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 프렌들리 아파트 늘지만 소음·냄새 분쟁 조정 체계는 미비

저녁 산책을 마친 반려견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오르던 김모 씨(41)는 최근 같은 동 주민과 눈을 마주치는 일이 불편해졌다. 몇 달 전 복도에서 마주친 이웃이 "개 짖는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친다"며 언성을 높인 뒤부터다. 김 씨는 관리사무소에 중재를 요청했지만 돌아온 답은 "개인 간 문제라 개입이 어렵다"는 말뿐이었다. 그는 "같은 단지에서 몇 년을 살았는데 반려견 때문에 눈치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공동주택에서 반려동물을 둘러싼 이웃 간 갈등이 늘고 있다.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 거주 비중이 높은 한국 사회 구조상 반려동물 양육 가구와 비양육 가구 간 접촉 빈도도 그만큼 잦아지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관리하는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에도 반려동물 관련 민원이 매년 적지 않게 접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음이나 냄새뿐 아니라 엘리베이터 동승, 공용 복도 배변 흔적, 산책 시간대 소음 등 민원 유형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문제는 소음과 냄새, 배설물 처리, 공용공간 이용 범위를 둘러싼 갈등이 명확한 법적 기준 없이 '관리규약'이라는 자치 규정에 맡겨져 있다는 점이다. 관리규약은 입주자대표회의 의결과 주민 동의 절차를 거쳐 개정되는데, 반려동물 동반 출입 가능 구역, 목줄·입마개 착용 의무, 엘리베이터 동승 시 주의사항 등을 구체화하는 단지가 늘고 있다. 일부 신축 단지는 분양 단계부터 반려동물 전용 놀이터나 발 씻김 시설을 설치하는 '펫 프렌들리' 설계를 내세우기도 한다. 최근에는 반려동물 동반 가구를 위한 전용 엘리베이터나 전용 출입구를 따로 배치하는 단지도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 노후 단지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관리규약 개정 자체가 입주자 다수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까다로운 절차여서, 갈등이 불거진 뒤에야 논의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한 공동주택관리 전문가는 "규약 개정은 통상 전체 입주자의 과반 이상 동의가 필요해 실제 반영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그 사이 발생하는 분쟁은 당사자 간 합의나 관리사무소의 임의 중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입주민 구성이 자주 바뀌는 단지일수록 규약 자체를 모르는 주민도 많아 갈등이 반복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분쟁 조정 창구도 마땅치 않다. 공동주택관리법상 입주자 간 분쟁은 1차적으로 관리사무소나 입주자대표회의가 조정하도록 돼 있지만, 강제력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각 지방자치단체에 설치된 공동주택관리분쟁조정위원회가 있지만 반려동물 관련 분쟁은 소음·누수 등 다른 민원에 비해 접수 비중이 낮고, 조정 결과도 권고적 성격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변호사는 "반려동물 소음이나 냄새로 인한 피해는 수인한도를 넘었는지 판단이 애매해 법적 구제로 이어지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결국 공동체 내 자율적 합의가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소송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중도에 이사를 가거나 참고 사는 쪽으로 마무리된다"고 전했다.
양육 가구와 비양육 가구 사이의 인식 차이도 갈등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주민은 "가족처럼 여기는 존재를 제한하는 규약이 과도하다"고 느끼는 반면, 기르지 않는 주민은 "공용공간은 모두의 공간인데 일방적으로 배려를 강요받는다"고 토로한다. 한 공동주택관리 연구위원은 "반려동물 갈등은 단순한 소음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내 생활양식 차이에서 비롯된 가치관 충돌의 성격이 강하다"며 "규약만으로 해결하기보다 입주민 간 소통 채널을 상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양쪽 모두 자신이 피해자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아 중재자가 한쪽 편을 드는 순간 갈등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몇몇 지자체와 공동주택관리 관련 협회는 반려동물 동반 입주민과 비동반 입주민 간 소통을 돕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반려동물 등록 현황을 관리사무소가 파악해 긴급 상황에 대응하거나, 분기별로 입주민 간담회를 열어 불만 사항을 사전에 조율하는 방식이다. 일부 단지에서는 반려동물 동반 주민 모임을 따로 만들어 돌발 민원이 발생하기 전에 자율적으로 문제를 조정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다만 이런 시도는 아직 일부 단지에 국한돼 있고, 전국적으로 표준화된 모델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전문가들은 관리규약 개정만으로 모든 갈등을 해소하기 어렵다고 본다. 한 노무사 출신 공동주택 자문위원은 "규약은 최소한의 행동 기준을 제시할 뿐 당사자 간 감정의 골까지 메우지는 못한다"며 "입주민 교육이나 중재 프로그램이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반려동물 민원이 잦은 단지일수록 입주자대표회의 차원에서 전담 민원 창구를 운영하거나, 외부 조정 전문가를 초빙해 갈등 해소 교육을 진행하는 사례도 조금씩 늘고 있다. 한 관리소장은 "민원이 들어오면 양측 모두 자료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중재를 맡은 직원이 법적 지식까지 갖춰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반려동물 동반 가구가 계속 늘어나는 만큼 분쟁 조정 체계도 함께 손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주택관리사는 "공동주택관리분쟁조정위원회에 반려동물 전담 소위원회를 두거나, 관리규약 표준안에 반려동물 관련 조항을 의무적으로 포함하는 방안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처럼 단지마다 제각각인 규약으로는 이사할 때마다 입주민이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김 씨는 결국 관리사무소의 권유로 이웃과 직접 대화에 나섰다. 산책 시간을 조정하고 방음 매트를 추가로 깔기로 하면서 갈등은 일단락됐지만, 같은 단지 안에서 비슷한 민원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반려동물 관련 민원은 매달 몇 건씩 꾸준히 들어온다"며 "규약 개정 논의를 다음 입주자대표회의 안건으로 올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입주민 전체의 동의를 얻는 과정이 쉽지 않지만, 더는 미룰 수 없는 문제라는 공감대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