 나이에 베트남에서 이곳으로 시집을 온 주연 씨. 매일 첫 차를 타고 자두 밭에 나가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남편의 농사까지 돕는 억척 엄마다. 남편은 고추농사와 옥수수 농사를 짓고 있지만 1년 농사 지어봤자 비료 값 대기도 바쁜 형편. 오로지 주연 씨가 몸을 굴려야만 쌀이 나오고 돈이 나오는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둘째를 낳고 급격히 몸이 안 좋아져 병원에 갔다가 간염 진단을 받은 주연 씨. 하지만 형편이 어려워 병원 치료도 제대로 못 받고 그저 한 달씩 처방받은 약에 의지하고 있다. 한참 커가는 아이들과 아픈 시어머니를 생각하면 하루도 쉴 수 없다는 엄마 주연 씨. 오늘도 가족들을 위해 묵묵히 집을 나선다. 

 

시어머니를 위해 고등어를 굽는 며느리

 

힘겨운 현실에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많았던 주연 씨가 마음을 붙이고 살 수 있었던 건 모두 시어머니 덕분이다. 친정엄마만큼 다정하고 따뜻했던 시어머니. 하지만 3년 전부터 치매가 오기 시작한 시어머니는 부쩍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나 말들을 늘어놓곤 한다. 방금 전까지 물건을 둔 자리도 기억을 못하고, 장롱이나 문을 꽁꽁 잠가놓기도 한다는데... 그런 시어머니 때문에 요즘 주연 씨는 하루도 편히 집을 비울 수가 없다. 속상한 마음이 들다가도 이내 시어머니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가득 차는 주연 씨. 그런 시어머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고등어를 사와 구워드리는 일이다. 주연 씨에게 고등어는 무엇보다 특별한 음식이다. 처음 낯선 땅으로 시집와 한국 음식에 적응하기 힘들던 며느리에게 시어머니는 아끼던 고등어를 구워주셨기 때문이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 아픈 시어머니를 위해 고등어를 굽는 주연 씨. 집에서 시장까지 한 시간이 넘는 거리지만 맛있게 드실 시어머니를 생각하면 금세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할머니의 민들레

 

며느리가 일터에서 돌아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팔순의 시어머니. 골목 어귀에 앉아 한참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기다림에 지쳐갈 즈음이면 정성스레 말려놓은 노란 민들레 꽃잎을 찻잔에 담아놓는 시어머니.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올 며느리를 위해 할머니 표 민들레 차를 준비한다. 가난한 집에 시집와 고생만 하는 며느리에게 늘 미안하고 고맙다는 시어머니. 건강이 안 좋은 며느리에게 주기 위해서 오래전부터 해독에 좋은 민들레를 말려 놓고 있다. 민들레는 며느리를 향한 시어머니의 사랑의 증표. 저녁마다 방에 둘러앉아 민들레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는 주연 씨와 시어머니. 매일 봐도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는 두 사람은 누구보다 진한 천생연분 고부다. 

jjubika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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