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생분해 포장재 개발해 유럽·북미 시장 수출길 개척

일상에서 무심코 뜯어 버리는 플라스틱 완충재와 비닐 포장지는 썩는 데만 수백 년이 걸린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택배 상자 안에서 환경을 오염시키는 석유계 비닐을 걷어내고 자연에서 100% 분해되는 신소재를 만들어 세계 시장으로 향한 스타트업이 있다. 옥수수 전분과 농업 부산물을 활용해 내구성과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한 생분해 포장 필름을 개발하며 해외 유수의 유통 기업들과 잇달아 수출 계약을 체결한 스타트업 대표를 만났다. 환경 규제가 나날이 강화되는 국제 통상 환경 속에서 기술력 하나로 판로를 뚫어낸 과정에는 수년간의 실험실 생활과 끊임없는 현장 검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처음부터 창업을 결심했던 것은 아니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고분자공학을 전공하며 신소재 연구에 매진하던 대표는 석유화학 기반 물질이 지닌 편리함 뒤편의 심각한 환경 파괴 문제를 마주했다. 배달 문화와 비대면 쇼핑의 급격한 확산으로 일회용 포장재 폐기물이 급증하는 현실을 보면서 연구실 안의 이론에 머물지 않고 실생활을 바꿀 수 있는 대안을 직접 만들겠다는 결심이 섰다. 3년 전 설립된 이 기업은 기존 생분해 수지의 치명적 한계로 꼽히던 내열성과 인장 강도(물체가 잡아당기는 힘에 견디는 최대 응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연구 역량을 집중했다. 기존 친환경 소재들은 쉽게 찢어지거나 열에 약해 대량 물류 현장에서 실제 사용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연구진은 폐기되는 농산물 부산물에서 추출한 천연 고분자 물질을 기존 생분해성 수지와 최적의 비율로 배합하는 독자 기술을 고안했다. 수천 번의 배합 실험 끝에 일반 폴리에틸렌 비닐 수준의 질김과 탄성을 유지하면서도 토양 매립 시 6개월 이내에 물과 이산화탄소로 완전히 분해되는 원천 소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 역시 기존 석유계 플라스틱 대비 70% 이상 감축했다. 원료 수급 경로를 다변화하고 공정을 단순화해 생산 단가를 기존 대비 30%가량 낮춤으로써 대량 양산의 기틀을 다졌다.
단단한 기술력을 확보했지만 창업 초기 국내 판로 개척은 쉽지 않았다. 친환경 포장재 도입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단 몇십 원의 단가 차이에 난색을 보이는 기업이 대다수였다. 국내 시장의 한계를 절감한 대표는 친환경 규제가 강력하게 시행 중인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유럽연합(EU)의 포장재 폐기물 규제 강화와 북미 주요 주 정부의 일회용 플라스틱 퇴출 정책이 본격화되는 흐름 속에서 지속가능한 소재를 찾는 글로벌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지점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국제 친환경 인증 획득은 해외 진출의 가장 중요한 열쇠였다. 유럽의 퇴비화 인증(OK Compost)과 미국 생분해성제품연구소(BPI) 인증을 취득하기 위해 1년 넘게 제품의 환경 유해성과 분해 속도를 엄격하게 검증받았다. 공신력 있는 글로벌 인증을 확보하자 해외 바이어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지난해 독일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포장재 박람회에 참가해 자체 개발한 에어캡 완충재와 완제품 포장용 필름을 선보였고 현장에서 유럽 대형 유통 체인과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냈다. 이어 북미 지역의 글로벌 소비재 유통사와도 연간 500만 달러 규모의 수출 계약을 맺으며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진입했다.
스타트업의 성장은 물류와 유통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의 일상 체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쇼핑을 즐겨 하는 김모 씨(38)는 최근 해외 직구 물품을 받았을 때 비닐 완충재 대신 옥수수 향이 은은하게 나는 생분해 필름이 들어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분리수거 부담 없이 일반 쓰레기로 버리거나 텃밭에 묻어도 썩는다는 안내 문구를 보고 환경 보호가 생활 속에서 구현되고 있음을 실감했다고 전했다. 소비자의 인식 변화와 기업의 환경·사회·투명 경영(ESG) 수요가 맞물리며 친환경 포장재 시장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창업 과정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시제품 생산을 위한 파일럿 설비를 구축하던 시기에는 예상치 못한 배합 오류로 수억 원 상당의 원료를 폐기해야 하는 위기도 겪었다. 초기 자금난으로 직원들의 급여 지급이 밀릴 뻔한 상황에서는 중소벤처기업부의 기술개발 지원사업과 벤처캐피털의 시드 투자를 유치하며 간신히 고비를 넘겼다. 대표는 기술 개발보다 더 어려웠던 것은 기존 플라스틱 가공 공장들을 설득해 새로운 생분해 원료로 라인을 돌려보게 하는 설득의 과정이었다고 회고했다. 기존 압출 성형 설비를 개조하지 않고도 바로 사용할 수 있는 펠릿(pellet·알갱이 형태의 원료) 형태로 제품을 공급하는 유연성을 발휘한 끝에 제조 협력사를 확보할 수 있었다.
스타트업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비결로는 철저한 현장 중심의 사고와 빠른 시장 대응력이 꼽힌다. 연구실에서 완벽해 보이는 소재라도 실제 공장의 기계에서 엉키거나 포장 자동화 라인에서 정전기를 일으키면 상용화가 불가능하다. 이 회사는 연구원들이 직접 제휴 공장과 물류창고에 상주하며 수백 톤의 포장 작업 데이터를 수집해 마찰력과 정전기 방지 기능을 미세하게 조정했다. 이러한 현장 밀착형 개선 작업이 바이어들의 까다로운 품질 요구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국제 환경 무역 장벽은 더욱 높아지는 추세다. 유럽연합은 2030년까지 모든 포장재의 재활용 및 생분해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플라스틱세(Plastic Tax) 도입을 전면 확대하고 있다. 통상 전문 연구위원은 친환경 포장재 산업이 단순한 틈새시장을 넘어 수출 기업들의 무역 생존을 가르는 핵심 기반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소재의 원천 기술과 친환경 인증을 선점한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막대한 주도권을 잡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대표는 현재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소재의 응용 영역을 포장재에서 농업용 멀칭 필름(잡초 방지용 밭 덮개)과 전자기기 보호 외장재로 넓히는 차세대 연구를 진행 중이다. 밭에 깔아둔 뒤 수확 후 수거할 필요 없이 흙 속에서 자연 분해되는 농업용 필름은 농촌의 고령화와 환경오염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신사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국내 지방자치단체 농업기술센터와 손잡고 대규모 실증 단지를 조성해 1년 주기의 분해 시험을 순조롭게 마쳤으며 내년부터 전국 농가를 대상으로 보급을 확대할 방침이다.
직원 3명으로 출발했던 회사는 현재 30여 명의 전문 연구 인력과 생산 인력을 갖춘 유망 기술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매출의 80% 이상이 해외에서 발생할 정도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도 확고해졌다. 대표는 기술 기반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후배 창업가들에게 문제의 본질을 실험실 밖에서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세상에 없는 새로운 기술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장이 실제로 겪고 있는 고통과 규제의 흐름을 읽고 이를 가장 경제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창업의 본질이라는 설명이다.
기술 혁신과 시장성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투자 시장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국내 벤처투자업계 투자심사역은 친환경 기술 기업 중에서도 원가 절감과 대량 양산이라는 상용화 벽을 넘어선 사례는 극히 드물다며 환경 규제를 기회로 전환해 명확한 해외 판로를 뚫어낸 비즈니스 모델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회사는 올해 하반기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시장 진출을 목표로 현지 물류 대기업들과 제품 실증 테스트를 이어가고 있다.
공장 한편에 쌓인 바이오 플라스틱 펠릿 포대들은 다음 주 선적을 앞두고 컨테이너 적재 작업을 기다리고 있다.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받던 포장재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며 국경을 넘어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현장의 기계음은 밤낮없이 이어지는 중이다. 글로벌 친환경 규제 기준에 맞춘 수출용 바이오 복합 소재의 세부 배합 공정 및 환경표지 인증 현황은 한국환경산업기술원 환경마크 종합정보시스템을 통해 일반에 투명하게 공개돼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