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은 3년치 쌓였는데 용접공은 못 구해… 외국인 근로자로 버티는 현장

울산의 한 조선소 협력업체에서 용접 반장으로 일하는 김모 씨(52)는 요즘 매일 아침 인력사무소에 전화를 돌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수주 물량은 넘치는데 현장에 세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일감은 밀려 있는데 숙련공을 못 구해 납기를 맞추기가 갈수록 빠듯해진다"고 말했다. 그가 관리하는 팀은 원래 열 명이 채워져야 정상 가동되지만 최근에는 예닐곱 명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날이 많다.

국내 조선업계가 수년 만의 수주 호황을 이어가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극심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올해 국내 조선업계 수주 잔량은 최근 10여 년 사이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친환경 선박과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대형 컨테이너선 수요가 겹치면서 상당수 조선소가 이미 2~3년 치 일감을 확보한 상태다. 조선업계는 표면적으로는 유례없는 호황기를 맞고 있지만, 이를 감당할 생산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구조적 문제가 동시에 불거지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 관계자에 따르면 조선업 생산기능직 구인배수는 최근 몇 년 새 꾸준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구인 공고를 내도 실제 채용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낮다는 뜻이다. 특히 도크에서 선체를 조립하는 공정이나 배관, 도장 같은 마무리 공정에서는 숙련도를 갖춘 인력을 구하기가 더욱 까다롭다는 게 현장의 공통된 목소리다.

인력난의 핵심은 숙련 기능인력의 공백이다. 2015년을 전후한 조선업 불황기에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뤄지면서 용접, 도장, 배관 등 핵심 공정을 담당하던 숙련 인력 상당수가 업계를 떠났다. 이후 조선업이 다시 살아났지만 한번 이탈한 인력이 쉽게 복귀하지 않으면서 현장의 세대 단절이 뚜렷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선업 관계자는 "당시 떠난 숙련공들이 건설업이나 다른 제조업으로 옮겨갔고, 이들을 다시 조선소로 불러들이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당시 10년 이상 경력을 쌓은 40~50대 기능공들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20~30대로 이어지는 기술 전수 고리가 끊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젊은 세대의 기피 현상도 인력난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조선소 생산직은 고온다습한 밀폐 공간에서 장시간 서서 작업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야드 특성상 근무 환경이 사무직과 크게 다르다. 여름철에는 선체 내부 온도가 40도 가까이 오르는 경우도 있어 체력 소모가 크고, 고소 작업이나 밀폐 공간 작업에 따른 안전 부담도 상존한다. 임금 수준이 과거보다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젊은 구직자들의 눈높이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많다. 한 인력 알선업체 관계자는 "숙련도가 높은 용접 기능사는 일당이 상당히 높은 편인데도 젊은 지원자를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직업계고를 나온 20대들도 조선소보다는 상대적으로 근무 환경이 편한 업종을 먼저 알아보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이런 공백을 메우고 있는 것이 외국인 근로자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최근 몇 년 사이 조선업 분야 외국인 근로자 도입 규모가 크게 늘었다. 정부는 조선업 인력난 해소를 위해 고용허가제(E-9) 쿼터를 별도로 확대하고, 조선업 특화 비자 절차를 신설하는 등 제도적 지원을 강화해왔다. 그 결과 현재 국내 대형 조선소 협력업체 현장 인력 중 외국인 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높은 수준까지 올라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협력업체에서는 생산 현장 인력의 절반 가까이가 외국인 근로자로 채워진 경우도 있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외국인 인력 확대만으로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는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언어 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한 안전사고 우려, 숙련도 편차, 기숙사와 생활 인프라 부족 등이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애로사항이다. 조선업 노무 전문가는 "외국인 근로자가 늘면서 단순 인력난은 다소 완화됐지만, 고난도 공정을 소화할 수 있는 숙련 인력은 여전히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안전 교육과 기술 교육을 병행할 수 있는 체계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장에서는 작업 지시가 통역을 거치며 지연되거나 세부 안전수칙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소소한 사고로 이어지는 사례도 종종 보고된다.

조선사들도 자체적으로 인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일부 대형 조선사는 지역 특성화고등학교나 폴리텍대학과 협약을 맺어 맞춤형 인력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협력업체 근로자 처우 개선을 위해 원청 차원의 임금 보전 방안을 검토하는 곳도 있다. 일부 조선소는 신입 기능공에게 정착지원금을 지급하거나 기숙사비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초기 이탈률을 낮추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도 조선업 근로자를 위한 정주 여건 개선 사업을 추진하는 사례가 확인된다. 다만 이런 대책들이 실제 현장의 인력 공백을 메우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진단이다.

조선업 협력업체를 운영하는 박모 씨(48)는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숙련공 한 명이 아쉬운 상황인데, 원청의 납기 압박은 그대로여서 현장 부담이 크다"고 토로했다. 그는 "인력 양성에는 최소 몇 년이 걸리는데 수주 호황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어 투자를 결정하기가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또 "숙련공 한 명을 키우려면 최소 3년은 봐야 하는데 그새 다른 현장으로 빠져나가는 경우도 많아 회사 입장에서는 교육 투자 자체가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고 말했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조선업 호황이 지속되려면 선박 건조 능력을 뒷받침할 인력 기반이 함께 확충돼야 한다"며 "정부와 업계, 지자체가 역할을 나눠 중장기 인력 양성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현재로서는 외국인 근로자 확대와 자동화 설비 도입이 병행되고 있지만, 일선 현장에서 체감하는 인력난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일부 조선소는 용접 로봇과 자동 도장 설비를 도입해 단순 반복 공정의 인력 의존도를 낮추려 하고 있지만, 선체 곡면 작업 등 정밀도가 필요한 공정은 여전히 사람의 손에 의존하는 비중이 크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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