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김심야가 6년 만에 정규 2집 도그마를 발표했다 (사진= 소속사 제공)

래퍼 김심야가 6년 만에 정규 2집 ‘도그마(Dogma)’를 발표했다. 앨범은 26분짜리 뮤직비디오와 건너뛰기 기능이 없는 한정판 재생기로 감상 방식을 구성했다. 영상에는 앨범 수록곡을 통째로 이어 붙였고, 실물 음반은 CD가 아닌 전용 재생기에 담았다. 스트리밍 플랫폼에 공개한 음원은 영상과 재생기에 수록된 음악과 다르게 만들었다. 한 앨범을 듣는 통로에 따라 음악도 달라지는 셈이다.

앨범을 둘러싼 반응에는 ‘대중적’이라는 평가와 ‘대중의 적’이라는 농담이 함께 붙었다. 이전 음악보다 귀에 잘 들어오는 소리가 담겼지만, 재생 중 다음 곡으로 넘어갈 수 없는 음반과 긴 영상은 청자에게 끝까지 듣는 방식을 요구한다. 김심야는 최근 서울 종로구 조계사 인근에서 만난 자리에서 이 불편함을 명상할 때의 감각과 연결했다. 그는 “명상할 때 ‘움직이고 싶다, 움직이고 싶다’는 감정과 음악을 들을 때 ‘스킵하고 싶다, 스킵하고 싶다’는 감정이 비슷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기분을 ‘우리 함께 느껴보자’는 마음이 들었죠”라고 말했다.

26분 영상과 건너뛸 수 없는 음반

‘도그마’의 뮤직비디오는 통상적인 곡별 영상과 달리 앨범 수록곡을 한 편의 26분 영상으로 묶었다. 박찬욱 감독의 동생인 현대미술가 박찬경이 연출을 맡았다. 영상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을 부수고 다시 짓는 장면 등이 담겼으며, 스산한 풀숲과 건물 공사 현장, 목탁 대신 칼을 든 스님도 등장한다. 박찬경은 자신의 그림과 영상을 편집해 영상의 시각적 흐름을 만들었다. 앨범은 10곡으로 구성됐다.

실물 음반은 4500개 한정 제작됐다. CD 대신 음악이 내장된 전용 재생기 형태이며, 재생과 정지 기능은 있지만 다음 곡으로 넘어가는 ‘스킵’ 기능은 없다. 후반부 수록곡을 들으려면 앞부분부터 재생해야 하는 구조다. 김심야는 명상용 소리를 반복 재생하는 ‘부다 머신’에서 재생기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혔다. 명상할 때 움직이고 싶은 충동을 참는 경험과 음악을 들으며 곡을 건너뛰고 싶어지는 충동을 나란히 놓고, 그 감각을 청자와 나누려 했다는 설명이다.

영상과 재생기 안의 음악, 스트리밍 음원은 같은 방식으로 편집되지 않았다. 스트리밍 플랫폼에는 재생기와 뮤직비디오에 담긴 음악과 다른 편곡의 음원들을 공개했다. 스트리밍에서는 곡을 골라 들을 수 있지만, 한정판 재생기에서는 수록곡 순서를 건너뛸 수 없다. 피치포크는 ‘도그마’에 10점 만점에 7.7점을 줬다. 원문에 따르면 이는 국내 힙합 음반 가운데 이 매체가 준 최고점이다. 김심야는 청자가 스킵하고 싶은 마음을 참은 뒤 “그걸 참고 나면 확실히 머릿속이 조용해진다. 제가 무엇보다 원했던 결과”라고 말했다.

반복과 고요를 만든 생활 변화

김심야는 이번 앨범을 설명하면서 ‘반복’과 ‘고요’를 거듭 언급했다. 그는 “최근 말수가 줄고, 반복이 주는 안정감에 집중하는 저의 삶의 변화가 많이 담겼다”고 했다. 변화의 배경으로는 2020년부터 약 2년간 이어진 사회복무요원 생활과 이후의 결혼을 들었다. 어릴 때부터 생각이 많아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정해진 일과를 따르며 뜻밖의 안정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는 “공익 생활을 하면서 반복적으로 출퇴근하고 단순 노동을 하니까 정신이 깨끗해지는 걸 느꼈다”면서 “그때부터 반복에 많이 꽂혔다”고 말했다. 일과를 반복하며 경험한 안정감은 음악의 형식에도 이어졌다. 명상용 소리를 반복 재생하는 부다 머신에서 전용 재생기의 착상을 얻었고, 테크노의 반복적인 리듬을 앨범에 끌어들였다. 제목부터 반복을 강조한 수록곡 ‘HDI HDI HDI HDI HDI HDI’에도 같은 실험을 담았다. 김심야는 “어떤 장르들이 테크노의 트랜스(반복되는 소리와 박자를 따라가며 명상처럼 몰입하는 상태)의 경지로 청자들을 보내줄 수 있을까를 깊이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불교적 가르침도 그가 안정을 얻기 위해 찾은 요소다. 스스로를 “석가의 팬”이라고 표현한 김심야는 불교 자체보다 석가의 말과 철학에 끌렸다고 했다. 갈등에서 한 발 물러나는 태도가 결혼 생활에서 겪은 음악 환경 변화에 따른 스트레스와 부부 갈등을 피하고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현재 초기 불교 경전 ‘숫타니파타’를 읽고 있다고 밝혔다. 앨범에 담긴 반복적인 소리와 고요에 대한 관심은 사회복무요원 생활, 결혼, 명상과 불교에 대한 관심 등 그가 직접 밝힌 생활의 변화와 이어져 있다.

독설 랩에서 소리의 표현으로

김심야는 2016년 DJ 프랭크와 듀오 XXX를 결성해 데뷔했다. 미국 조지워싱턴대에 입학한 직후 자퇴하고 국내 힙합계에 들어온 그는 래퍼들의 현주소를 비판하는 독설적 랩으로 마니아층과 평단의 지지를 얻었다. 프랭크는 이후 뉴진스 전담 프로듀서로 알려졌으며, 두 사람은 함께 활동하며 XXX의 음악을 발표했다. 김심야는 XXX 활동 외에도 솔로 뮤지션으로 음반을 내왔고, NCT·엑소·레드벨벳 등 K팝 곡의 랩 메이킹 작업에도 참여했다.

6년 만의 정규 2집에는 이태원 DJ 신에서 활동하는 사운드 서플라이 서비스가 전곡 프로듀싱에 참여했다. 앨범에는 ‘마이 라이프 & 나싱 엘스’, ‘무브 마이 피트’, ‘9 아웃 오브 10’, ‘HDI HDI HDI HDI HDI HDI’ 등이 실렸다. 전반부는 전자음악의 색채를 앞세웠고, 세 번째 트랙 ‘T-H-I-R-S-T-Y’는 상당 부분을 랩 대신 소리로 채웠다. ‘HDI HDI HDI HDI HDI HDI’에는 서정적인 멜로디를 배치했다. 김심야는 “말(랩) 외에 소리(사운드)라는 표현의 도구가 하나 더 생겨난 것 같다”며 “말로는 전달할 수 없는 것을 소리로는 전할 수 있다. 그래서 소리에도 흥미를 많이 갖게 됐다”고 말했다.

앨범의 마지막 트랙 ‘킵 카운팅(Keep Counting)’에는 비트와 랩이 함께 담겼다. 김심야는 전반부에 앞으로 가고자 하는 방향을, 후반부에는 자신을 기다린 청자들이 만족할 만한 음악을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보다 듣기 편한 음악을 만들고 대중성을 바라보는 태도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대중성을 자신이 청자에게 선사하는 요소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요리를 함께 완성하는 조미료 같은 요소로 본다는 것이다. 밴드 혁오의 리더 오혁과 협업한 배경에 대해서는 자기 색깔을 지키면서 대중적 요소로 음악을 확장하는 모습이 자신이 지향하는 음악이라고 설명했다.

데뷔 10주년을 돌아보며 말한 소통

올해는 김심야와 XXX의 데뷔 앨범 ‘교미(KYOMI)’ 발매 10주년이다. 새 앨범 수록곡 ‘9 아웃 오브 10’ 등에는 지난 10년에 대한 소감이 담겼다. ‘도그마’라는 제목은 ‘독선적’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김심야는 지난 10년 동안 자신이 최고라고 여기며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독선 때문에 기회를 놓친 것은 아닌지 돌아봤다고 밝혔다. 그는 예술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음악을 확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왔다고 설명했다.

김심야는 과거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제발 그냥 사이좋게 지내봐”라고 답했다. 랩이 자신에게 소통 창구였고, 비판적인 독설 랩도 결국 함께 이야기하고 친구가 되자는 뜻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앨범을 두고 바라는 반응도 소통에 맞춰 설명했다. 그는 “긍정도, 부정도 좋으니 이번 앨범에 조롱하고 싸우는 댓글 대신, 소통할 수 있는 ‘감상평’이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제겐 음악이 곧 대화이고 소통이니까요”라고 말했다.

김심야는 사회복무요원 생활과 결혼 이후의 변화, 반복에서 얻은 안정감, 불교적 가르침과 음악의 관계를 새 앨범에 담았다. 그는 현재 ‘숫타니파타’를 읽고 있다고 밝혔다. 26분 영상과 순서대로 재생되는 한정판 음반, 별도 편곡의 스트리밍 음원은 ‘도그마’를 듣는 서로 다른 경로로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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