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핵심 품목 역대 최대 공급에도 생육 부진과 가공식품 인상 겹쳐

예년보다 이른 추석 명절을 앞두고 주요 농축수산물과 가공식품 가격이 동반 상승하면서 차례상 차림을 준비하는 서민들의 장바구니 부담이 커지고 있다. 9월 중순에 찾아오는 명절 일정 탓에 제수용 과일의 생육 기간이 부족한 데다 8월 중순까지 이어진 기록적인 폭염과 국지성 집중호우가 겹치며 농산물 출하량이 줄어든 영향이다. 정부는 명절 성수품 수급 안정을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의 비축 물량을 방출하고 할인 지원 예산을 투입하는 등 총력 대응에 나섰으나 현장에서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 진화 효과는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신선식품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하며 전체 물가 상승률을 크게 웃돌았다. 특히 사과와 배를 비롯한 과실류와 시금치, 무, 배추 등 채소류의 가격 강세가 두드러지면서 명절 상차림 비용 전반을 밀어 올리는 형국이다. 기후 변동성 확대로 인해 수확기 농산물 작황이 불안정해진 상황에서 이른 명절 수요가 일시에 집중되자 산지 도매가격부터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추석 민생안정대책을 가동하고 성수품 공급량을 평시대비 대폭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배추, 무, 사과, 배,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계란, 밤, 대추 등 농축산물 14개 품목과 명태, 고등어, 오징어, 갈치, 참조기, 마른멸치 등 수산물 6개 품목을 포함한 20대 성수품을 중심으로 정부 비축 물량과 농협 계약재배 물량을 집중 공급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유통업체 자체 할인과 연계한 농축수산물 할인쿠폰 지원 사업을 병행해 소비자가 체감하는 구매 가격을 최대 50 % 수준까지 낮추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주요 유통 현장에서는 정부의 공급 확대 조치에도 불구하고 체감 물가 하락이 더디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KAMIS) 조사를 살펴보면 차례상에 필수적인 주요 과일류의 소매가격은 정부 대책 발표 이후에도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사과의 경우 햇품 출하가 본격화되지 않은 데다 저장 물량이 바닥나면서 상품(上品) 기준 10 개당 가격이 평년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배 역시 조생종(생육 기간이 짧아 일찍 성숙하는 품종) 위주로 출하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생육 부진으로 인해 대과(크기가 큰 과일) 비중이 줄어 제수용 상품 가격은 높은 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기상 여건 악화로 인해 노지 채소류의 생육이 지연되면서 명절 직전 일시적인 공급 부족 현상이 심화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여름철 고온 다습한 기후로 인해 배추 연부병(무름병)과 무 뿌리혹병 등 병해충 피해가 일부 산지에서 발생했고, 이는 곧바로 도매시장 반입량 감소로 이어졌다. 생육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채소류는 기후 변화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단기적인 재정 투입이나 할인 지원만으로는 산지 가격 급등세를 억제하는 데 한계가 따른다는 분석이다.

축산물 시장 역시 사료비와 유류비 등 생산비 증가 요인이 누적된 상태에서 명절 선물세트와 제수용 정육 수요가 몰리며 높은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다. 한우의 경우 사육 두수 증가로 도축 물량이 늘어 도매가격은 다소 안정세를 보이고 있으나, 소비자가 주로 찾는 양지나 등심 등 인기 부위의 소매가격은 유통 비용 반영으로 인해 하락 폭이 미미하다. 돼지고기와 닭고기 역시 외식 수요와 명절 소비가 맞물리며 평년 대비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어 서민들의 단백질 식품 구매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수산물 분야에서는 어획량 감소와 기후 온난화에 따른 어장 이동으로 대중성 어종의 가격이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정부 비축 수산물 방출과 함께 전통시장 온누리상품권 환급 행사를 대대적으로 확대해 수산물 소비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간의 접근성 격차나 환급 부스 운영의 비효율성 등으로 인해 일반 소비자가 체감하는 혜택은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유통 전문가들은 정부의 할인 지원책이 단기적인 진통제 역할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유통학회 연구위원은 "정부 지원 쿠폰은 대형 유통업체를 중심으로 빠르게 소진되는 반면, 중소형 마트나 골목 상권에서는 혜택을 온전히 누리기 어렵다"며 "산지 출하량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수요를 인위적으로 자극하는 할인 정책은 오히려 산지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산지와 소비지를 잇는 다단계 유통 경로에서 발생하는 마진을 줄이지 않는 한 재정 투입의 효과가 유통업체의 마진으로 흡수될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다.

장바구니 물가 상승은 30~60대 주부와 가장들에게 직접적인 경제적 압박으로 다가오고 있다. 주부 박모 씨(42)는 "추석 차례상에 올릴 사과와 배를 사러 마트에 갔다가 상자당 가격표를 보고 선뜻 집어 들지 못했다"며 "정부 할인 쿠폰이 적용된다고는 하지만 원래 가격 자체가 워낙 올라 있어 실제 결제할 때 느끼는 부담은 작년보다 훨씬 크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직장인 김모 씨(58)는 "명절 선물세트 비용도 부담스럽지만 온 가족이 모여 먹을 기본 식재료와 양념류 가격까지 줄줄이 올라 차례상 규모를 절반으로 줄이기로 가족들과 상의했다"고 말했다.

소비자단체가 조사한 추석 차례상 차림 비용 추이에 따르면 4인 가족 기준 평균 비용은 전통시장과 대형마트 모두 전년 대비 상승세를 기록했다. 전통시장이 대형마트에 비해 채소와 임산물 등 일부 품목에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으나, 가공식품과 수산물 가공품 등에서는 유통 구조상 대형마트와의 격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 식용유, 설탕, 밀가루 등 명절 음식 조리에 필수적인 가공식품 출고가가 연초부터 줄줄이 인상된 점도 차례상 총비용을 끌어올리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농업경제 전문가들은 구조적인 기후 위기와 유통 체계의 취약성이 결합한 결과물이라고 짚었다. 농업경제학회 연구위원은 "기후 온난화로 인한 잦은 이상 기상은 이제 일시적인 변수가 아니라 상시적인 위험 요인으로 자리 잡았다"며 "명절 직전에만 반짝 시행하는 비축 물량 방출과 할인 예산 편성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기후 적응형 품종 보급과 스마트팜 거점 구축, 계약재배 비중 확대를 통한 연중 생산 안정화 체계가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복잡한 도매시장 경매 제도를 개선해 유통 단계를 축소하고 물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제도적 개편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소비자 상담 기관과 민간 물가 감시 기구에서는 명절을 앞두고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성수품 가격을 과도하게 인상하거나 원산지를 허위로 표시하는 행위, 유통 기한이 지난 명절 선물세트를 재포장해 판매하는 행위 등이 집중 단속 대상이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명절 성수기 동안 민관 합동 점검반을 편성해 대형 유통업체와 도매시장, 온라인 쇼핑몰을 대상으로 현장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정부는 명절 연휴 직전까지 성수품 수급안정대책반을 매일 가동하며 품목별 수급 상황과 가격 변동 추이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주요 성수품의 일일 공급 계획을 세분화해 도매시장 반입량을 관리하고, 부족분이 발생하는 품목에 대해서는 수입 물량 도입과 관세 인하 조치를 즉각 시행하기로 했다. 해양수산부 역시 대중성 어종의 정부 비축 물량 잔여분을 전통시장과 중소 유통망에 우선 배정해 유통 병목 현상을 해소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유통 채널별 가격 정보를 사전에 비교하고 정부 할인 혜택이 적용되는 결제 수단을 파악하는 방식으로 지출 최적화에 나서고 있다. 농협 하나로마트와 대형마트 3사는 자체 할인 행사와 정부 지원을 연계한 기획전을 9월 초순까지 순차적으로 진행한다. 전국 주요 전통시장에서는 당일 구매 금액의 일정 비율을 온누리상품권으로 돌려주는 현장 환급 행사가 성수품 품목을 중심으로 예산 소진 시까지 이어진다. 지역별 농협 직거래 장터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온라인 농특산물 쇼핑몰에서도 산지 직배송을 통한 할인 행사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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