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의료원 전문의 결원 심화에 정부 재정 투입과 제도 개선 병행

지방 거점 공공병원들이 심각한 의료 인력 부족으로 응급실과 중환자실 등 핵심 진료과 운영에 극심한 차질을 빚고 있다. 수도권과 대도시로의 의료 자원 쏠림 현상이 심화하면서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지방의료원과 권역응급의료센터의 만성적인 구인난이 한계 상황에 다다랐다. 필수 진료를 담당할 전문의를 구하지 못해 진료과를 일시 폐쇄하거나 야간 응급실 운영을 축소하는 사례가 전국 곳곳에서 잇따르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집계한 전국 35개 지방의료원 인력 현황에 따르면 정원 대비 결원율은 매년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생명과 직결된 이른바 필수의료 과목의 결원 상태가 두드러진다. 일부 지방의료원은 연봉 수억 원을 내걸고 전문의 채용 공고를 수차례 냈으나 지원자가 없어 수개월째 공석을 채우지 못했다. 의료 인력의 공백은 고스란히 지역 주민들의 의료 접근성 악화와 진료 지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역 간 의료 격차는 통계로도 명확히 확인된다. 국립중앙의료원이 발표한 공공보건의료 통계에 따르면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인구 1천 명당 활동 의사 수 격차는 지난 10년간 꾸준히 벌어졌다. 치료가 적시에 이뤄졌다면 피할 수 있었던 치료 가능 사망률 역시 서울과 비수도권 도(道) 지역 사이에 상당한 격차를 보였다. 응급 환자가 발생했을 때 관내에서 최종 치료를 받지 못하고 다른 지역 상급 종합병원으로 재이송되는 비율도 지방이 수도권보다 월등히 높았다.

지방 공공병원의 경영 악화는 인력 유출을 더욱 부채질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감염병 전담병원 역할을 수행했던 다수 지방의료원은 환자 수 회복 지연과 지속적인 운영 적자로 인해 의료진 처우 개선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병상 가동률이 예년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서 발생한 재정 적자는 시설 투자와 장비 도입을 가로막고, 이는 다시 우수 의료진의 이탈과 환자 감소라는 악순환으로 연결된다.

제도적 한계도 인력난을 심화시키는 주원인으로 지목된다. 대다수 공공병원은 총액임금제와 공공기관 정원 관리 규정에 묶여 있어 민간 의료기관 수준의 유연한 보수 체계를 갖추기 어렵다. 비수도권 근무를 기피하는 의사들을 유인할 만한 보상 체계와 연구 인프라, 주거 지원 등 정주 여건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젊은 의사들 사이에서는 수도권 대형병원 수련과 민간 병원 개원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 공공병원 기피 현상이 구조화됐다.

현장에서 진료를 이어가는 의료진의 피로도는 한계에 도달했다. 순환기내과 전문의는 지방의료원에서 홀로 응급 당직과 외래 진료, 입원 환자 관리를 도맡다 보면 체력적 소진이 극심하다고 설명했다. 대체 인력이 없어 학회 참석이나 연차 사용조차 자유롭지 못하며, 야간에 중증 환자가 오더라도 배후 진료과 협진이 불가능해 타 병원으로 전원 조치할 때마다 의료진으로서 심리적 압박감이 상당하다고 덧붙였다.

열악한 의료 환경은 지역 주민들의 생명권과 직결된다. 강원도 영월군에 거주하는 박모 씨(58)는 고령인 부모님이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을 겪었을 때 인근 병원에 야간 당직 의사가 없어 1시간 넘게 떨어진 대형병원으로 이동해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골든타임이 중요한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같은 질환이 발생했을 때 지역 내에서 믿고 갈 수 있는 병원이 없다는 사실에 주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매우 크다고 호소했다.

공공병원의 진료 역량 약화는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인프라의 연쇄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경상북도 안동시에 거주하는 이모 씨(42)는 출산을 앞두고 관내 분만 가능 병원을 찾지 못해 원거리 통원을 감수해야 했다고 전했다. 아이가 밤에 갑자기 고열이 나도 진료받을 수 있는 소아 응급실이 없어 타 시도 병원을 수소문하는 일이 일상적이라며 공공병원이 기본적인 안전망 역할을 해 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정부와 지자체는 필수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다각적인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지역완결형 필수의료 체계 구축을 목표로 권역 책임의료기관과 지역 책임의료기관 간 협력 체계를 강화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지방의료원의 시설과 장비 현대화를 지원하기 위한 공공보건의료 확충 예산을 편성하고, 필수의료 분야 수가 가산 체계를 개편해 공공병원에 대한 보상을 확대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의료 인력 확보를 위한 직접적인 재정 투입도 병행된다. 지방의료원 전공의 배정 인센티브를 확대하고 국립대병원 소속 전문의를 지방의료원에 파견하는 공공임상교수제 시범사업이 운영 중이다. 지자체 차원에서도 자체 예산을 투입해 전문의에게 거주 공간과 정착 지원금을 제공하는 등 근무 환경 개선에 나서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은퇴한 시니어 의사를 지역 공공의료기관과 연계하는 매칭 사업을 통해 당장의 당직 인력 부족을 보완하고 있다.

그러나 단기적인 처방만으로는 구조적 인력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역 의료 정책을 다루는 한 보건행정 전문 연구위원은 단순한 인건비 보조를 넘어 공공병원 의사들이 임상 역량을 유지하고 학술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국립대병원과의 순환 근무 네트워크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의료원을 진료 기능뿐 아니라 교육과 연구가 가능한 거점으로 육성하지 않는 한 전문의 장기 근속을 유도하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수가 체계의 근본적 재설계 필요성도 꾸준히 거론된다. 대한병원협회 관계자는 행위별 수가제 틀 안에서는 환자 수가 적은 지방 공공병원이 필수의료 진료과를 유지할수록 적자가 누적되는 구조라며, 진료 건수와 무관하게 필수 기능 유지 비용을 보전하는 사후 보상 방식의 공공정책수가가 전면 확대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지방의료원의 공익적 적자를 결함이 아닌 사회적 투자로 바라보는 시각 교정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지역 의료 인력 양성을 둘러싼 제도적 논의도 활발하다. 의과대학 입학 전형에서 비수도권 수험생을 일정 비율 이상 선발하는 지역인재전형 선발 의무 비율이 상향 적용되고 있다. 지역에서 장기간 의무 복무하는 것을 전제로 장학금을 지원하는 공중보건장학제도 역시 신청 요건을 완화하고 혜택을 늘려 운영 중이다. 비수도권 의대 졸업생들이 수련 과정 이후에도 해당 지역에 남아 정착할 수 있도록 정주 여건을 종합적으로 개선하는 연계 정책이 뒤따른다.

광역 지자체들도 지역 의료원 살리기에 독자적인 재원을 투입하고 있다. 충청남도와 전라남도, 경상남도 등 주요 지자체는 공공의료 지원 기금을 자체 조성해 의료원 적자 보전과 첨단 의료장비 도입을 지원하고 있다. 응급·소아·분만 등 3대 필수의료 취약지를 대상으로 24시간 진료가 가능한 전담 병원 체계를 지정하고 운영비를 전액 시·도비로 보조하는 조례가 잇따라 제정됐다.

시민사회의 요구도 구체화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등 관련 단체들은 공공병원이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재정 투입 기준을 경상수지 중심에서 필수의료 제공 실적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등 필수 보건의료 인력 전반의 처우를 동시에 개선해야 안정적인 병원 운영이 가능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국회에는 지방의료원에 대한 국가 재정 지원 의무를 강화하고 공공병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상 국비 지원 한도를 상향하는 내용의 개정안들이 발의돼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역별 의료 인프라와 진료권 분석을 토대로 지역 맞춤형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며, 관계 부처와의 협의를 통해 지방의료원 정원 규제 완화와 인건비 가이드라인 개편 방안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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