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무역주의 강화 흐름 속 반도체 자동차 공급망 대응 과제 부각

미국 대선 레이스가 본격적인 국면에 진입하면서 워싱턴 정가의 정책 기조 변화가 한국 경제와 외교 안보 전선에 가져올 파장이 커지고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 양진영이 자국 우선주의와 제조업 부활을 전면에 내세운 공약을 잇달아 쏟아내자 글로벌 무역 환경의 불확실성은 전례 없는 수준으로 높아졌다.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주력 산업계는 선거 결과에 따른 통상 규제 강화와 보조금 정책 수정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대선 국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공통분모는 공급망 재편과 보호무역주의의 강화다. 민주당 진영은 친환경 에너지 전환과 다자간 규범 중심의 동맹국 협력을 강조하면서도 핵심 전략 자산의 미국 내 생산 의무화를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반면 공화당 진영은 보편적 기본 관세 도입과 기존 다자 무역 협정의 재검토를 내세우며 전방위적인 관세 장벽 설치를 예고한 상태다. 두 정파 모두 자국 내 일자리 창출과 제조업 재건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공유하고 있어 선거 이후 미국의 무역 기조는 형태만 다를 뿐 자국 중심주의로 수렴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미 수출 비중은 전체 수출의 18%를 상회하며 20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반도체, 이차전지, 자동차 등 핵심 수출 품목들이 대미 흑자를 견인했으나 이는 동시에 미국의 무역 불균형 해소 압박에 노출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와 무역대표부(USTR)가 대미 무역 흑자국을 대상으로 비관세 장벽과 원산지 규정 검증을 강화하는 조짐을 보이는 배경이다. 대미 흑자 규모가 커질수록 미국 정치권 내에서 통상 압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구조적 악순환이 우려된다.

산업별로는 반도체 부문의 불확실성이 우선적으로 제기된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과학법(CHIPS Act)을 통해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하며 한국 주요 기업들의 현지 투자를 유치했다. 그러나 대선 국면에서 지원금 지급 조건 변경이나 가드레일 조항 강화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중국 내 기존 생산 시설의 공정 업그레이드 제한 수위가 한층 높아질 경우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이원화 생산 전략은 심각한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미국 내 공장 건설 비용의 급격한 상승과 보조금 지급 지연 우려까지 겹치며 기업들의 셈법은 복잡해진 상태다.

자동차와 이차전지 분야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향방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민주당 정권이 추진해 온 전기차 세액 공제 혜택은 공화당의 주요 표적이 되고 있다. 공화당 측은 내연기관 차량 규제 완화와 친환경 보조금 축소를 공언하고 있어 정권 교체 시 관련 세제 혜택이 대폭 수정될 위험이 있다. 이미 수십조 원 단위의 투자를 집행해 미국 현지에 배터리 합작 공장을 준공했거나 건설 중인 국내 배터리 및 완성차 제조사들로서는 투자 회수 기간이 크게 늘어날 수 있는 대목이다.

철강과 알루미늄 등 전통 제조업 역시 관세 부과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놓여 있다. 무역확장법 제232조를 활용한 쿼터제 및 고율 관세 부과 기조는 후보 성향과 무관하게 유지되거나 오히려 강화될 여지가 충분하다. 제3국을 경유한 우회 수출에 대한 조사 범위가 넓어지면서 국내 철강업계의 통상 리스크 관리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탄소 국경 조정 제도와 같은 새로운 환경 통상 규범이 미국 내에서 입법화될 가능성 역시 주요 변수 가운데 하나다.

대미 통상 환경 변화에 직면한 현장의 혼란은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자동차 부품을 미국 조지아주와 앨라배마주 공장으로 납품하는 중소 제조업체 대표 김모 씨(58)는 고객사로부터 현지 부품 조달 비율을 조속히 70% 이상으로 끌어올리라는 요구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 씨는 설비 투자를 늘리자니 미국 내 공사비와 인건비가 감당하기 어렵고 국내 공장을 유지하자니 향후 관세 장벽을 넘기 힘들어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처지라고 전했다.

통상 전문가들은 미국의 선거 결과에 따라 특정 산업에 미치는 타격의 결이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고 분석한다. 연구위원은 민주당이 재집권할 경우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 배출 규제, 노동 기준 강화 등 비관세 장벽이 복잡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반면 공화당이 승리할 경우 품목별 관세 인상과 덤핑 판정 등 직접적이고 일방적인 가격 제재 수단이 즉각 동원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권의 향방과 상관없이 한국 기업들이 자국 내 생산 유치를 강요받는 구조 자체는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 통상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외교 및 안보 분야의 역학 관계 재편도 경제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갱신 협상은 대선 국면의 대표적인 뇌관이다. 미국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주한미군 주둔 비용의 대폭 증액을 요구하거나 동맹국의 자체 방위력 증강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안보 비용 청구서가 경제적 통상 협상과 연계되는 이른바 패키지 딜 형태로 전개될 경우 한국 정부의 협상력은 상당한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 인도·태평양 전략 하에서의 대중국 견제 동참 요구 수위 역시 정권 성향에 따라 형태를 달리하며 거세질 전망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산업연구원 등 주요 국책연구기관들의 분석 자료를 종합하면 미국 대선 전후로 글로벌 교역 성장률이 둔화할 경우 대외 개방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성장률 하방 압력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 특히 보편적 기본 관세가 10% 수준으로 일괄 부과될 경우 한국의 연간 대미 수출액은 수십억 달러 이상 감소할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공급망의 글로벌 분업 구조가 깨지고 블록화가 가속화되면서 발생하는 비효율은 고스란히 국내 수출 기업들의 제조 원가 상승으로 전가된다.

금융 시장의 변동성 확대 역시 불가피한 현실이다. 통상 마찰 우려가 부각될 때마다 외환시장에서 원화 가치는 달러화 강세 압력에 밀려 변동폭을 키우고 있다. 원자재를 수입해 가공한 뒤 미국으로 수출하는 국내 제조업 구조상 고환율은 수입 원가를 끌어올려 채산성을 악화시키는 이중고를 낳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통화 정책 궤적과 대선 이후 재정 적자 확대에 따른 미국 국채 금리 급등락은 한국 금융 시장의 자금 유출입 불안정성을 증폭시키는 핵심 요인이다.

배터리 소재를 납품하는 중견기업 기획총괄 임원 박모 씨(51)는 선거 공약 하나하나에 따라 내년도 사업 계획의 전면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박 씨는 미국 현지 파트너사들도 투자 집행을 대선 이후로 미루는 분위기여서 신규 설비 발주가 연쇄적으로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불확실성 자체가 설비 투자와 고용을 가로막는 가장 큰 악재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 차원의 대비 태세 마련도 속도를 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민관 합동 통상대응반을 가동해 시나리오별 통상 리스크 점검에 착수했다. 미국 대선 후보별 핵심 정책 공약을 카테고리별로 분류하고 국내 주요 10대 산업군에 미칠 정량적 영향을 산출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워싱턴 현지 정관계 로비 창구 및 주정부 네트워크와의 접점을 넓히며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한국 기업의 투자 기여도를 각인시키는 공공외교 활동도 병행되고 있다.

법조계와 통상 자문 기구들은 기업들의 선제적 계약 검토와 리스크 분산을 주문하고 있다. 변호사는 미국 정부의 정책 변경에 따른 손실 보상 및 계약 해지 조건을 면밀히 재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현지 진출 기업의 경우 미국 연방법과 주법의 차이를 활용한 보조금 수급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공급망 내 중국산 원자재 비중을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덧붙였다. 수출 다변화를 통해 대미 편중 리스크를 완화하는 장기 전략의 필요성도 함께 제기된다.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는 대외 통상 충격이 국내 금융 및 실물 경제로 전이되는 경로를 점검하고 있다. 미국의 대선 일정은 전 세계 무역 질서의 재편을 알리는 분기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와 주요 수출 기업들은 미국 각 정파의 정책 입안자들과의 소통 채널을 유지하며 대선 당일까지 후보별 통상 공약의 변화 추이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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