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데이터센터와 고성능 컴퓨팅 수요가 확대되면서 반도체 산업의 경쟁 기준이 이동하고 있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 집계에 따르면 올해 2월 글로벌 반도체 매출은 888억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61.8% 늘었고, 업계는 연간 1조달러 시대 진입을 내다보고 있다. 다만 이번 국면의 성격은 과거와 다르다는 것이 업계 진단이다. 회로를 얼마나 미세하게 만드느냐가 경쟁력을 갈랐던 시기를 지나, HBM과 첨단 패키징처럼 구조가 복잡해진 반도체를 안정적인 품질과 수율로 생산하는 역량이 승부처로 떠올랐다.

선단 공정의 미세화가 물리적 한계에 근접하면서 성능 개선의 무게중심은 첨단 패키징과 칩렛 구조로 옮겨갔다. 결함을 조기에 잡아내 수율을 확보하는 검사·테스트 공정의 비중도 함께 커졌다. AX 자율제조 기업 인터엑스(INTERX·대표 박정윤)가 반도체 PCB·패키지 기판 제조 현장에 특화한 인스펙션 AI를 앞세워 반도체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고 나선 배경이다.

칩과 전자 시스템을 잇는 PCB와 패키지 기판은 신호 전달과 전력 공급, 발열 관리, 장기 신뢰성을 좌우한다. 회로 선폭이 줄어들수록 미세한 표면 결함이나 패턴 이상, 공정 편차 하나가 최종 반도체의 성능과 수율을 결정짓는다. AI 서버용 FC-BGA와 고부가 패키지 기판이 공급 부족 국면에 들어선 상황에서 이 영역의 품질 관리 역량은 산업 전체의 병목을 가르는 변수가 됐다.

인터엑스의 '인스펙션 AI(Inspection.AI)'는 기판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품질 데이터를 분석해 미세 결함과 이상 패턴을 식별하고, 작업자 경험에 기대던 검사 기준을 데이터 기반으로 표준화하는 품질검사 AI다. 이미지를 판독하는 범용 비전 AI와는 접근법이 다르다는 것이 회사 설명이다. 제조설비와 검사장비, 제품 규격, 공정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현장 특성을 학습해 양산 라인에서 계속 돌아가는 검사체계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반도체 PCB 현장은 제품과 규격이 다양한 데다 정상과 불량의 경계가 극히 미세하고 신규 불량 유형도 계속 나온다. 검사 정확도만이 아니라 미검출과 과검출, 생산속도, 운영 편의성을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이유다.

회사가 내세우는 차별점은 특정 AI 모델이 아니라 국내 주요 반도체 PCB·패키지 기판 기업의 생산 현장에서 쌓은 적용 경험이다. 인터엑스는 반도체 공급망의 H사, D사, S사 등을 대상으로 품질검사 AI와 제조 데이터 표준화, 공정 분석, AI 에이전트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다. 일부 고객사와는 3년 이상 양산 라인에서 솔루션을 운영 중이며, 품질검사에서 출발해 AI 에이전트 영역까지 적용 범위를 넓힌 사례도 있다.

사업 확장 구조는 네 단계로 설계됐다. 한 생산라인에서 검증한 기술을 같은 공정의 다른 라인으로 넓히는 라인 확장을 시작으로, 유사 검사 업무와 다른 제품군으로 확대하는 제품·공정 확장, 품질검사에서 공정 예측과 최적화·레시피 관리로 영역을 넓히는 솔루션 확장이 이어진다. 마지막 단계는 개별 AI 모델과 제조 데이터를 AI 에이전트로 연결해 분석 결과가 생산 의사결정과 실행으로 이어지는 자율제조 확장이다. 이를 떠받치는 기반은 제조 데이터 표준화다. 고객사마다 데이터 정의부터 다시 시작하는 방식과 달리, 표준화된 체계 위에서는 한 라인에서 검증한 모델을 다른 라인과 제품, 동종 기업으로 이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델 정확도보다 데이터의 재사용성이 확산 속도를 결정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인터엑스는 사업 체계도 전환한다. 품질검사 AI와 생성형 AI, AI 에이전트 등 제품·기술 중심으로 솔루션을 공급하던 방식에서, 고객이 속한 산업과 제조공정을 기준으로 필요한 기술을 묶어 제공하는 방식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반도체·PCB가 그 첫 대상이다. 전담 사업 조직을 신설하고 품질검사 AI에 더해 제조 데이터 표준화, 품질·공정 예측, 디지털트윈, AI 에이전트를 반도체 제조환경에 맞춰 결합할 계획이다. 기존 고객사 내부의 적용 범위를 넓히는 동시에 국내외 기판 기업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김재성 인터엑스 CBO는 "반도체 품질은 완성된 칩을 검사하는 마지막 단계가 아니라 칩을 연결하고 패키징하는 기판의 제조 과정에서부터 결정된다"며 "경쟁력은 AI 모델 하나를 공급하는 데 있지 않고 반도체 PCB 산업의 공정과 데이터, 품질 기준을 깊이 이해하는 AX 파트너라는 점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나의 라인에서 검증한 성과를 고객사 전체와 산업 전반으로 확산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조 AI 시장에서 기술 자체보다 산업별 공정 이해도가 진입장벽으로 작용해 온 만큼, 특정 산업을 전담하는 조직을 두고 솔루션을 묶어 파는 전략은 후발 주자와의 격차를 벌리는 방향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표준화된 데이터 체계를 다른 기업으로 실제 이식할 수 있는지가 확장 속도를 가를 관건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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