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이르쿠츠크주의 페스트 연구소에서 병원체가 든 시험관이 깨지고 연구원이 숨진 사건을 두고 미국이 러시아에 추가 정보 공개를 촉구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6일(현지시간) 아이슬란드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아직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두고 추측을 늘어놓는 것은 무책임하다면서도, 러시아가 세계와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 기관들은 사고 경위와 사망 원인, 병원체 확산 여부 등을 파악하고 있다. 숨진 연구원이 생물무기 연구에 관여했다는 증거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미국 당국자와 전문가들은 연구소의 연구 내용도 확인하려 하고 있다.

시험관 파손 나흘 뒤 입원…연구원 사망

사고는 지난달 25일 러시아 이르쿠츠크주 셸레호프시에 있는 페스트 방역 연구소에서 발생했다. 참고 보도에 따르면 28세 연구원 다리야 시필로바가 페스트 병원체가 든 시험관을 깨뜨렸다. 원문은 연구소를 이르쿠츠크 페스트 방역 연구소로 설명했으며, 다른 보도는 항페스트 연구소라고 전했다. 사고 뒤 연구원은 지난달 29일 중증 폐렴 증상으로 입원했고, 이달 1~2일 사이 숨졌다. 러시아 보건 당국은 사망 원인을 ‘원인 불명의 폐렴’이라고 발표했으며, 폐렴형 페스트 감염으로 숨졌다는 의혹은 언론 보도를 통해 제기됐다.

날짜경과
25일페스트 병원체가 든 시험관 파손
29일연구원 중증 폐렴 증상으로 입원
1~2일연구원 사망

숨진 연구원이 병원체에 감염됐는지, 폐렴형 페스트가 사망 원인이었는지는 자료에 나온 공식 발표만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현지 독립매체는 연구원이 이송된 병원에서 약 200명이 격리 관찰 대상으로 지정됐고, 시내 산부인과 병원에도 격리 조처가 내려졌다고 보도했다. 다른 보도는 러시아 당국이 약 200명을 격리했다고 전했다. 러시아 당국은 접촉자 검사에서 페스트 2차 감염 사례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는 보도도 있다. 숨진 연구원과 접촉한 사람들의 상태와 격리 조치의 범위에 관한 내용은 매체 보도와 러시아 측 발표로 전해지고 있다.

루비오 “러시아가 더 많은 정보 공유해야”

루비오 장관은 6일 아이슬란드를 방문한 자리에서 러시아의 정보 공개를 요구했다. 그는 “아직 모든 정보를 확인하지 못한 상황에서 추측만 늘어놓는 것은 무책한 일”이라며 “러시아가 세계에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해야 할 의무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더 많이 알수록 더 잘 대응할 수 있다. 어쩌면 별일 아닐 수도 있고 어쩌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문제일 수 있다”고 했다. 사고의 심각성을 단정하지 않으면서도, 대응을 위해 러시아의 구체적인 정보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루비오 장관은 “만약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더 심각하다면 이에 대처할 조처들이 이미 마련돼 있다”며 “우리는 시간 단위로 상황을 매우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까지 정보가 상당히 제한적이라며 “앞으로 몇 시간, 며칠 내에 상황이 바뀌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장관은 전날 아이슬란드로 출발하기 전에는 “불안해할 사안은 아니지만 주목하고 계속 지켜볼 사안이며,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루 뒤에는 러시아의 정보 제공 부족을 직접 거론하며 추가 공개를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기자들에게 “현재까지 우리는 매우 심도 있는 논의를 하고 있다. 아마 내일이면 그것에 관해 보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AP·AFP 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곧 통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미국 기관, 사고 경위와 연구 내용 파악

미 당국은 사고와 관련해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고 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무부, 질병예방대응본부(ASPR)와 다른 기관들이 사건을 더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미국의 전·현직 당국자들은 연구소에서 페스트 표본을 변형하려고 기능획득 기법을 사용했는지도 확인하려 한다. 기능획득은 병원체의 감염력을 높이거나 약물에 대한 면역력을 높이는 기법을 뜻한다. 미국이 확인하려는 사안에는 숨진 연구원의 발병과 사망 원인, 병원체가 외부로 확산했는지, 확산이 차단됐는지 등이 포함된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에서 코로나19 대응을 총괄한 아시시 자 전 백악관 조정관은 러시아 보안당국이 숨진 연구원의 병원 호송에 관여했다는 미확인 보도를 언급하며 “이는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공격용 생물무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우리는 이 시설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미 국무부는 2024년 러시아가 공격적 생물무기 프로그램을 유지하고 있으며 옛 소련의 프로그램을 흡수해 발전시켜왔다고 평가한 바 있다. 제임스 마틴 비확산센터도 해당 연구소와 관련해 러시아 군 당국이 변형 병원체에 대한 백신과 진단법을 개발했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고 미국 언론이 전했다.

생물무기 의혹 제기됐지만 연구원 관련 증거 없어

미국 언론과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가 러시아의 합법적인 페스트 연구 과정에서 발생했는지, 생물무기 개발 프로그램과 관련됐는지 규명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숨진 연구원이 무기화됐거나 유전자가 조작된 세균 연구에 관여했다는 증거는 없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연구원은 최근 동물에서 페스트가 자연적으로 발병하는 러시아·몽골 국경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연구소의 연구 내용에 대한 의문과 연구원의 감염 경로는 별개의 사안으로 제기돼 있으며, 공개된 자료에는 두 사안을 결론 내릴 정보가 담겨 있지 않다.

러시아 측 설명과 관련해선 정보가 엇갈린다. 러시아 보건 당국은 연구원의 사망을 원인 불명의 폐렴으로 발표했고, 러시아는 세계보건기구(WHO)에 이르쿠츠크에서 페스트 감염 사례가 없으며 상황이 통제되고 있다고 전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러시아 측은 접촉자 검사 결과도 모두 음성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현지 독립매체는 병원 격리 관찰과 산부인과 병원 격리 조처를 보도했다. 셸레호프 당국이 소셜미디어에 여행 자제를 촉구하는 게시물을 올렸다가 삭제했다는 보도도 나왔으나, 관련 경위는 확인되지 않았다. 러시아 대통령 대변인은 로스포트레브나드조르의 공식 발표를 신뢰하고 루머와 추측을 무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사망 원인과 병원체 확산 여부 등에 관한 정보가 부족해 여행 경보나 미국 입국 제한 등 예방 조처의 필요성을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보건 당국자인 데이비드 맨스도어퍼는 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지침이 마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대응 조치에는 국무부의 여행 경보 발령, 해당 지역 미국인에 대한 지침 전달, CDC의 여행 보건 규칙 발표 등이 포함된다. 루비오 장관은 러시아가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하기를 촉구하며 미국이 상황을 계속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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