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계산대·자동화 설비 늘며 유통업계 고용구조도 바뀐다

서울 시내 한 편의점은 오후 11시가 넘으면 매장 안에 직원이 없다. 출입문 옆 태블릿에 신분증을 인증하고 들어가면 진열대 사이로 손님만 오간다. 계산은 셀프계산대에서 카드나 간편결제로 끝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심야 시간에도 카운터를 지키던 아르바이트생의 자리는 이제 카메라와 센서, 무인 정산기로 채워졌다.
유통업계의 무인화는 편의점을 중심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국내 주요 편의점 브랜드들은 심야 무인 운영 점포와 하이브리드 매장, 즉 낮에는 직원이 상주하고 밤에는 무인으로 전환되는 형태의 매장을 지속적으로 늘려왔다. 초창기에는 인적이 드문 오피스 상권이나 대학가 주변에 시범적으로 도입됐지만, 최근에는 주택가와 역세권 매장으로도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에서도 셀프계산대 도입이 보편화됐다. 계산대 여러 대 중 유인 계산대는 한두 대만 남기고 나머지를 셀프 방식으로 바꾸는 매장이 늘면서, 손님이 직접 바코드를 찍고 결제까지 하는 풍경이 낯설지 않게 됐다. 일부 대형마트는 아예 계산대 자체를 없애고, 매장에 설치된 인공지능(AI) 카메라와 무게 감지 센서로 물건을 들고 나가면 자동으로 결제되는 방식을 시범 운영하기도 한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최저임금 인상과 인건비 부담, 그리고 심야 시간대 인력 채용의 어려움이 겹쳐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업을 포함한 대면서비스 업종의 고용은 최근 수년간 변동성을 보였고, 특히 단순노무직과 판매직 일자리의 증감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고용노동부가 매년 발표하는 사업체노동력조사에서도 도소매업 상용직과 임시일용직 구성비가 점진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 확인된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조사한 자영업 실태 관련 통계에서도 편의점을 포함한 소매업 점주들이 인건비를 경영 부담 1순위로 꼽는 경우가 많았다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나온다. 점주 입장에서는 심야 시간대 매출이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 무인 전환이 매장 존속을 위한 선택지로 여겨지기도 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무인화가 단순히 인건비를 줄이려는 목적만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심야 시간에는 아르바이트생을 구하기 자체가 어려운 지역이 많다"며 "무인 설비는 안전과 운영 효율을 동시에 고려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편의점 본사들은 무인 점포에 비상벨과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을 함께 설치해 안전 관리를 병행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일부 점포는 매장 밖에 경비업체와 연동된 비상 알림 장치를 설치하고, 이상 행동이 감지되면 관제센터에서 즉시 확인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현장의 반응은 엇갈린다. 한때 편의점 야간 근무로 생계를 유지했던 박모 씨(29)는 "심야 아르바이트 자리가 줄면서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무인매장이 늘어난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내 자리가 없어지는 느낌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후 물류센터 야간 상하차 업무로 자리를 옮겼지만 근무 강도가 이전보다 훨씬 세졌다고 토로했다. 반면 대형마트에서 근무하는 최모 씨(41)는 "셀프계산대 도입 이후 계산 업무보다 매장 관리나 재고 확인 같은 다른 업무로 배치가 바뀌었다"며 "일이 없어졌다기보다 하는 일이 달라졌다"고 전했다. 최씨는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지금은 고객 응대나 진열 업무가 더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무인화가 일자리를 완전히 없애기보다 업무의 성격을 재편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한 유통학회 관계자는 "계산 업무처럼 반복적이고 단순한 노동은 자동화되지만, 재고 관리나 고객 응대, 매장 진열처럼 판단이 필요한 업무는 여전히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단순 노무직 채용 자체가 줄어드는 흐름은 부인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특히 청년층과 고령층이 주로 맡던 단시간 근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점은 고용의 질적 측면에서 짚어봐야 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 등 업계 단체에 따르면 국내 편의점 점포 수는 매년 꾸준히 늘고 있지만, 점포당 고용 인원은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매장 수 증가가 곧바로 고용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대형마트 업계에서도 셀프계산대 확대와 함께 캐셔 직군의 채용 규모가 축소되는 대신, 물류센터나 온라인 배송 관련 인력 수요가 늘어나는 이중적인 흐름이 관찰된다. 실제로 대형 유통업체들은 온라인 주문 물량이 늘면서 물류센터 상하차, 분류, 배송 기사 채용을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무 전문가들은 이런 변화가 노동시장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주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 노무사는 "무인화로 사라지는 일자리와 새로 생기는 일자리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 문제"라며 "판매직에서 물류나 관제 업무로 옮겨가려면 별도의 교육과 재배치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와 업계가 함께 직무 전환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단시간 근로자 상당수가 학생이나 경력단절 여성, 고령층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이 새로운 직군으로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비용도 함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무인화 확산은 소비자 경험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셀프계산대 이용에 익숙한 젊은 세대와 달리, 고령층 소비자 중 일부는 여전히 무인 결제 시스템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한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고령층 이용객이 셀프계산대 앞에서 머뭇거리다 뒷사람 눈치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일부 매장은 셀프계산대와 유인 계산대를 병행 운영하며 이용자 선택권을 넓히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완전 무인 전환보다는 시간대별 하이브리드 운영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편의점업계 한 관계자는 "무인 점포라고 해도 상품 진열이나 재고 보충, 유통기한 관리 같은 업무는 낮 시간에 직원이 담당한다"며 "완전한 무인화보다는 사람과 기술이 역할을 나누는 구조로 가는 것이 현재 흐름"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24시간 완전 무인으로 운영되는 매장보다 시간대별로 유인과 무인을 전환하는 하이브리드 매장의 비중이 더 큰 것으로 알려졌다. 본사들은 하이브리드 매장 운영 매뉴얼을 별도로 마련해 점주들에게 배포하고, 무인 전환 시간대와 보안 장비 설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내 편의점과 마트 현장에서는 셀프계산대와 유인 계산대가 나란히 놓인 풍경이 이어지고 있다. 낮에는 직원이 상주하고 밤에는 무인으로 전환되는 매장 형태가 늘면서, 계산 업무는 자동화되는 대신 진열과 재고 관리, 고객 응대 업무는 여전히 사람이 맡는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