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혜련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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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타임스 = 정시환 기자] 반세기 넘게 한국 코미디의 현장을 지켜온 원로 코미디언 전유성이 세상을 떠났다. 폐기흉 증상이 악화되며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향년 76세.

25일 오후 9시 5분, 전유성은 서울아산병원에서 딸 제비 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한국방송코미디언협회는 “이미 마음의 각오는 했지만, 너무 안타깝고 슬프다”고 밝혔다.

전유성은 지난 7월 초 기흉 관련 시술을 받았고, 이후 호흡 곤란이 이어졌다. 상태가 악화되면서 다시 병원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1949년생. 전유성의 이름은 곧 한국 방송 코미디의 역사다. 서라벌예고와 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1968년 TBC 동양방송 특채 작가로 방송계에 들어왔다. 이듬해에는 코미디언으로도 데뷔하며 방송 작가와 출연자를 넘나드는 독특한 행보를 시작했다.

그가 참여한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시대를 대표했다. ‘유머 1번지’, ‘쇼 비디오 자키’ 등은 1970~80년대 안방극장을 웃음으로 물들였고, 이후 ‘개그콘서트’의 원안을 제공하며 공개 코미디라는 새로운 무대를 열었다.

‘개그맨’이라는 단어도 그가 방송가에 처음 뿌린 용어다. 당시 ‘코미디언’이란 직업명보다 스스로를 전문 예능인으로 정의하려는 움직임 속에서 전유성이 만들어낸 명칭은 이후 방송계 전반에 퍼졌다.

무대 밖에서도 전유성의 영향력은 컸다. 대학로에서 신인 개그맨들을 발굴해 무대에 올렸고, 많은 이들이 그를 스승이라 불렀다. 선배 개그맨으로서 자신의 이름보다 후배들의 성장에 무게를 둔 그의 방식은 개그계의 전통처럼 자리잡았다.

그의 창작 능력은 ‘아이디어가 막히면 전유성에게’라는 말로 요약됐다. 말보다 글이 강하다는 평가답게, 그는 다수의 저서로도 웃음을 남겼다. 대표 저서로는 『1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 『하지 말라는 것은 다 재미있다』, 『전유성의 구라 삼국지』 등이 있다.

사생활에서는 1993년 가수 진미령과 결혼했지만, 2011년 이혼했다. 이후 2018년 전북 남원으로 거처를 옮겨 조용한 일상을 보내며 딸 내외와 함께 살아왔다.

장례는 희극인장으로 진행된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과 장지 일정은 추후 정해질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딸 제비 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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