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진입 앞두고 국민연금 수급 공백 해법 찾는 노사정

만 60세 정년을 앞둔 근로자들의 일자리 불안과 노후 소득 공백 문제가 다시 노동시장의 핵심 화두로 떠올랐다.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이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 진입이 현실화하면서, 일할 능력이 있는 중장년층을 노동시장에 어떻게 머무르게 할 것인가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생산연령인구 감소에 따른 산업 현장의 인력 부족과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 연장에 따른 소득 공백이 맞물리며 법정 정년 연장과 계속고용 제도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동시에 높아지는 형국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생산연령인구는 가파르게 줄어드는 반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급증하는 추세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55세부터 79세까지의 고령층 인구 중 장래에 계속 일하고 싶다고 응답한 비율은 68%를 넘어섰다. 이들이 근로를 희망하는 주된 이유는 생활비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라는 응답이 절반을 넘게 차지했다. 본인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하고 싶어 하는 실질적인 은퇴 희망 연령 역시 평균 73세에 달해 제도적 정년과 실제 근로 희망 연령 사이의 괴리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1998년 국민연금법 개정으로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단계적으로 늦춰지면서 소득 공백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과거 만 60세였던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2013년 61세를 시작으로 5년마다 1세씩 늦춰져 2033년에는 만 65세로 변경된다. 1969년생 이후 출생자는 만 65세가 되어야 국민연금을 온전히 받을 수 있지만, 현행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상 정년은 만 60세에 머물러 있다. 만 60세에 퇴직한 뒤 국민연금을 받기 전까지 최소 3년에서 최대 5년 동안 소득이 완전히 끊기는 구조적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고령층 고용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고령층의 상당수가 저임금 단순 노무직이나 임시·일용직으로 재취업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퇴직 전 쌓아온 전문성과 기술을 온전히 살리지 못하고 고용의 질이 낮은 일자리로 이동하면서 국가적인 인적 자원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후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맞이하는 조기 퇴직은 곧바로 노인 빈곤율 상승으로 이어지며, 이는 결국 국가 재정과 사회복지 지출 부담으로 되돌아오는 악순환을 낳는다.
노동계는 법적 정년을 현행 만 60세에서 65세로 일괄 상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에 맞춰 법정 정년을 늘리지 않으면 수많은 중장년 근로자가 생계 위협과 노후 빈곤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대기업과 공공부문을 제외한 다수 중소기업 사업장에서는 정년 이후 자발적 재고용을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법률로써 정년을 강제해야 실질적인 고용 안정이 보장된다는 논리다. 노동계는 임금 삭감을 전제로 한 정년 연장이 아니라, 기존 근로조건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주된 일자리에서 지속해서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반면 경영계는 법정 정년의 일괄적인 연장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특징인 연공급(호봉제, 근속연수가 늘어남에 따라 임금이 자동으로 상승하는 체계) 중심 임금체계를 그대로 둔 채 정년을 연장하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급증한다는 이유에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현행 임금체계 아래서 정년이 65세로 늘어날 경우 기업들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인건비와 퇴직금 부담이 천문학적인 수준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경영계는 기업의 이러한 비용 부담 증가가 청년층의 신규 채용 축소로 이어져 세대 간 일자리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경영계는 이에 따라 법정 정년을 일괄적으로 늘리기보다는 직무와 성과에 따라 보수를 지급하는 직무급제로 임금체계를 개편하고, 정년에 도달한 근로자를 선별해 다시 채용하는 재고용 중심의 계속고용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맞선다. 취업규칙 개정 요건을 완화해 기업이 자율적으로 고용 연장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률적인 강제 규제는 기업의 경영 환경을 악화시키고 고용 시장 전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노동 현장에서는 정년 연장을 둘러싼 체감 온도 차가 뚜렷하다. 제조업 중소기업에서 28년간 근무한 김모 씨(58)는 정년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자녀 학자금과 주거비 지출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 은퇴를 생각하기 어렵다며, 연금을 받을 때까지 최소 5년의 공백을 버틸 재취업 자리가 마땅치 않아 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퇴직 후 단순 노무직이나 단기 계약직 외에는 경력을 살릴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현실에서 법정 정년 연장만이 가장 확실한 안전판이라는 설명이다.
건설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일하는 이모 씨(61)는 지난해 정년을 맞이한 뒤 1년 단위 촉탁 계약직으로 재고용되었으나 임금이 기존의 절반 수준으로 깎였다고 털어놓았다. 이씨는 같은 업무를 수행하고 책임의 무게도 같은데 신분이 계약직으로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처우가 크게 낮아졌다며, 고용이 유지되는 것 자체는 다행이지만 숙련 기술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재고용 방식에는 아쉬움이 크다고 밝혔다.
반면 기업 인사담당자들의 시각은 다르다. 중견 정보기술(IT) 업체에서 인사 업무를 총괄하는 박모 씨(49)는 호봉제가 유지되는 상태에서 고연차 인력의 정년을 일괄 연장하면 한정된 인건비 재원 탓에 신입 사원 채용을 대폭 줄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정년 이후에도 일할 기회를 열어두되 근로 형태를 다양화하고 임금체계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먼저 마련되어야 기업도 지속 가능한 채용 계획을 세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노사 간 입장 차가 팽팽한 원인으로 왜곡된 임금체계와 경직된 노동시장 규제를 꼽는다. 노무사는 근속연수가 쌓일수록 임금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연공성이 높은 사업장일수록 정년 연장에 대한 기업의 저항이 클 수밖에 없다며, 정년 연장 논의가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려면 임금체계 개편과 고용 형태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논의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년 연장과 임금체계 개편을 분리해서는 노사 간 현실적인 타협점을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노동 전문 변호사는 현행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해 기업들이 정년 연장에 맞춘 임금피크제나 직무급 전환을 추진하는 데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짚었다. 변호사는 노사 합의를 촉진하기 위한 제도적 유연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정 정년만 강제 연장할 경우 노동 분쟁이 급증할 수 있다며, 계속고용 방식의 다변화와 함께 관련 법령의 유연한 정비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경제 연구위원 역시 세대 간 일자리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연구위원은 대기업과 공공부문에서는 정년 연장이 청년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지만, 극심한 구인난을 겪는 중소제조업에서는 중장년 인력의 숙련 기술 유지가 필수적이라며, 업종과 사업장 규모에 따라 적용 시기와 방식을 차등화하는 유연한 제도 설계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일률적인 법 개정보다는 사업장 상황에 맞는 계속고용 모델을 구축해야 사회적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견해다.
인사조직 전문 연구위원은 고령 인력의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한 재교육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연구위원은 정년 연장이 단순히 고용 기간을 늘리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급변하는 디지털 산업 환경에 맞춰 중장년층이 직무 역량을 지속해서 업데이트할 수 있도록 맞춤형 직무 훈련 프로그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과 정부가 협력해 고령 근로자의 생산성을 높여야 고용 연장에 따른 인건비 부담 문제를 근본적으로 완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해외 주요국의 경우 초고령사회를 맞아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고용을 정착시켰다. 일본은 고령자고용안정법을 개정해 65세까지의 고용 확보 의무를 법제화했다. 기업에 정년 폐지, 정년 연장, 계약직 재고용 등 세 가지 선택지를 부여해 자율성을 보장한 것이 특징이다. 실제로 일본 기업의 70% 이상은 기존 정년을 유지하되 퇴직 후 촉탁직 등으로 다시 고용하는 재고용 방식을 택했다. 일본은 최근 70세까지 취업 기회를 확보하도록 노력 의무를 부여하는 등 계속고용의 범위를 단계적으로 넓혀가고 있다.
독일은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단계적으로 올리면서 정년도 이에 맞춰 연동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독일은 직무급 중심의 임금체계가 정착되어 있어 정년이 연장되더라도 근속연수에 따른 급격한 인건비 상승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미국은 이미 1986년에 연령차별금지법을 통해 정년제를 원칙적으로 폐지했으며, 나이가 아닌 개인의 직무 수행 능력에 따라 고용과 퇴직이 결정되는 노동시장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영국 역시 2011년에 기본 정년 퇴직 제도를 공식 폐지해 능력 중심의 고용 문화를 확립했다.
국내에서도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중심으로 중장년 계속고용을 위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해 중장년층이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기본 방향을 제시했다. 다만 법정 정년을 직접 늘리는 방식보다는 퇴직 후 재고용이나 정년 폐지 등 다양한 형태를 포괄하는 계속고용 방식에 무게를 두고 사회적 합의를 모색하는 중이다.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잇따라 발의된 상태다. 법정 정년을 65세로 명시하고 이를 어길 시 벌칙을 강화하는 법안부터, 임금피크제 도입 및 직무급 전환을 조건으로 계속고용을 유도하는 법안까지 다양한 대안이 계류되어 있다. 여야 모두 초고령사회 진입에 따른 고용 연장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이행 방식과 속도를 두고는 시각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고령자 계속고용장려금 지원 대상을 확대하고 중소기업의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무료 컨설팅 사업을 진행하며 현장 안착을 지원하고 있다. 고령자 계속고용장려금은 정년에 도달한 근로자를 정년 이후에도 계속 고용하거나 정년을 연장·폐지한 중소·중견기업에 근로자 1인당 월 일정 금액을 최장 3년간 지급하는 제도다. 노동계와 경영계는 향후 개최될 노사정 대화 본회의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입법 공청회에서 계속고용의 의무화 범위와 임금 삭감 허용 여부 등을 놓고 줄다리기를 이어갈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