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체불·산재 대책 담은 개정안 두고 노동계·산업계 이견 팽팽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인 외국인 근로자 관련 개정 법안들이 반년 넘게 발이 묶여 있다. 고용허가제로 국내에 들어온 이주노동자의 임금체불과 산업재해 처우를 개선하자는 취지의 법안들이지만, 사업장 변경 요건과 사용자 처벌 수위를 놓고 노동계와 산업계가 팽팽히 맞서면서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옮기려면 원칙적으로 사업주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임금체불이나 폭행 등 귀책사유가 사업장에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이직이 가능하지만, 이를 입증하는 절차가 까다로워 실제로는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참고 일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에 발의된 개정안들은 이 같은 사업장 변경 제한을 완화하고, 임금체불이 확인되면 사용자에게 즉시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는 절차를 신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의 임금체불 진정 건수는 매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체불액 규모도 적지 않은 수준으로 파악된다. 산업재해 역시 마찬가지다. 통역과 안전교육 언어 지원이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작업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아, 내국인 근로자보다 산재 발생 위험에 더 노출돼 있다는 분석이 학계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고용허가제는 국내 인력난 해소를 위해 도입된 제도로, 제조업과 농어업, 어업 등 특정 업종에 한해 정부가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을 허가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사업주가 고용센터를 통해 인력을 배정받으면 근로자는 원칙적으로 3년 동안 해당 사업장에서 근무해야 하며, 사업장을 옮기려면 사업주 동의나 사업장 귀책사유 입증이 필요하다. 이 구조가 근로자의 협상력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킨다는 지적이 노동계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사업주에게 사실상 근로자의 체류 여부를 좌우할 권한이 쥐어져 있다 보니, 부당한 처우를 겪어도 신고나 이의 제기를 주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노무사는 "임금체불 피해를 본 이주노동자가 사업장 변경을 신청해도 승인까지 수개월이 걸리는 경우가 있어 그 사이 생계가 막막해지는 상황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이어 "산재를 당해도 산재보험 신청 절차 자체를 모르거나 언어 장벽 때문에 포기하는 사례가 현장에서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체불임금 소송을 진행하는 동안 체류자격이 불안정해지면서 소송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상당수"라며 "법 개정 없이는 행정적 보완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반면 산업계는 사업장 변경 요건을 과도하게 완화하면 인력 운용에 혼선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중소 제조업체와 농어촌 현장에서는 이주노동자 이탈이 곧바로 인력난으로 이어지는 구조여서, 무분별한 사업장 변경이 늘면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고용허가서를 받기까지 행정 절차와 비용이 상당한데, 근로자가 입국 초기부터 다른 사업장으로 옮기려 하면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토로했다. 그는 "숙련도가 오르기 전에 인력이 빠져나가면 생산 라인 전체에 차질이 생긴다"며 "제도 개선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장의 어려움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노동계는 사업장 변경 제한을 완화한다고 해서 근로자가 무조건 자유롭게 이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개정안 대부분은 사용자의 귀책사유가 명확한 경우로 요건을 한정하고 있어, 산업계가 우려하는 무분별한 이탈과는 거리가 있다는 설명이다. 협회 관계자는 "사업장 변경 제한 완화는 근로자 보호 장치이지 기업 부담을 늘리려는 취지가 아니다"라며 "다만 인력 수급 안정성을 보완할 대책도 함께 논의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실제 현장에서 체불 피해를 겪은 이주노동자의 사례도 있다. 베트남 국적의 응우옌모 씨(29)는 지난해 한 지방 제조업체에서 근무하던 중 넉 달 치 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사업장을 바꾸고 싶었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서류를 준비하는 동안 통역 지원도 부족해 결국 체불 임금을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이런 사례는 고용센터와 노동단체에 접수되는 상담 건수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국적의 속모 씨(33)도 비슷한 경험을 털어놨다. 그는 작업 중 손가락 부상을 입었지만 산재 신청 절차를 몰라 자비로 치료비를 부담했다며 "동료들 중에도 산재 신청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산재 처우 문제도 법안 논의의 핵심 쟁점 중 하나다. 현재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이주노동자도 내국인과 동일하게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만, 실제 신청과 보상 과정에서 언어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개정안에는 산재 신청 시 통역 지원을 의무화하고, 사업주가 산재 발생 사실을 은폐하거나 신고를 지연할 경우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전문의는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이주노동자의 안전사고와 관련해 "언어 장벽으로 인해 초기 응급처치나 치료 과정에서 정확한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으면 후유증 관리에도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안전 전문가들은 안전교육 자료를 다국어로 제작하고, 산재 발생 시 통역 인력을 신속히 연결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산업안전 연구위원은 "현장에서 사고가 나면 초기 몇 시간의 대응이 예후를 좌우하는데, 통역 인력이 없어 상황 파악조차 늦어지는 사례가 실제로 보고된다"고 말했다.

법안 처리가 지연되는 배경에는 정기국회 일정과 맞물린 정치적 셈법도 작용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야 모두 이주노동자 처우 개선의 필요성 자체에는 공감하면서도, 산업계 반발을 고려한 세부 조율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노동위원회 관계자는 "쟁점 조항에 대한 여야 이견이 커 이번 정기국회 내 처리 여부는 유동적"이라고 전했다. 상임위 내부에서는 사업장 변경 요건을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절충안도 거론되지만, 아직 여야 간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상태다.

고용노동부는 별도로 사업장 변경 신청 처리 기간을 단축하는 행정적 개선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법률 개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근본적인 제도 개선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된다. 국내 체류 이주노동자 수는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제조업과 농어업 등 인력난이 심한 업종을 중심으로 고용허가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노동단체들은 국회 앞에서 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사업장 변경 제한 완화와 함께 임금체불 사업주에 대한 처벌 강화, 산재 은폐 방지책 마련을 핵심 요구사항으로 제시하고 있다. 반면 경영계 단체들은 인력 수급 대책 없이 제도만 바뀌면 현장 혼란이 커질 수 있다며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각각 국회에 전달한 상태다. 여야 간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법안 처리는 다음 임시국회로 넘어갈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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