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교육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행진하는 학생들 (사진= 연합뉴스 제공)

“우리가 반항하는 걸 원치 않았다면 랭보를 공부하게 하지 말았어야지.” 1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광장에는 오전부터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프랑스 시인 아르튀르 랭보와 공화국의 상징 마리안느를 내세워 현실을 풍자한 팻말과 노래 가사를 든 학생들이 있었다. 검은색 관 모형에는 열악한 교육 환경으로 학생들의 미래가 죽어간다는 뜻을 담아 ‘청년들’이라고 적었다. 만성적인 교사 부족과 과밀 학급, 낡은 학교 시설 개선을 요구하며 시작된 고등학생 시위는 정부의 임시 대책 발표 뒤에도 이어졌다. 이날 행진에는 대학생과 학부모, 교사, 노동조합도 합류했다. 교육 문제를 둘러싼 거리 시위는 생활비 부담과 긴축 재정에 대한 불만, 경찰 진압 논란과 맞물려 프랑스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교사 부족과 낡은 학교 시설에 거리로 나온 학생들

이날 시위 참가자들은 파리 이탈리아 광장에 모인 뒤 도심을 행진했다. 일부 학생들은 랭보와 마리안느를 언급한 팻말을 들고 나왔고, 다른 학생들은 열악한 학교 환경을 상징하는 관 모형을 앞세웠다. 관에 적힌 ‘청년들’이라는 문구는 학생들의 미래가 위협받고 있다는 주장을 나타냈다. 학생들이 내건 요구는 교사 부족을 해소하고 과밀 학급을 줄이며 낡은 학교 시설을 개선하라는 것이었다. 고등학생들의 요구에 대학생과 학부모, 교사, 노동조합이 가세하면서 행진 참가층도 넓어졌다.

고등학교 생물학 교사 밸러리(60) 씨는 “학생들이 거리로 나왔고 우리는 학생들을 보호해야 하고, 지지해야 한다”면서 “그들이 요구하는 것이 정당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6세 딸과 함께 나온 50대 남성은 “아이들은 그저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일 뿐”이라며 학교에 지붕이 있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곳에서 평화롭게 공부하는 것이 요구라고 말했다. 파리 13구 르 르부르 고등학교에 다니는 15세 학생은 “최루가스 때문에 (시위 현장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위해 싸우려고 여기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학교 앞 시위에서 전국 행진으로

시위는 지난달 21일 파리 남동부 교외의 한 고등학교에서 시작됐다. 이후 대학생과 교사 노조가 참여했고, 학생 연합은 프랑스 대학의 90%에서 출입이 막히거나 수업 차질이 발생했다고 집계했다. 13일 시위는 전국 단위로 열린 두 번째 대규모 집회였다. 참가 규모는 집계 주체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내무부는 파리 4만1천500명을 포함해 전국 16만1천500명이 참여했다고 집계했고, 주최 측인 학생·교사 노조는 48만명으로 추산했다.

집회정부 집계주최 측 집계
지난 6일26만명45만명
13일16만1천500명48만명

정부 집계로는 13일 참가자가 첫 대규모 집회가 열린 지난 6일보다 줄었지만, 주최 측 집계로는 늘었다. 내무부는 이번 시위와 관련해 지금까지 6천800명 넘게 체포됐으며, 체포자 가운데 86%가 18세 미만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시위가 격화하는 과정에서 교직원 147명이 다쳤다고 집계했다. 시위가 학교 출입을 막고 수업에 차질을 일으킨 데 이어 곳곳에서 충돌과 체포, 교직원 부상으로 이어진 가운데, 학생들의 요구를 지지하는 교사와 학부모도 행진에 참여했다.

임시 대책과 경찰 대응을 둘러싼 논란

프랑스 정부는 교사 공백을 메우기 위해 대체 교사 3천명을 긴급 투입하는 등 임시 대책을 발표했다.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는 지난 7일 대국민 연설에서 “청소년들의 분노는 무작정 생긴 것이 아니다”며 이달 말 1차 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대응을 둘러싼 논란은 경찰의 시위 진압으로도 번졌다. 경찰은 폭력적 진압이 의심되는 사례 34건을 내사하고 있다.

유치원 교사 마리-오드(48) 씨는 “정부는 구체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않은 채 매우 폭력적인 방식으로 진압만 하고 있다”면서 “상대는 미성년자들”이라고 말했다. 교육 환경을 둘러싼 갈등은 앞선 시위에서도 충돌과 화재로 나타났다. 지난 1일 현지 보도에 따르면 낭트와 루앙의 고등학교에서는 쓰레기통에서 시작된 불이 번졌고, 낭트의 한 학교는 화재 피해로 한 달간 건물 전체를 폐쇄하기로 했다. 마르세유의 빅토르 위고 고등학교에서는 쓰레기통에 휘발유를 뿌리는 과정에서 교장과 교사들이 화상을 입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같은 날 일부 시위대는 자전거 등을 이용해 바리케이드를 치고 경찰과 대치했다. 프랑스 정부는 청소년들의 시위가 폭력 사태로 번지는 상황에 대응하고 있으며, 시위대와 교사들은 경찰력 행사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교육 환경 개선 요구의 배경에는 국가 재정 부담도 놓여 있다. 프랑스의 공공 부채는 3조5천억유로로 국내총생산(GDP)의 120%에 육박한다. 재정 적자는 3년 연속 GDP 대비 5%를 넘었고, 올해는 5.4%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프랑스 국채 10년물 금리는 5% 가까이 올라 20여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정부는 국가 부채와 재정 적자 부담 속에서 교육 예산을 대폭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대체 교사 투입 같은 임시 조치와 학생들이 요구하는 교육 여건 개선 사이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생활비 불만과 68혁명 언급까지

학생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교육 이외의 불만도 집회에 나타났다. 긴축 재정과 유가 상승에 따른 생활비 부담에 항의하는 목소리가 학생 시위와 함께 나왔다. 노동총동맹(CGТ) 소속이기도 한 마리-오드 씨는 “사람들이 비싼 기름값, 팍팍한 생활비 등에 지쳐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에는 유가 상승에 대응해 오는 17일 ‘노란 조끼’ 시위와 유사한 집단행동을 촉구하는 글이 등장했다. 2018년 유류세 인상 방침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노란 조끼 시위는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해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를 압박했다. AFP 통신은 생활비 상승에 항의하는 집회가 17일 열릴 예정이라고 전했다.

학생 시위 현장에는 1968년 프랑스의 학생·노동자 투쟁인 ‘68혁명’을 언급하는 팻말도 등장했다. 당시 투쟁은 전후 대학 교육의 부조리와 열악한 교육 환경에 대한 대학생들의 분노에서 시작됐다. 이날 간호 실습생 바티스트(22) 씨는 ‘68’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68년 5월은 프랑스에서 젊은이들에 의해 혁명이 일어났던 때”라고 말하며 앞으로도 학생 시위를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스웨덴 기후 활동가 그레타 툰베리도 파리 외곽 생드니의 한 학교 밖에서 학생들과 함께했다. 툰베리는 “청년들이 논의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면서 “우리의 미래가 빼앗기고 있다”고 말했다.

시위는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서도 쟁점이 됐다. 극좌 정당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는 시위 참여를 독려했고, 대선 주자인 장뤼크 멜랑숑 대표는 이날 파리 시위 군중 사이에서 모습을 보였다. 극우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의원은 앞서 “이것은 더 이상 고등학생들의 시위가 아니다. 이는 전문가들이 조직하고 LFI 의원들이 지휘하는 폭동”이라고 주장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전날 학생 시위에 대해 “이는 시간과 협의, 토론, 존중이 필요한 사안들”이라며 시위대에 자제를 촉구했다.

정부는 대체 교사 3천명 투입을 추진하고 있으며, 총리는 이달 말 1차 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생활비 상승에 항의하는 집회는 17일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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