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경쟁 격화 속 저작권 공방 잇따라

새로 공개된 OTT 예능이 얼마 지나지 않아 표절 시비에 휘말리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최근 한 플랫폼이 선보인 서바이벌 예능은 방영 직후부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다른 플랫폼의 인기작과 설정이 겹친다”는 지적을 받았다. 출연자 선발 방식, 미션 구성, 심지어 세트 디자인까지 유사하다는 주장이 쏟아지면서 제작사 측은 뒤늦게 “우연의 일치”라는 입장을 내놓아야 했다.

논란이 불거진 지 며칠 만에 관련 게시물은 수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했고, 두 프로그램의 회차별 장면을 나란히 비교한 편집 영상까지 퍼졌다. 시청자들은 미션의 배치 순서와 탈락자 발표 방식, 경쟁 구도를 짜는 구조까지 거의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제작사는 기획안 작성 시점을 근거로 표절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논란이 가라앉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이런 논란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OTT 플랫폼들이 오리지널 예능 콘텐츠 확보 경쟁에 뛰어들면서 유사한 소재와 형식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는 빈도가 늘었다. 연애 리얼리티, 서바이벌 게임쇼, 관찰 예능 등 특정 장르에 제작이 몰리다 보니 아이디어가 겹치는 사례가 잦아졌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기획 단계에서 시장 조사를 하다 보면 비슷한 트렌드를 참고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의도적 표절과 우연한 유사성을 구분하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콘텐츠 업계에서는 이런 현상을 두고 플랫폼 간 경쟁 구도가 만들어낸 구조적 문제라는 분석도 나온다. 신작 발표 주기가 짧아지면서 검증된 흥행 요소를 참고하려는 유인이 커졌고, 그 과정에서 기획의 뼈대가 비슷해지는 경우가 늘었다는 것이다. 한 콘텐츠 제작사 관계자는 “투자 결정이 빠르게 이뤄지다 보니 이미 흥행한 포맷의 구조를 변형해 제안하는 경우가 실제로 적지 않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런 유사성 논란이 실제 법적 분쟁으로 번질 때다. 국내 저작권법은 방송 프로그램의 대본이나 영상물 자체는 보호 대상으로 인정하지만, 프로그램의 형식이나 진행 방식 같은 이른바 ‘포맷’은 명확한 보호 규정이 없다. 아이디어와 표현을 구분하는 저작권법의 원칙상 소재나 콘셉트 자체는 저작권 보호를 받기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 변호사는 “미션의 순서 배치나 구체적인 연출 요소가 독창성을 가질 만큼 세밀하게 구성돼 있고 그것이 그대로 복제됐다는 점이 입증돼야 표절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내외에서 방송 포맷을 둘러싼 소송은 승소율이 높지 않은 편이다. 포맷의 유사성을 주장하려면 단순한 소재의 일치가 아니라 구체적 표현 방식의 실질적 유사성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 기준을 충족시키기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한 저작권 관련 학회 소속 연구위원은 “해외에서는 포맷 바이블이라는 문서로 기획의 구성 요소를 세세하게 정리해 등록해두는 관행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며 “국내는 아직 이런 체계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아 분쟁이 생겨도 입증 자료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따르면 방송 포맷과 관련한 저작권 등록 신청은 예능 분야를 중심으로 매년 조금씩 늘고 있지만, 실제 분쟁 발생 시 등록 내용만으로 표절 여부를 가리기는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등록 제도 자체가 창작물의 존재 시점을 증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세부 연출 요소의 유사성까지 입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실제 소송에서는 기획안 초안, 회의록, 이메일 등 제작 과정 전반의 자료가 함께 제출되는 경우가 많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어디까지가 표절이고 어디까지가 트렌드를 반영한 기획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인 김모 씨(38)는 “최근 몇 년 새 나온 예능들을 보면 설정만 다를 뿐 큰 틀은 비슷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며 “표절인지 유행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즐겨보던 두 예능 프로그램은 출연자 구성과 초반 전개가 비슷해 시청 초반에는 같은 시리즈인 줄 알았다고 전했다.

반면 콘텐츠 제작 현장에서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예능 제작사 관계자는 “기획 회의만 수개월에 걸쳐 진행하는데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아이디어가 나오는 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표절 프레임이 씌워지면 제작진 전체가 타격을 입는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제작 관계자는 “한 번 표절 의혹이 제기되면 실제 결론이 나기까지 몇 달이 걸리는데, 그 사이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도는 이미 크게 떨어진 상태”라고 말했다.

이런 갈등이 반복되면서 업계 내부에서는 포맷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방송통신 관련 협회를 중심으로 포맷 등록 제도를 활성화하고, 분쟁 발생 시 참고할 수 있는 표준 심사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해외에서는 포맷 거래 시장이 형성돼 있어 정식으로 라이선스를 구매하고 현지화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지만, 국내에서는 이런 거래 관행이 상대적으로 덜 자리 잡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외 방송 업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포맷 라이선스 계약이 산업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유명 예능 포맷이 여러 나라에 정식 수출돼 현지 제작진이 계약을 맺고 로컬 버전을 만드는 구조가 일반적이며, 이 과정에서 원작자의 권리가 계약서로 명확히 규정된다. 반면 국내에서는 신생 제작사나 소규모 스튜디오의 경우 이런 절차를 밟기보다 유사한 아이디어를 자체적으로 변형해 내놓는 경우가 많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플랫폼 간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화제성 있는 포맷을 빠르게 확보하려는 유인은 커질 수밖에 없다. 신작 발표 주기가 짧아지고 제작비 회수 압박이 커지는 상황에서, 검증된 흥행 요소를 참고하려는 시도와 창작의 독자성을 지키려는 요구가 계속 부딪히고 있다. 한 콘텐츠 산업 연구위원은 “포맷 표절 논란은 결국 창작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라며 “제작사와 플랫폼, 법조계가 함께 참고할 수 있는 구체적 가이드라인 마련이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로서는 표절 여부를 둘러싼 시비가 불거질 때마다 개별 사안별로 법적 판단에 의존하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제작 현장에서는 기획안 작성 단계부터 세부 요소를 문서화해 보관하는 관행이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회의 내용을 녹취하거나 기획 단계별로 날짜를 명시한 문서를 남겨두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저작권 등록 신청 건수도 예능 분야를 중심으로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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