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노인·한부모 가정 등 취약계층 실태 점검, 신청주의 한계 여전

추석을 열흘 앞둔 지난 20일, 한 지방자치단체 복지 담당 공무원은 명단을 다시 펼쳐 들었다. 독거노인과 한부모 가정, 장애인 1인 가구 등 이른바 '복지 사각지대 위기 가구' 명단이었다. 매년 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되풀이되는 일이지만, 올해도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 공무원은 명단을 훑으며 최근 몇 달 사이 연락이 끊긴 가구부터 다시 체크했다. 담당 구역만 수백 가구에 달해 한 집 한 집 전화를 돌리는 데도 며칠이 걸린다고 했다. 그는 "명절 전에 한 번이라도 목소리를 들어야 안심이 된다"면서도 "실제로는 형식적인 확인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보건복지부는 추석을 앞두고 취약계층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을 대상으로 한 명절 생계비 지원과 함께 독거노인 및 중증장애인 가구에 대한 안부 확인, 긴급 생계지원금 신청 절차 안내가 핵심이다. 지방자치단체별로도 명절 전후 위기가구 집중 발굴 기간을 운영하며 통·반장, 복지 이장 등 지역 인적 안전망을 통한 현장 점검을 병행하고 있다.
지원 내용에는 명절 전 위문품 지급과 함께 전기·가스요금 체납 가구에 대한 단전·단수 유예 조치, 긴급복지지원제도를 통한 생계비 및 의료비 일시 지원 등이 포함돼 있다. 지자체는 관할 지역 내 쪽방촌, 고시원 밀집 지역, 노후 임대주택 단지 등을 중심으로 방문 점검 대상을 우선 선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 같은 조치가 매년 비슷한 방식으로 반복되면서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함께 제기된다.
문제는 이 같은 대책이 매년 반복되면서도 사각지대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복지 담당 공무원들은 명절 지원 정책 대부분이 '신청주의'에 기반해 있다는 점을 근본적인 한계로 지목한다. 스스로 신청서를 내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구조에서는, 정보 접근이 어렵거나 도움 요청 자체를 꺼리는 이들이 걸러지지 않고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복지부가 발표한 위기가구 발굴 통계를 보면, 명절 전후 집중 발굴 기간에 새롭게 파악된 위기 가구 상당수가 기존 복지 시스템에 전혀 등록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료 체납이나 단전·단수 정보 등 공공 데이터로 위기 징후를 포착하는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이 가동되고 있지만, 데이터에 잡히지 않는 은둔형 위기 가구는 여전히 발견이 늦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1인 가구 비중은 해마다 늘고 있고, 그중 상당수가 소득이나 재산 등 공식 지표로는 포착되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고시원이나 반지하, 옥탑방 등 비주택 거주자는 주소지 확인부터 어려움을 겪어 명단 자체에 오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는 게 현장의 설명이다.
지역 복지관 관계자는 "명절이 다가오면 오히려 이웃과 비교되는 상실감 때문에 문을 더 걸어 잠그는 어르신들이 있다"며 "먼저 손 내밀지 않으면 존재 자체가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원 대상 선정 기준이 소득이나 재산 중심으로 짜여 있어 실제 생활이 어려운데도 기준을 살짝 넘겨 지원에서 제외되는 사례가 반복된다"고 덧붙였다.
독거노인 홀로 사는 최모 씨(78)는 올해도 명절 지원금 신청서를 내지 않았다. 자녀와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됐고, 주민센터에 직접 찾아가 서류를 작성하는 일 자체가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최씨는 "복지 카드가 있다는 것도 이웃이 알려줘서 알았다"며 "서류 떼러 다니는 게 더 힘들어서 그냥 안 받는다"고 말했다. 이런 사례는 최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게 현장 활동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비슷한 처지의 장모 씨(83)도 지난해까지 지원 대상에서 빠져 있다가 이웃 주민의 신고로 뒤늦게 발굴됐다. 장씨는 거동이 불편해 주민센터 방문이 어려웠고, 가족과도 왕래가 없어 행정 시스템 안에서는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다. 복지관 직원이 직접 찾아가 서류를 대신 작성해준 뒤에야 지원이 시작됐다고 한다.
한부모 가정 역시 명절 지원 정책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집단으로 꼽힌다. 아동이 있는 가구에 초점을 맞춘 지원책이 많다 보니, 자녀가 성인이 되기 직전이거나 취업 준비 중인 경우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한 사회복지사는 "제도가 나이 기준으로 딱 잘려 있어서, 실질적인 생계 부담은 그대로인데 서류상으로는 지원 대상이 아닌 가정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 사회복지사는 "특히 스무 살 전후 자녀를 둔 한부모 가정은 학자금과 생활비 부담이 동시에 커지는 시기인데도 복지 지원은 오히려 줄어드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인다"고 지적했다. 명절 위문금이나 생필품 지원 역시 영유아나 초·중등 자녀가 있는 가구 중심으로 편성되는 경우가 많아, 성인 자녀를 둔 한부모 가정은 대상 목록에서 아예 빠지는 일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와 지자체는 명절마다 '복지 사각지대 발굴단'을 가동하며 방문 점검을 확대하고 있다고 밝힌다. 그러나 인력 부족은 고질적인 문제로 남아 있다. 한 지역 복지 담당자는 "한 명이 관리해야 하는 위기가구 수가 너무 많아 형식적인 전화 확인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며 "명절 직전 며칠 반짝 점검으로는 근본적인 발굴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명절이 지나면 다시 인력이 원래 수준으로 줄어드는데, 위기 가구는 명절과 무관하게 계속 발생한다"며 "일시적으로 인력을 늘리는 방식보다 상시 인력을 확충하는 예산 편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자체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복지 공무원 한 명이 담당하는 가구 수가 권고 기준을 크게 웃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명절 지원 정책이 '일회성 이벤트'에 머물지 않으려면 상시적인 발굴 체계와 연계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사회복지학 연구위원은 "명절 대책은 상징적 의미가 크지만, 실질적인 사각지대 해소는 평소 촘촘한 안전망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공공 데이터 연계 범위를 넓히고, 이웃·통장 등 민간 네트워크와의 협업을 상시화하는 방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위기 징후를 포착하는 데이터 항목을 통신비 체납이나 배달음식 주문 이력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며 "다만 개인정보 보호와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과제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역 사회 안에서 자연스럽게 안부를 확인할 수 있는 관계망을 복원하는 것이 결국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복지 신청 절차 자체를 간소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복지 관련 협회 관계자는 "온라인 신청이 늘었다고 하지만 고령층 상당수는 여전히 접근이 어렵다"며 "방문 신청이나 전화 신청 등 다양한 경로를 유지하고, 신청 서류를 줄이는 실질적인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명절 지원금 액수를 늘리는 것 못지않게, 그 돈이 실제로 필요한 사람 손에 들어가도록 하는 전달 체계 정비가 더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복지부는 이번 추석 기간 동안 위기가구 발굴 신고를 받는 '복지 안전망 신고 전화'를 운영하며, 이웃의 신고나 제보를 통해서도 지원 대상을 발굴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지자체 복지 부서는 명절 연휴 기간에도 비상 근무 체제를 유지하며 긴급 지원 요청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각 지역 주민센터와 복지관에는 명절 전후 상담 인력이 추가 배치된 상태다.
각 지자체는 명절 연휴가 끝난 뒤에도 이번에 발굴된 위기 가구에 대해서는 사후 관리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일시적인 생계비 지원에 그치지 않고, 필요한 경우 의료급여나 주거급여 등 정규 복지 제도로 연계하는 절차를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복지 안전망 신고 전화는 연휴 기간 24시간 운영되며, 신고 접수 즉시 관할 주민센터로 정보가 전달돼 현장 확인이 이뤄지는 구조로 운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