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급률과 예산 격차가 가른 교통약자 이동권

휠체어를 탄 교통약자가 병원 진료 시간에 맞춰 특별교통수단을 호출했지만 차량은 한 시간이 넘도록 오지 않았다. 지방 중소도시에 사는 중증장애인 최모 씨(52)는 통원 치료 때마다 콜택시 대기 시간을 계산해 두 시간 전부터 예약 전화를 돌린다. 같은 날 수도권 대도시에 사는 다른 장애인은 평균 20여 분 만에 차량을 배차받는다. 똑같은 제도 아래 있는데도 체감하는 이동 환경은 지역마다 크게 다르다.
최 씨는 "병원 예약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전화를 걸어도 배차가 확정되는 건 그보다 더 늦은 경우가 많다"며 "진료를 못 받고 돌아선 적도 여러 번"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 오는 날이나 겨울철에는 대기 시간이 더 길어져서 아예 외출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또 다른 이용자 김모 씨(38)는 "차량이 금방 오는 편이라 출퇴근길에도 활용한다"며 "지방에 사는 지인들의 사정을 들으면 같은 제도를 쓰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라고 전했다.
특별교통수단은 휠체어를 탄 채로 탑승할 수 있도록 개조된 차량으로, 보행에 큰 제약이 있는 교통약자가 저상버스나 일반 택시를 이용하기 어려운 경우를 보완하기 위해 운영된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는 관할 지역 보행상 중증장애인 수를 기준으로 법정 대수를 확보하도록 돼 있다. 국토교통부는 매년 지자체별 운영 실태를 점검해 결과를 공개하고 있는데, 법정 기준을 충족한 지자체와 그렇지 못한 지자체 간 편차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법정 대수를 채웠다고 해서 이동이 원활해지는 것도 아니다. 차량 대수는 기준을 맞췄더라도 운영 인력, 운행 시간대, 배차 시스템의 효율성에 따라 실제 대기 시간은 크게 달라진다. 대도시는 이용 수요가 많은 만큼 차량 회전율을 높이는 광역 이동지원센터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지만,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은 차량 한 대가 넓은 면적을 커버해야 해 배차 간격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야간이나 주말 운행을 축소한 지자체도 적지 않아 평일 근무시간 외에는 사실상 이동 수단이 끊기는 지역도 있다. 일부 지자체는 공휴일에는 당직 차량만 운영해 응급 상황이 아니면 사실상 호출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야간 응급 진료나 경조사 참석처럼 예정에 없던 이동이 필요할 때 교통약자가 겪는 불편은 더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산 문제는 이 격차의 핵심 원인으로 꼽힌다. 특별교통수단 운영비는 국비와 지방비를 함께 투입하는 구조인데,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일수록 지방비 부담을 늘리기 어렵다. 차량 구입비뿐 아니라 운전 인력 인건비, 콜센터 운영비, 차량 유지보수비까지 더해지면 연간 운영 예산은 상당한 규모로 불어난다. 특히 특별교통수단 차량은 일반 승합차보다 개조 비용이 추가로 들어가고, 내구연한이 지나면 교체 비용 역시 만만치 않아 재정 여력이 부족한 지자체는 노후 차량을 계속 운행하는 경우도 있다.
지자체마다 예산 편성 우선순위가 다르다 보니 복지 예산 내에서도 특별교통수단이 다른 사업에 밀리는 경우가 생긴다는 게 복지 담당 공무원들의 설명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복지 예산 총액이 정해져 있다 보니 노인 복지, 아동 복지 사업과 경쟁하는 구조"라며 "특별교통수단만 따로 떼어 우선 배정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고 말했다.
인력 수급도 만만찮은 과제다. 특별교통수단 운전원은 일반 택시 기사보다 더 세심한 승하차 보조가 필요하지만 처우는 크게 다르지 않아 이직률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휠체어 고정, 승하차 보조, 이용자 응대까지 추가 업무가 많은데도 임금 체계는 일반 운전직과 큰 차이가 없어 숙련된 인력이 오래 근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사회복지 분야 연구위원은 "차량 대수만 늘린다고 서비스 질이 좋아지는 게 아니다"라며 "운전 인력의 고용 안정성과 처우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대기 시간 문제도 풀린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자체 간 예산 격차를 국비 지원 비율 조정으로 일부 보완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처럼 지방비 비중이 높은 구조에서는 재정이 열악한 지역일수록 서비스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장애인단체들은 특별교통수단이 단순한 복지 서비스가 아니라 이동권이라는 기본권의 영역이라고 강조한다. 한 장애인 이동권 관련 협회 관계자는 "거주 지역에 따라 병원에 갈 수 있는 시간이 달라지는 건 심각한 불평등"이라며 "법정 기준 대수 확보를 넘어 실제 대기 시간과 운행 범위까지 평가 기준에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동지원센터 간 정보 연계가 부족해 광역 이동 시 환승이나 연계 배차가 어려운 점도 개선 과제로 꼽았다. 그는 "인접 지자체로 넘어가는 순간 담당 기관이 바뀌면서 재호출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거주지와 목적지가 다른 지자체면 이동 자체를 포기하는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지자체 입장도 간단치만은 않다. 한 지자체 교통행정 담당자는 "법정 대수를 맞추는 것 자체도 예산 편성 과정에서 매년 쉽지 않은 협상"이라며 "인구가 적고 면적이 넓은 지역은 대수를 늘려도 운행 효율이 떨어지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지자체는 인접 지자체와 광역 운영 협약을 맺어 차량을 공동 활용하는 방식으로 효율을 높이려 시도하고 있지만, 행정구역을 넘는 운영 체계를 갖추기까지는 조율할 사안이 많다는 설명이다. 담당자는 "운영 주체가 다른 지자체 간 전산 시스템을 통합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예산과 시간이 모두 필요한 작업"이라고 덧붙였다.
국토교통부는 매년 발표하는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를 통해 지자체별 법정 대수 충족률과 운영 현황을 공개하고 있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지자체에는 개선 계획을 요구하고 있지만, 강제성이 크지 않아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복지 분야 전문가들은 특별교통수단 운영을 지자체 재량에만 맡기기보다 국가 차원의 표준 운영 지침과 안정적인 재정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은 지난 2005년 제정된 이후 여러 차례 개정을 거치며 특별교통수단의 법정 대수 기준을 구체화해왔다. 그러나 법 개정만으로는 지역 간 재정 여건 차이에서 비롯된 운영 격차를 메우기 어렵다는 지적이 현장에서 계속 나오고 있다. 일부 장애인단체는 법정 대수 기준 자체를 보행상 중증장애인 수뿐 아니라 지역 면적과 교통 인프라 여건까지 반영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전국의 특별교통수단 이용자들은 오늘도 각자 사는 지역의 사정에 따라 서로 다른 대기 시간을 견디며 이동을 준비하고 있다. 최 씨는 "다음 진료 날짜가 잡히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콜택시 예약 전화"라며 "이동 수단을 확보하는 일이 치료를 받는 일만큼이나 큰 과제가 됐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