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강남 대형 오피스 품귀에 자산운용사 매입 경쟁과 리츠 배당 매력 부각

서울 핵심 권역의 대형 프라임 오피스(연면적 3만 3000㎡ 이상 대형 업무용 빌딩)가 극심한 공급 부족과 견고한 임차 수요로 인해 유례없는 품귀 현상을 겪고 있다. 고금리 장기화와 실물 경기 둔화 우려 속에서도 주요 업무지구의 대형 업무시설은 공실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임대차 시장의 호조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재택근무 축소와 임직원 복귀 흐름이 맞물리면서 서울 오피스 시장은 북미나 유럽 주요 도시의 높은 공실률과 대조적인 흐름을 보인다. 탄탄한 임대 수익을 바탕으로 자산운용사와 기관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재차 집중되면서 상업용 부동산 거래 시장의 회복세를 이끌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주요 권역의 프라임급 오피스 평균 공실률은 2% 초반대를 기록하며 자연공실률(통상 5%)을 크게 밑돌고 있다. 권역별로는 테크 기업과 스타트업이 밀집한 강남권역(GBD)의 공실률이 1% 중반대로 사실상 빈 사무실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전통 금융사와 대기업이 자리 잡은 도심권역(CBD)과 다국적 기업 및 금융사 수요가 몰린 여의도권역(YBD) 역시 각각 2%대와 1% 후반대의 낮은 공실률을 나타냈다. 판교를 비롯한 기타 수도권 주요 업무지구 또한 IT 연구개발 인력 확충에 힘입어 1% 안팎의 공실률을 기록 중이다.
임대 공간을 구하지 못한 기업들이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상황이 이어지자 임대료 상승세도 가파르다. 주요 상업용 부동산 종합 서비스 기업들의 집계 결과 서울 도심권역 주요 빌딩의 3.3㎡당 실질 임대료는 전년 동기 대비 8% 이상 상승했다. 과거 통상적으로 제공되던 연간 2~4개월 수준의 무상 임대 기간(렌트프리)이나 인테리어 공사비 지원(핏아웃) 같은 임차인 유치 혜택이 대폭 축소됐다. 임차인이 실제로 부담하는 유효 임대료는 명목 임대료보다 더 가파르게 올랐으며, 전기료와 인건비 인상분이 반영된 관리비 부과 금액 역시 평당 4만 원대를 넘어섰다.
오피스 품귀 현상의 근본 원인으로는 신규 공급 절벽과 기업들의 대형화 추세가 꼽힌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집계 기준 최근 수년간 이어진 공사비 급등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경색으로 인해 신규 업무시설 착공이 줄줄이 연기되거나 중단됐다. 도심권 재개발 구역과 역세권 복합개발 사업장 곳곳에서 시공사와 시행사 간 공사비 증액 갈등이 빚어지며 준공 예정 시점이 수년 뒤로 밀렸다. 향후 수년간 서울 핵심 지역에 들어설 대형 신축 오피스 물량이 제한적이라는 인식이 시장 전반에 확산하면서 기존 우량 자산의 희소가치가 더욱 부각되는 구조다.
공간을 효율화하고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쾌적한 근무 환경을 갖춘 대형 오피스로 이전하려는 대기업들의 거점 통합 수요도 한몫을 하고 있다. 거점별로 분산됐던 계열사와 부서들을 하나의 랜드마크 빌딩으로 모으는 과정에서 전용면적 수천 평 규모의 초대형 면적을 일괄 임차하는 계약이 늘어났다. 글로벌 정보기술 기업과 벤처캐피털, 바이오 연구개발 기업들이 강남과 도심으로 복귀하면서 오피스 면적 흡수율은 견조한 흐름을 지속하고 있다. 여기에 글로벌 친환경 건축물 인증(LEED 등)을 획득한 건물로 본사를 이전해 ESG 경영 지표를 충족하려는 외국계 기업의 수요도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
강남 테헤란로 일대에서 확장 이전을 추진하던 IT 솔루션 기업 총무부서장 김모 씨(46)는 반년 넘게 사무 공간을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 김 씨는 "직원 200여 명이 근무할 전용면적 1500㎡ 규모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권역 내 대형 빌딩 열 곳 이상을 접촉했으나 즉시 입주 가능한 층이 전혀 없었다"며 "기존 임차인의 만기 퇴거 시점에 맞춰 기존 조건보다 보증금과 월 임대료를 상향 조정해 겨우 가계약을 체결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임대차 시장의 견고함은 투자 시장의 자금 유입으로 직결되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등록된 서울 상업·업무용 빌딩 거래 자료를 살펴보면 분기별 거래 대금은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며 뚜렷한 반등세를 보였다. 자금 조달 금리가 안정권에 접어들기 시작하자 자산운용사들은 기관 자금을 바탕으로 서울 핵심 입지의 프라임 오피스 인수전에 공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국내 주요 연기금과 공제회 역시 해외 부동산 부실 우려를 계기로 자금 배분 전략을 수정해 검증된 서울 오피스 블라인드 펀드 출자 비중을 확대했다.
투자 수익률 지표인 자본환원율(캡레이트·Cap Rate, 부동산 매입가 대비 순임대소득 비율)은 연 4%대 후반에서 5%대 초반 수준을 형성하고 있다. 선순위 담보대출 금리가 4%대 중반 수준으로 내려앉으면서 대출 금리와 캡레이트의 격차를 나타내는 레버리지 스프레드가 점차 플러스 영역으로 돌아섰다. 레버리지(차입)를 활용한 수익률 제고가 가능해진 점도 기관 매수세를 자극하는 요인이다. 우량 임차인이 5년 이상의 장기 임차 계약을 맺은 빌딩의 경우 담보대출 심사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아 유리한 가산금리 조건으로 금융 조달이 이뤄진다.
한 부동산 자산운용사 연구위원은 "수도권 물류센터의 공급 과잉이나 지식산업센터의 미분양 사태와 달리 서울 프라임 오피스는 확고한 공급 제한과 강력한 수요 기반을 동시에 갖춘 유일한 섹터"라며 "임대료 인상이 인플레이션을 방어해 주기 때문에 기관 투자자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창출하는 필수 포트폴리오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핵심 업무지구의 대형 오피스는 단순한 임대 자산을 넘어 자산 가치 상승에 따른 차익 실현 가능성까지 높게 평가받는다"고 덧붙였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열기는 일반 개인 투자자들의 간접투자 시장으로도 번지고 있다. 프라임급 오피스 빌딩을 기초자산으로 담은 상장 부동산투자회사(리츠·REITs)에 대한 배당 수익률 관심이 커진 것이다. 직접 수백억 원대 빌딩을 매입하기 어려운 중장년층 투자자들이 안정적인 배당 수익과 향후 매각 차익을 노리고 상장 리츠나 부동산 공모펀드로 눈을 돌리는 흐름이 감지된다. 주요 상장 오피스 리츠들의 연 환산 배당 수익률은 6~7%대를 유지하고 있으며, 주가 역시 부동산 경기 저점 인식이 퍼지면서 공모가 수준을 회복하고 있다.
실제 은퇴를 앞두고 수익형 부동산을 알아보던 박모 씨(58)는 수도권 꼬마빌딩 직접 매입을 고민하다가 도심 대형 오피스에 투자하는 상장 리츠로 방향을 틀었다. 박 씨는 "공실 우려가 큰 외곽 상가나 중소형 빌딩을 직접 관리하는 것보다 대기업이 장기 임차 중인 핵심 오피스에 간접 투자해 정기적인 배당금을 받는 방식이 자금 운용 면에서 훨씬 안정적이라고 판단했다"며 "세제 혜택과 유동성 확보 측면에서도 간접투자가 유리하다고 보았다"고 말했다.
다만 상업용 부동산 시장 내부의 양극화는 점차 뚜렷해지는 양상이다. 지하철역과 인접하고 친환경 건축물 인증을 획득한 연면적 3만 3000㎡ 이상의 프라임급 빌딩은 높은 몸값을 유지하는 반면, 외곽 지역의 노후 중소형 빌딩은 임차인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설 관리 수준이 낮고 주차 공간이 부족한 빌딩은 공실 해소를 위해 렌트프리 기간을 늘리거나 임대료를 낮추는 등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 특히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고 스마트 공조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노후 자산의 경우 탄소 배출 규제와 유지보수 비용 부담이 겹쳐 매수세가 끊긴 상태다.
한 감정평가사는 "같은 권역 내에서도 빌딩의 물리적 스펙과 친환경 설비 구비 여부에 따라 임대료 격차가 3.3㎡당 수만 원씩 벌어지고 있다"며 "글로벌 기업들이 환경·사회·투명경영(ESG) 기준에 부합하는 프라임급 빌딩만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어지면서 노후 오피스의 자산 가치 하락 압력은 지속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건물 가치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리모델링이나 친환경 인증 획득 같은 밸류애드(가치 제고) 전략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간접투자를 고려하는 투자자라면 투자 대상 자산의 세부 내역을 꼼꼼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개별 리츠와 펀드가 보유한 오피스의 주요 임차인 만기 도래 시점, 가중평균잔여임대차기간(WALE), 차입금 만기 구조와 고정금리 비중 등을 사전 확인해야 한다. 임차인의 신용도가 낮거나 단일 임차인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자산은 재계약 시점에 공실 위험과 임대료 삭감 요구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권역별·임차인별 분산 투자 현황을 점검하는 절차가 권장된다.
정부와 유관 기관은 리츠 시장 활성화를 위해 공모 리츠의 자산 편입 규제를 완화하고 주식 매매 차익에 대한 과세 특례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우량 자산 중심의 리츠 상장을 지원하기 위해 자산 편입 심사 절차를 간소화하고 프로젝트 리츠 도입 등 제도 개선을 단계적으로 추진 중이다. 기획재정부 역시 공모 부동산 펀드 및 리츠에 3년 이상 장기 투자할 경우 배당소득에 대해 9% 저율 분리과세를 적용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규정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 상업용 오피스 시장에서는 강남역 인근과 을지로 도심을 중심으로 연말까지 총 1조 5000억 원 규모의 대형 프라임 빌딩 매매 거래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마치고 잔금 납입 절차를 밟고 있다. 주요 상장 리츠들은 주주총회를 통해 하반기 결산 배당금을 확정 공시하고 신규 프라임 오피스 자산 편입을 위한 유상증자 일정을 진행하고 있다. 여의도권역의 주요 대형 빌딩 역시 대형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의 사옥 이전 계약을 완료하고 내년도 입주를 위한 인테리어 공사에 착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