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 급감하는데 남북 교류는 8년째 멈춰 있어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이산가족들의 마음은 또 한 번 무거워졌다. 임진강 인근에서 매년 열리던 망향제에 참석해온 박모 씨(88)는 올해도 북녘 하늘을 향해 절만 올렸다. 헤어진 형과 누이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여든여덟 번째 명절을 맞았다. 박씨는 매년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향을 향해 절을 올리지만 정작 형제의 얼굴은 이제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고 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하고 등록된 인원 가운데 생존자 수는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 8만 명대에 이르던 등록 생존자는 최근 몇 년 사이 3만 명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80대 이상 고령층으로, 90세 이상 비중도 빠르게 늘고 있다. 반면 새로 등록을 신청하는 인원은 매년 큰 폭으로 줄어드는데, 이는 이산가족 1세대 상당수가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라는 것이 관련 기관의 설명이다.

통계청과 통일부가 함께 작성하는 이산가족 관련 자료를 보면 등록 생존자의 평균 연령은 이미 80대 중반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난다.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 명단이 갱신될 때마다 세상을 떠난 이들의 이름이 빠지고, 새로 등록되는 인원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는 것이 관계 기관의 설명이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에는 90대 이상 고령자의 사망률이 두드러지게 높아지면서, 실제 상봉이 가능한 대상 자체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남북 간 공식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2018년 이후 열리지 않고 있다. 2018년 8월 금강산에서 열린 것이 마지막이었고,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대면 상봉은 물론 영상편지 교환이나 생사 확인 사업조차 전면 중단된 상태다. 이 기간 동안에도 등록 이산가족의 자연 감소는 계속됐고, 매해 수천 명이 상봉의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시민단체들의 지적이다.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등록된 신청자 자료를 살펴보면, 상봉을 한 번도 하지 못하고 사망한 이들의 비율이 등록 인원의 절반을 훌쩍 넘는다. 대면 상봉이 성사된 이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생사 확인조차 받아보지 못한 채 세상을 등졌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들은 남북 당국이 최소한의 생사 확인 절차만이라도 우선 재개해야 한다고 거듭 촉구하고 있다.

이산가족 문제를 오래 다뤄온 한 통일 관련 연구위원은 "이산가족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해결이 아니라 소멸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생존자 대부분이 80대 이상 고령이어서 지금 교류가 재개되지 않으면 상봉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지는 시점이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적 상황과 별개로 인도적 사안은 우선적으로 다뤄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과거 상봉 행사가 열릴 때마다 신청자 대비 실제 참여 인원이 극히 제한적이었다는 점도 근본적인 문제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상봉을 기다려온 이들의 사연은 절박하다. 여든을 넘긴 이모 씨(83)는 십 대 시절 헤어진 여동생의 생사조차 알지 못한 채 매년 신청서를 갱신하고 있다. 그는 "이제는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살아만 있다는 소식이라도 듣고 싶다"고 했다. 또 다른 신청자인 최모 씨(79)는 "부모님 세대가 다 돌아가시고 이제 내가 최고령이 됐는데, 그마저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칠순을 넘긴 정모 씨(76)는 어릴 적 피란길에서 헤어진 아버지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30년 넘게 신청서를 갱신해왔다고 했다. 그는 "매번 명단이 갱신될 때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확인하지만 아직 소식이 없다"며 "이제는 살아계실 확률보다 돌아가셨을 확률이 훨씬 높다는 걸 알면서도 신청을 포기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런 사연은 전국 각지의 이산가족 지원 단체에 비슷한 형태로 쌓여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시민사회에서는 명절마다 합동 차례 행사나 망향제를 열어 이들의 그리움을 달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법이 되지는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산가족 관련 단체 관계자는 "행사에 참여하는 어르신들 얼굴을 보면 해마다 눈에 띄게 기력이 쇠하는 것이 느껴진다"며 "생사 확인이라도 우선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고 전했다. 그는 "지팡이를 짚고 겨우 걸어 나오시는 분들도 매년 늘고 있어 내년에도 같은 자리에서 뵐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그동안 여러 차례 남북에 이산가족 화상 상봉이나 서신 교환 등 단계적 교류를 제안해왔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북측의 호응이 없어 실질적인 진전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통일부 관계자는 "이산가족의 고령화가 심각한 만큼 인도적 사안은 정치적 상황과 분리해 우선 논의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화상 상봉 체계는 이미 마련돼 있어 북측이 응하기만 하면 비교적 빠른 시일 내 재개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산가족 문제가 단순한 남북관계의 하위 의제가 아니라 시급성을 다투는 인도적 과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한 북한학 전공 교수는 "생존자 고령화 속도를 감안하면 앞으로 5년, 10년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며 "화상 상봉 등 상대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높은 방식부터 재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생사 확인만이라도 이뤄진다면 남은 가족들이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을 것"이라며 인도적 접근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종교단체들은 자체적으로 이산가족을 위한 위로 행사를 마련하고 있지만, 이 역시 만남 자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는 반응이 많다. 한 사회복지 관계자는 "정서적 지지 프로그램은 늘고 있지만 결국 당사자들이 원하는 것은 혈육의 생사 확인과 만남"이라며 "행정적 지원만으로 채울 수 없는 간극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명절마다 되풀이되는 이산가족들의 기다림은 이제 단순한 그리움을 넘어 생존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올해도 전국 곳곳에서 열린 합동 차례상 앞에는 지팡이를 짚고 나온 고령의 신청자들이 북녘을 향해 절을 올렸다. 상봉 신청서를 손에 쥔 이들 중 상당수는 다음 명절을 기약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는 나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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