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식과 긴장 겹치는 명절, 소화불량 환자 늘어

추석 연휴 셋째 날 오후, 김모 씨(45)는 명치 아래가 묵직하게 눌리는 느낌에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날 저녁부터 이어진 송편과 전, 갈비찜을 과식한 탓이라고 여겼지만 증상은 다음 날까지 이어졌다. 소화제를 먹어도 효과가 오래가지 않았고 속이 더부룩한 느낌은 명절이 끝난 뒤에도 며칠간 남았다. 김 씨는 "매년 명절만 지나면 며칠씩 속이 안 좋은데 올해는 유독 더 심했다"며 "체한 것 같기도 하고 신경성인 것 같기도 해서 뭐가 원인인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명절 연휴가 되면 이런 소화불량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평소보다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을 짧은 시간에 많이 먹는 데다, 친지 방문과 장거리 이동, 가사노동, 가족 간 관계에서 오는 긴장이 겹치기 때문이다. 의료계에서는 이를 단순한 과식 문제로만 보지 않고 심리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현상으로 설명한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보면 명절 연휴 직후 소화불량과 급성 위염 등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 수가 평상시보다 늘어나는 흐름이 매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소화기내과 전문의는 "명절 음식은 기름과 나트륨 함량이 높은 전과 튀김류가 많아 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위산 분비가 늘어난다"며 "여기에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과의 대화, 이동 스트레스가 더해지면 자율신경계가 흔들리면서 위장 운동 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서 소화액 분비와 위장관 운동이 억제되는데, 이 상태에서 음식을 많이 섭취하면 소화불량이나 속쓰림, 복부 팽만감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설명이다. 이 전문의는 또 "위장관은 뇌와 신경으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흔히 '제2의 뇌'로 불린다"며 "심리적 긴장이 실제 위장 기능 저하로 이어지는 사례가 임상에서도 자주 확인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명절 연휴 기간에는 응급실이나 내과를 찾는 급성 위장 장애 환자가 평소보다 늘어나는 경향이 나타난다. 특히 40, 50대 중장년층에서 이런 사례가 두드러지는데, 명절 음식 준비와 손님맞이 같은 가사노동에 따른 육체적 피로가 소화 기능 저하를 더 악화시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 구성원 사이의 갈등이나 잔소리로 인한 정서적 긴장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으로 꼽힌다. 명절 연휴가 끝난 뒤 첫 평일에 진료 예약이 몰리는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모 씨(52)는 지난 설 연휴 때 시댁 식구들과 사흘을 함께 보낸 뒤 속쓰림과 소화불량이 겹쳐 결국 응급실을 찾았다. 박 씨는 "명절 음식 장만하고 손님 치르느라 몸도 힘들었지만, 그보다 신경 쓸 일이 많다 보니 밥이 잘 안 넘어가더라"며 "체했나 싶어 참다가 통증이 심해져 병원에 갔다"고 전했다. 이런 사례는 병원 현장에서 드물지 않게 접수된다고 의료진들은 전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명절증후군'의 소화기 버전으로 본다. 명절증후군은 흔히 어깨나 허리 통증, 두통 같은 신체 증상과 우울감, 짜증 같은 정서적 반응을 아우르는 표현으로 쓰여 왔지만, 최근에는 소화불량이나 복통 같은 위장관 증상을 호소하는 사례도 함께 언급된다. 명절이 끝난 뒤 한동안 속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은 이유다. 한 대학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과거 학회 발표에서 명절 연휴 전후로 기능성 소화불량 환자의 내원이 늘어나는 패턴을 소개하며 식습관 변화와 스트레스가 함께 작용한다고 밝힌 바 있다.
증상을 줄이려면 우선 식사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을 먹기보다 천천히 씹어 먹으면 위에 부담을 덜 수 있다. 한 끼에 여러 음식을 몰아 먹기보다 적당량씩 나눠 먹는 것도 위 부담을 줄이는 방법으로 제시된다. 기름진 전이나 튀김류보다는 나물이나 국물 요리를 곁들여 균형을 맞추는 것도 방법으로 제시된다. 식사 후 바로 눕기보다는 가벼운 산책으로 위장 운동을 돕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많다. 식후 30분 정도 가볍게 걷는 것만으로도 위 배출 속도가 개선될 수 있다는 설명도 나온다.
수분 섭취 역시 중요하게 언급된다. 명절 연휴에는 술이나 커피 섭취가 늘면서 위산 분비가 자극되고 탈수 위험도 커질 수 있어, 물을 충분히 마셔 위장 점막을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알코올은 위 점막을 직접 자극하는 데다 소화 효소 분비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과음을 피하는 것이 권장된다. 차례상 음료로 자주 오르는 식혜나 수정과 역시 당분이 많아 과다 섭취하면 속을 더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서적 긴장을 관리하는 것도 소화기 건강과 무관하지 않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명절 연휴 중 가족 갈등이나 피로감이 쌓이면 자율신경 불균형으로 이어져 소화 기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짧게라도 혼자 쉬는 시간을 확보하거나 심호흡,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명절 준비와 손님맞이를 한 사람에게만 몰아주지 않고 가족 구성원이 분담하는 것도 신체적, 정신적 부담을 줄이는 방법으로 제시된다. 이 전문의는 "명절 스트레스는 특정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구성원 전체가 함께 조율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소화불량 증상이 명절 연휴가 끝난 뒤에도 일주일 이상 지속되거나 복통, 발열, 체중 감소가 동반되는 경우에는 단순 과식이 아닌 다른 질환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경우에는 자가 진단이나 임의 복용에 의존하기보다 내과나 소화기내과를 찾아 진료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특히 평소 위염이나 역류성 식도염 병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명절 이후 증상 변화를 더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명절 연휴는 오랜만에 가족이 모이는 자리지만, 짧은 기간에 식습관과 생활 리듬이 크게 바뀌는 시기이기도 하다. 올해 추석 역시 이런 변화가 소화기 건강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다시 확인되고 있다. 명절 이후에는 기름진 음식을 줄이고 채소와 물 섭취를 늘리며 일상적인 식사 시간을 되찾는 것이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의료진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