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전세 우려 속 전세보증보험 가입 문의 늘어

가을 이사철이 다가오면서 전세 계약을 앞둔 세입자들 사이에 불안감이 다시 번지고 있다. 이사 수요가 몰리는 9월 말부터 11월까지는 전세 매물 거래가 활발해지는 시기인 동시에 전세사기 피해가 집중적으로 발생해온 시기이기도 하다. 최근 몇 년간 수도권과 지방 대도시를 중심으로 발생한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 이후 정부와 지자체가 각종 예방 대책을 내놓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제도의 사각지대가 남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계약 만료 시점을 앞두고 새 집을 급히 구해야 하는 세입자들은 매물 자체가 부족한 시기에 집을 고르다 보니 위험 신호를 놓치기 쉽다는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전세사기의 대표적인 유형으로 꼽히는 것은 이른바 깡통전세다. 집값보다 전세보증금이 높거나 비슷해 집이 경매에 넘어갈 경우 세입자가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을 말한다. 여기에 임대인이 여러 채의 주택을 매입해 보증금을 돌려막는 이른바 무자본 갭투자 구조가 겹치면 피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세사기 피해자로 결정된 사례는 전국적으로 누적돼 왔으며, 2030세대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의 피해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피스텔이나 신축 빌라처럼 시세 파악이 어려운 주택 유형에서 피해가 집중되는 경향도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가을철에 전세사기 우려가 커지는 이유는 명확하다. 봄과 함께 대표적인 이사철로 꼽히는 이 시기에는 신학기, 직장 이동, 계약 갱신 등의 사유로 단기간에 많은 세입자가 새로운 집을 구한다. 매물을 빨리 확보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생기다 보니 등기부등본 확인이나 시세 조사 같은 기본적인 검증 절차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늘어난다는 것이 현장의 공통된 목소리다.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가을철에는 계약을 서두르는 손님이 많아 근저당 설정이나 선순위 채권 여부를 꼼꼼히 따지지 않고 도장부터 찍으려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신혼부부나 사회초년생은 계약 경험이 적다 보니 중개인의 설명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한데, 이 틈을 악용하는 사례가 여전히 나온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전세사기 재발을 막기 위해 여러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전세보증보험이다.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경우 주택도시보증공사나 서울보증보험 등을 통해 세입자가 보증금을 대신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다만 보증 가입에는 주택 가격과 전세가율 등 일정 요건이 따라붙기 때문에 이른바 깡통전세 위험이 큰 주택은 가입 자체가 거절되는 경우도 있다. 한 손해보험업계 관계자는 "보증보험 가입 거절 통보를 받았다면 그 자체가 위험 신호로 봐야 한다"며 "가입이 거절된 매물을 두고 임대인이 계약을 강행하려 한다면 더욱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증보험 가입 여부를 계약 전에 미리 확인해보는 절차가 최근 몇 년 새 세입자들 사이에서 필수 절차로 자리 잡고 있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전세사기 피해를 막기 위한 또 다른 축은 정보 접근성 강화다. 국토교통부는 임대인의 세금 체납 여부와 다주택 보유 현황 등을 세입자가 계약 전에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임차인이 임대인 동의 없이도 국세와 지방세 체납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돼 있으며, 계약 전 등기부등본을 통해 근저당권 설정 여부와 소유권 변동 이력을 확인하는 것이 기본적인 예방책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런 절차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세입자가 여전히 적지 않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된다. 특히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계약 당일 곧바로 처리하지 않아 대항력 확보 시점이 늦어지면서 피해를 키우는 사례도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지자체 차원의 대응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를 비롯한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전세사기 피해 상담 창구를 운영하며 계약 전 무료 법률 상담과 등기부등본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다만 상담 인력과 예산이 한정돼 있어 이사철 성수기에는 상담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현장의 목소리도 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가을철 상담 문의가 평소보다 크게 늘어나는데 인력 배치가 이를 다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며 "온라인 상담과 서면 검토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인력 확충이 필요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실제 피해를 우려하는 세입자들의 사례도 이어진다. 최근 전세 계약을 앞두고 있던 김모 씨(29)는 "집주인이 여러 채를 보유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 등기부등본을 다시 확인해봤다"며 "혼자서는 서류를 봐도 뭐가 위험한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아 결국 상담 기관을 찾아갔다"고 말했다. 신혼집을 구하던 박모 씨(34)는 "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한 매물인지부터 물어보고 계약을 진행했다"며 "예전에는 집 구조나 위치만 봤는데 지금은 서류부터 따지게 됐다"고 전했다. 지방에서 서울로 취업을 위해 이사를 준비 중인 이모 씨(26)는 "짧은 시간 안에 계약을 마쳐야 해서 불안했는데 상담 창구에서 근저당 설정 내용을 함께 봐준 덕분에 계약을 미룰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계약 전 확인해야 할 기본 항목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한 부동산학과 교수는 "등기부등본상 근저당권 설정 금액과 전세보증금을 합산했을 때 매매 시세를 넘는지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며 "전세가율이 지나치게 높은 매물은 계약을 다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공인중개사는 "계약서에 특약사항으로 보증금 반환 관련 조항을 명확히 넣는 것도 분쟁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계약 체결 당일 바로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받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자기 방어 수단"이라며 "며칠만 늦어져도 후순위 권리자로 밀려 보증금을 지키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전세사기 예방을 위한 정부 차원의 홍보와 안내도 강화되는 분위기다. 국토교통부와 한국부동산원은 전세 계약 전 확인해야 할 체크리스트를 배포하고 있으며, 지자체별 상담 창구 운영 시간을 늘리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다만 제도가 아무리 촘촘해져도 세입자 스스로 등기부등본과 임대인 정보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사각지대는 계속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세 계약을 앞둔 이들에게는 매물을 서둘러 확정하기보다 서류 확인과 상담을 거치는 과정이 여전히 가장 기본적인 예방책으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