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카메라·공유기까지 해킹 위험…전문가 "초기 비밀번호부터 바꿔야"

거실 한쪽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로봇청소기, 현관을 비추는 홈카메라, 음성으로 조명을 켜는 인공지능(AI) 스피커까지. 한 가정에 연결된 사물인터넷(IoT) 기기가 늘어나면서 편리함 뒤에 숨은 보안 위험도 함께 커지고 있다. 특히 로봇청소기에 탑재된 카메라와 센서가 집 안 구조와 생활 패턴을 실시간으로 수집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의 불안도 커지는 분위기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가정에서 사용하는 IoT 기기 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로봇청소기, 홈카메라, 스마트 도어락, 공유기, AI 스피커 등이 모두 인터넷에 상시 연결돼 있어 하나의 기기가 뚫리면 같은 네트워크에 연결된 다른 기기까지 연쇄적으로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가정용 카메라가 해킹돼 사생활 영상이 외부로 유출되는 사례가 여러 차례 보고된 바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은 매년 IoT 기기 관련 침해 신고 건수를 집계해 공개하고 있는데, 가정용 기기를 겨냥한 신고 건수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많은 가정이 기기를 설치할 때 초기 비밀번호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공유기 펌웨어(기기 운영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미루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보안 업계 관계자는 "제조사가 출고 시 설정한 기본 비밀번호는 인터넷에서 쉽게 검색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를 바꾸지 않고 쓰는 가정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하나의 기기가 뚫리면 공격자가 가정 내부 네트워크 전체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리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공격자는 특정 기기를 직접 노리기보다 네트워크 전체를 스캔해 가장 취약한 지점을 먼저 찾는 방식을 쓴다"며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은 구형 공유기나 카메라가 그 첫 관문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로봇청소기는 특히 집 안 구조를 지도화하는 라이다(LiDAR) 센서와 카메라를 함께 탑재한 제품이 늘면서 보안 전문가들 사이에서 새로운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한 정보보안 연구위원은 "로봇청소기가 수집한 공간 정보와 이동 패턴 데이터가 클라우드 서버에 저장되는 경우, 서버가 공격받으면 집 안 구조까지 노출될 수 있다"며 "단순 청소 기기가 아니라 하나의 데이터 수집 장치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제품은 반려동물이나 가족 구성원의 얼굴을 인식해 맞춤형 청소 경로를 짜는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며 "편의 기능이 늘어날수록 수집되는 개인정보의 범위도 함께 넓어진다는 점을 소비자들이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피해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서울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모 씨(42)는 몇 달 전 홈카메라 애플리케이션에서 낯선 기기가 자신의 카메라에 접속한 기록을 발견했다. 김씨는 "비밀번호를 설치 당시 그대로 두고 신경 쓰지 않았던 게 화근이었다"며 "경찰에 신고하고 나서야 공유기와 카메라 비밀번호를 모두 바꿨다"고 전했다. 이런 사례는 커뮤니티나 소비자 상담 게시판에서도 드물지 않게 발견된다. 경기도에 사는 주부 이모 씨(37)는 로봇청소기 애플리케이션에 접속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을 뒤늦게 확인하고 제조사 고객센터에 문의한 끝에 계정 해킹 가능성이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씨는 "아이가 집에 있는 시간과 생활 패턴까지 기기에 기록된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IoT 기기의 보안 인증 제도를 운영하며 제조사들이 일정 수준의 보안 기준을 충족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 직구나 중소 제조사 제품의 경우 인증을 받지 않은 기기도 시중에 유통되고 있어 소비자가 직접 확인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 관계자는 "제품 구매 전 보안 인증 마크 유무를 확인하는 것이 기본적인 예방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가형 해외 직구 제품 중에는 보안 업데이트 지원이 아예 중단된 경우도 있어, 구매 당시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취약점이 그대로 방치되는 사례가 많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가정에서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보안 수칙으로 몇 가지를 꼽는다. 먼저 모든 IoT 기기의 초기 비밀번호를 설치 직후 복잡한 조합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점이다. 공유기 역시 기본 관리자 비밀번호를 바꾸고, 가능하면 손님용 네트워크와 가정용 네트워크를 분리해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손님용 와이파이를 따로 운영하면 외부인이 접속하더라도 가정 내 스마트 기기까지 접근하기는 어려워진다. 한 보안 컨설턴트는 "가정용 네트워크를 분리하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은 크지 않지만,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며 "공유기 설정 화면에 들어가 몇 분만 투자하면 되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기기와 애플리케이션의 펌웨어 업데이트도 주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제조사들은 보안 취약점이 발견되면 업데이트를 통해 이를 보완하는데, 알림을 무시하고 방치하면 이미 알려진 취약점이 그대로 노출된 상태로 남는다. 또한 사용하지 않는 기기의 원격 접속 기능은 꺼두고, 클라우드 계정에는 2단계 인증을 설정하는 것이 권장된다. 특히 중고로 기기를 사고팔 때는 이전 사용자의 계정 정보가 완전히 삭제됐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정용 카메라의 경우 설치 위치도 중요한 고려 요소로 꼽힌다. 침실이나 욕실 등 사생활 노출 우려가 큰 공간보다는 현관이나 거실 등 공용 공간 위주로 설치하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렌즈를 가리거나 전원을 차단하는 방법도 거론된다. 로봇청소기 역시 애플리케이션에서 위치 데이터나 영상 저장 옵션을 확인해 불필요한 기능은 꺼두는 것이 좋다는 조언이 나온다. 일부 제조사는 영상이나 지도 데이터를 기기 내부에만 저장하고 외부 서버로 전송하지 않는 설정을 제공하는데, 이런 옵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소비자원과 보안 업계는 스마트홈 기기를 구매할 때 제조사의 보안 정책과 개인정보 처리 방침을 확인하는 습관도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특히 데이터가 어느 서버에 저장되고 얼마나 보관되는지, 해킹 사고 발생 시 고지 의무가 명시돼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실질적인 예방책이 될 수 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개인정보 처리 방침을 꼼꼼히 읽는 소비자는 많지 않지만, 데이터 보관 기간과 제3자 제공 여부만 확인해도 상당 부분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기 하나하나의 편리함만큼이나 연결된 네트워크 전체의 보안 상태를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출처===
한국인터넷진흥원
방송통신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
한국소비자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