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교체율 격차 크고 예산 부족에 공사 밀려

수십 년 전 묻힌 수도관이 땅속에서 녹슬어가는 동안, 교체 공사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노후 상수도관 교체가 지방자치단체별로 큰 편차를 보이면서 지역 주민들이 체감하는 수돗물 안전 수준도 제각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부가 매년 집계하는 상수도 통계에 따르면 내용연수(법정 사용연한)를 넘긴 노후관은 전국적으로 여전히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재정 여건이 열악한 중소 지자체일수록 교체율이 낮은 경향이 뚜렷하다. 특히 1970~80년대 산업화 시기에 집중적으로 매설된 관로가 일제히 내용연수를 넘기면서 교체 수요가 한꺼번에 몰리는 지역도 적지 않다.

상수도관의 법정 내용연수는 통상 20년에서 40년 사이로 정해져 있다. 관의 재질에 따라 주철관, 강관, 경질염화비닐관 등으로 나뉘며 재질별로 부식 속도와 교체 우선순위가 달라진다. 이 기간을 넘긴 관은 부식과 균열로 녹물이나 이물질이 섞여 나올 위험이 커지고, 누수로 인한 유수율(생산된 물 대비 실제 공급되는 물의 비율) 저하로도 이어진다. 유수율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정수 처리를 거친 물이 땅속에서 새어나가고 있다는 뜻으로, 지자체로서는 생산 비용만 들이고 수입으로 이어지지 않는 손실을 떠안는 셈이다. 환경부는 노후관 정비 사업을 국고보조 형태로 일부 지원하고 있지만, 전체 교체 비용의 상당 부분은 지자체 자체 예산으로 충당해야 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일수록 교체 계획을 세워놓고도 실행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설명이다.

한 상하수도 관련 학회 소속 연구위원은 "노후관 교체는 도로를 굴착해야 하는 대규모 공사라 단가가 높고, 지자체 입장에서는 당장 눈에 보이는 민원이 없으면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쉽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인구가 줄어드는 지방 중소도시는 상수도 요금 수입만으로는 시설 유지와 교체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상수도 요금은 원가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책정된 지역이 많아, 정비 재원을 요금 수입에서 끌어오기 힘든 현실도 걸림돌로 꼽힌다. 이 연구위원은 "관로 하나를 교체하는 공사비가 수억 원대에 이르는 경우도 있어 소규모 지자체 한 해 예산으로는 몇 개 구간을 처리하는 데 그친다"며 "결국 전체 노후관을 다 걷어내는 데 수십 년이 걸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교체 공사가 지연되면서 불편을 겪는 주민들의 사례도 적지 않다. 지방 소도시에 거주하는 김모 씨(58)는 "아침에 수돗물을 틀면 간혹 흙빛이 도는 물이 나올 때가 있어 한참을 흘려보내고 쓴다"며 "민원을 넣어도 예산 문제로 당장 교체는 어렵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전했다. 또 다른 지역 주민 박모 씨(64)는 "구간별로 공사를 나눠서 하다 보니 우리 동네 차례가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농촌 지역에 사는 이모 씨(71)는 "식수는 믿고 못 마셔서 늘 생수를 사서 먹는다"며 "수돗물은 설거지나 세탁용으로만 쓴 지 오래됐다"고 말했다. 이런 불신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가계의 추가 지출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로 지적된다.

반면 수도권 대도시나 재정 여건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광역시는 노후관 교체율이 높은 편이다. 상수도 관망 정보화 사업을 통해 누수 구간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우선순위를 정해 체계적으로 교체 공사를 진행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센서와 인공지능 분석 기술을 활용해 누수 의심 구간을 조기에 찾아내는 스마트 관망 관리 체계를 도입한 지역도 있다. 이런 지역은 유수율도 높아 물 손실에 따른 비용 낭비도 상대적으로 적다는 평가를 받는다. 결국 같은 나라 안에서도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수돗물 공급 인프라의 노후 정도와 안전 수준이 달라지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노후관 교체가 단순한 토목 공사가 아니라 공중보건과 직결된 문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한 환경보건 분야 전문의는 "노후관에서 발생하는 녹물 자체가 당장 건강에 급성 위해를 끼치는 경우는 드물지만, 장기간 방치된 배관에서는 미생물 번식이나 중금속 용출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며 "지자체는 수질 검사 결과를 주기적으로 공개하고 이상이 확인되면 신속히 보수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이 수돗물의 안전성을 스스로 판단하기는 어려운 만큼, 의심되는 경우 지자체 상수도 사업소나 보건환경연구원에 수질 검사를 요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이 전문의는 "특히 영유아나 노약자가 있는 가정은 녹물이 계속 나올 경우 한 번 더 확인해보는 것이 안전하다"고 당부했다.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노후 상수도 정비를 위한 지원 예산을 매년 편성하고 있다. 하지만 전국 모든 노후관을 한꺼번에 교체하기에는 재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환경부 안팎의 공통된 평가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노후도가 심각한 지역부터 우선 지원하는 선택과 집중 방식의 재정 배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상수도 요금 현실화 문제도 꾸준히 거론되지만, 가계 부담 증가에 대한 우려로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일부 지자체는 요금 인상 대신 국비 지원 비율을 늘려달라고 환경부에 건의하고 있지만, 중앙정부 재정 역시 한정돼 있어 모든 요구를 수용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지방 상수도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한 지자체 관계자는 "매년 교체 계획을 수립하지만 국비 지원 규모에 따라 실제 집행률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노후관이 많은 구간부터 단계적으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전체 물량을 소화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수도관 하나를 교체하는 데에도 도로 점용 허가, 교통 통제, 주민 협의 등 여러 행정 절차가 수반돼 공사 기간이 길어지는 경우도 많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주택가 이면도로 공사는 교통 통제 범위를 최소화해야 해서 밤 시간대에 작업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며 "주민 불편을 줄이려다 보니 공사 속도 자체가 더뎌지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상수도 통계와 노후관 현황을 지자체별로 공개하고 있으며, 주민들은 거주 지역의 상수도 사업본부나 관련 공공기관 누리집을 통해 수돗물 수질 검사 결과와 노후관 교체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가정에서 수돗물의 색이나 냄새에 이상을 느낄 경우 즉시 사용을 중단하고 해당 지자체 상수도 부서에 문의하는 것도 방법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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