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16:10 (일)
한국인의 밥상 ‘돈 되는 물고기’...가을바다의 전설, 조기
한국인의 밥상 ‘돈 되는 물고기’...가을바다의 전설, 조기
  • 정시환 기자
  • 승인 2022.09.14 13: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인의 밥상 ‘돈 되는 물고기’...가을바다의 전설, 조기
한국인의 밥상 ‘돈 되는 물고기’...가을바다의 전설, 조기

 

[스페셜타임스 정시환 기자] 서해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돈이 되는 물고기로 위세를 떨쳤던 주인공!

 

제사상에 올라 절받는 물고기로 불렸고, 임금님부터 서민까지 누구나 즐겨 먹던 국민 밥도둑, 조기는 ‘파시’라 불린 황금 어시장의 시대를 열었던 주역이었지만 남획과 환경의 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점차 사라져 버린 사연 많고, 추억도 많은 생선이다.

 

KBS 1TV ‘한국인의 밥상’이 15일 방송에서 서해안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품어온 조기의 추억과 사연을 만난다.

 

그 많던 조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 위도 조기 파시의 추억

 

조기의 전설이 시작되는 곳은 ‘칠산바다’이다. 신안군 임자도에서 부안군 위도 일대에 이르는 이 바다는 일곱 개의 섬이 모여있다 해서 칠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제주에서 겨울을 보낸 조기는 봄이 되면 산란을 위해 북상하는데 그 길목에 자리잡은 칠산바다는 조기 황금어장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평생 바다와 동거동락한 강대홍 씨. 꽃게가 귀한 대접을 받는 지금과 달리 고기 취급도 못 받던 때가 있었다는데. 어종이 풍부해 귀한 조기가 득실득실했던 시절 돈 담을 데가 없어서 자루에 담았다는 이야기는 전설이 되어 우스갯소리로 전해올 뿐이다. 그 많던 조기는 어디로 갔을까? 위도의 관문인 파장금은 파도가 길게 치면 돈이 몰려온다는 뜻 그대로 돈이 넘쳐났다는데. 개가 돈을 물고 다닐 정도였다고. 조기떼를 따라 팔도에서 몰려든 사람들도 섬 전체가 들썩였고 좁은 골목마다 장사진을 이루었다. 파장금 골목에는 파시 때 성행했던 요릿집 터만이 옛 영광을 간직하고 있다.

 

가을 조기가 돌아왔다 - 목포항 생조기

 

칠산바다에서 조기들이 사라지기 시작한 건 70년대 초였다. 남획으로 씨가 마른 조기들은 바다의 환경까지 바뀌게 되자 먼 남쪽으로 서식지를 옮겼다. 조기잡이의 주 무대는 제주 인근 해역. 금어기가 끝나는 이맘때부터 이듬해 봄까지 제주 인근 해역으로 조업을 나갔다 돌아온 어선들로 항구가 북적인다. 자체적으로 4개월간 금어기를 지정해 조업해온 덕에 예전만은 못하지만 어획량이 평년 수준에 머문다고.

 

국내 조기 위판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목포항. 가을조업이 시작되고 배에서 내린 조기를 선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일일이 눈으로 보고 선별했던 전과 달리 요즘은 기계로 무게를 측정해 선별하는데. 기계로 선별해도 크기와 무게별로 나누어 상자에 담는 건 사람의 몫. 노련한 솜씨로 조기를 담는 손길이 빨라진다. 오후 5시부터 새벽까지 꼬박 밤새워 선별작업을 마치면, 이제 조기들이 주인을 만날 차례다.

 

30년 넘게 중도매인으로 살아온 최종재 씨와 아들 최용준 씨도 새벽길을 나선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수산업에 뛰어든 용준 씨. 수산물 가공에 유통까지 하다보니 바다 사정에 울고 웃는 일이 많았지만 수산업에 종사했던 아버지 덕분에 귀한 생선을 원 없이 먹으며 자랐다.

 

참기름에 구운 조기에 장국을 붓고 큼직하게 썰은 마를 넣어 끓인 조기장국조림은 시어머님이 해주시던 가족들만의 별미. 짭조름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부드러워서 어른들도 즐겨 드셨다고. 늘 곁을 지켜준 가족처럼, 오랫동안 밥상을 지킨 고마운 생선 조기. 짠내 비린내 품고 살아온 아버지와 가족들의 풍성한 조기 밥상이 차려진다.

 

조기, 굴비가 되어 전설이 되다

 

서해에서 잡힌 조기는 법성포에서 굴비(屈非)라는 새 이름을 얻는다. 소금에 절이고 바람에 말리면 오래 보관할 수 있는데다 꼬릿꼬릿 오묘한 감칠맛이 더해진다. 법성포는 칠산 조기어장이 가깝고 염전이 발달해 소금을 구하기 쉬워서, 굴비 만들기 최적의 조건이다. 세종실록에는 법성포 조기가 세금으로 사용됐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조기는 소금에 절이고 말려도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고 제 모양을 갖추고 있어 ‘군자의 생선’이라고 불렸다. 독이 없어서 내장 째 다 먹을 수 있는 것도 생선 중 으뜸으로 꼽는 이유이다.

 

남도음식 명인 최윤자 씨는 귀한 상차림에 올랐던 조기는 제사상은 물론 혼례 때 이바지 음식에도 빠지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이바지 음식에도 큰 병어나 민어를 제치고 가장 윗자리는 조기의 몫이었다. 조기는 소중한 누군가에게 가장 좋은 걸 주고 싶은 귀한 마음이었다.

 

굴비, 그 다음을 꿈꾸다 – 법성포 3대 굴비 가족 이야기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포. 법성포 굴비거리에 여전히 많은 가게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예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나무걸대에 굴비 말리던 풍경은 사라지고 지금은 실내 냉동실에서 영하 40도 냉풍에 반건조로 말리고 있다. 바뀐 세월에도 변하지 않는 건 전통 염장법인 ‘섶간’으로 조기를 절인다는 것! 굴비 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작업이어서 섶간만큼은 고수하고 있단다.

 

할아버지부터 시작해 3대째 굴비를 만드는 정용진 씨. 입맛도 변하고 식문화도 달라지면서 전통 굴비를 지키면서 굴비를 활용할 다양한 방법을 궁리하고 있다.

 

명절에 남은 나물을 깔고 남은 생선과 조기를 넣고 자글자글 끓인 조기짜글이는 용진 씨가 삼시 세끼 질리지 않고 먹었던 별미이다. 고추장에 넣어서 찢어먹던 고추장굴비는 요즘 방식으로 굴비살을 양념에 버무려 간단하게 찬물에 밥 말아서 한끼 뚝딱 밥도둑. 쉽게 만들 수 있는데다 달콤하며 짭조롬한 것이 젊은 사람 입맛에도 제격이다. 10년 전 부산에서 맛본 어묵맛이 기가 막혀 굴비살을 넣어 어묵을 개발했다는 용진 씨. 전통 굴비맛은 지키고, 굴비에 대한 인식을 바꿔 현대인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시작했는데. 처음엔 다들 고개를 갸웃하지만 굴비 특유의 차진 식감과 고소함에 빠져든다. ‘굴비’로 변신해 전설이 되어가는 조기 이야기는 15일 KBS 1TV ‘한국인의 밥상’에서 만날 수 있다.

jjubika1@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