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재비 인건비 상승에 멈춰선 현장 늘자 검증 체계 손질 착수

도심 주택 공급의 핵심 축인 재건축과 재개발 정비사업 현장이 공사비 증액 문제를 둘러싼 극심한 내홍으로 잇따라 멈춰 서고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인건비 인상이 겹치면서 시공사가 요구하는 계약금액 증액분과 조합이 수용할 수 있는 한도 사이에 메우기 힘든 격차가 발생한 탓이다. 착공이 지연되거나 이미 공사가 진행 중인 현장마저 유치권 행사와 공사 중단이라는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조합원의 분담금 부담과 건설사의 금융비용 손실이 동시에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발표한 건설공사비지수에 따르면 건설 분야 물가지수는 최근 수년간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시멘트와 레미콘, 철근 등 핵심 건자재 가격이 단기간에 급등한 데다 주 52시간 근무제 정착과 숙련공 부족에 따른 노무비 상승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3.3제곱미터(㎡)당 공사비가 과거 400만~500만 원대에서 최근 서울과 수도권 주요 사업장을 중심으로 800만~1000만 원을 훌쩍 넘어서는 사례가 속출하는 이유다.

시공 계약 체결 당시 산정했던 공사비로는 도저히 채산성을 맞출 수 없다는 건설업계의 입장과 최초 계약 조건을 크게 벗어난 과도한 인상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조합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린다. 공사비가 오르면 조합원 개개인이 부담해야 할 추가분담금이 수억 원씩 늘어나기 때문에 조합 집행부로서도 시공사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기 어렵다. 협상이 장기화할수록 사업비 대출에 따른 이자 비용이 누적돼 결국 전체 사업성이 훼손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국토교통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는 이러한 파행을 막기 위해 한국부동산원을 통한 공사비 검증 제도를 운용하고 분쟁조정위원회를 가동하는 등 행정적 중재 노력을 기울여 왔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일정 비율 이상의 공사비 증액이 발생하거나 조합원 다수가 요청할 경우 공공기관에 공사비 검증을 의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자체 역시 갈등이 극에 달한 정비구역에 전문가로 구성된 코디네이터를 파견해 당사자 간 이견을 조율하는 방식을 병행해 왔다.

하지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공공 중재 제도의 실효성은 여전히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공사비 검증에 수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데다 검증 결과가 나와도 이를 강제할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의 검증 보고서가 감액 권고 수준에 그치다 보니 시공사와 조합이 검증 결과를 두고 또다시 해석 차이를 보이며 소송전으로 비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비사업 자문 경험이 풍부한 감정평가사는 설계 변경에 따른 내역서 검증 시 시공사가 제출하는 원가 자료와 조합이 파악하는 실제 시공 내역 간의 정보 격차가 극심하다고 지적했다. 시공사는 공법 변경과 물가 상승분을 상세히 반영했다고 주장하지만 조합은 전문 지식이 부족해 항목별 적정성을 자체적으로 따져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공공 검증 역시 시공사가 제출한 서류를 바탕으로 서면 검토 위주로 이뤄지다 보니 현장 특수성을 완벽히 반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설 전문 변호사는 공사비 분쟁이 소송으로 이어질 경우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최소 3년에서 5년 이상이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판결이 나올 때까지 발생하는 막대한 금융비용과 공사 지연 손실은 고스란히 조합원과 시공사의 몫으로 돌아온다. 소송을 통한 사후 해결보다는 계약 단계부터 물가 변동 반영 기준을 명확히 하고 갈등 발생 초기 단계에서 양측이 수용할 수 있는 강력한 중재 기구를 마련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분석이다.

서울 시내 한 재개발 구역 조합원인 박모 씨(61)는 최초 사업 계획 당시 예상했던 분담금보다 1억 5000만 원이 넘는 금액을 추가로 내야 한다는 통보를 받고 망연자실해 있다. 은퇴 후 정기적인 소득이 없는 상황에서 수억 원대 분담금 대출 이자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 씨는 시공사가 제시한 증액 내역이 타당한지 조합원들이 검증하고 싶어도 복잡한 내역서를 이해하기 어렵고 공공 검증마저 강제력이 없어 답답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반면 수도권 정비사업 현장을 총괄하는 건설사 소장 김모 씨(49)는 원자재 가격과 외주 가공비가 계약 시점 대비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치솟았다고 항변했다. 원가 이하로 적자를 감수하며 공사를 계속 진행하면 본사 차원의 재무 건전성이 훼손되고 현장 협력업체 대금 지급마저 밀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김 씨는 적정 공사비가 반영되지 않으면 마감재 품질 저하나 공기 연장 등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정비구역 갈등을 방치할 경우 주택 공급 차질은 물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로 번져 금융시장 전반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공사가 중단된 사업장은 대출 만기 연장이 거절되거나 고금리 브릿지론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공매로 넘어갈 위험에 노출된다. 이는 건설사의 연쇄 도산과 하도급업체의 경영난으로 이어져 지역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에 따라 정부는 표준공사계약서를 개정하고 분쟁 예방과 조정을 위한 제도 개선안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개정된 표준공사계약서는 물가 변동 산정 기준을 구체화하고 설계 변경 시 공사비 증액 절차를 명확히 규정했다. 공사비 검증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전담 인력을 확충하고 검증 기간을 단축하는 한편 지자체 도시분쟁조정위원회에 재판상 화해와 같은 법적 효력을 부여하는 방안도 제도화 논의의 중심에 서 있다.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비사업 초기 단계부터 공사비 증액 요인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표준 내역 관리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착공 이후 발생하는 설계 변경과 자재 품목 교체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상호 합의 절차를 의무화해야 불필요한 분쟁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시공사와 조합이 대등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협상할 수 있도록 공공 차원의 기술 지원단 운영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민간 정비사업이라 할지라도 공사비 갈등이 주택 시장과 국가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큰 만큼 공공의 적극적인 중재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다만 물가 상승이라는 객관적 시장 상황을 무시한 채 일방적인 양보만을 강요해서는 협의가 성립될 수 없으므로 원가 상승분을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상호 분담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지방의 한 재건축 조합은 시공사와의 증액 갈등으로 공사가 6개월간 중단됐으나 지자체 분쟁조정위원회의 집중 중재를 거쳐 극적으로 공사를 재개했다. 양측이 양보해 당초 증액 요구안에서 15%가량을 삭감하고 공사 기간을 3개월 연장하는 선에서 합의점을 찾았다. 전문 지식을 갖춘 중재단이 세부 공종별 원가를 직접 검토해 양측에 객관적 타협안을 제시한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정비사업 갈등을 줄이기 위해 조합과 시공사는 계약 체결 시 한국토지주택공사나 서울주택도시공사 등 공공기관의 자문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다. 계약서 작성 시 물가 변동 반영 방식으로 소비자물가지수 대신 건설공사비지수를 적용할지 여부와 특정 자재의 단가 변동 기준을 명시하는 것이 분쟁을 예방하는 현실적인 방안이다. 착공 이후라도 공사비 갈등이 가시화되면 관할 기초지자체의 분쟁조정위원회나 한국부동산원에 조정을 신청해 전문 위원의 자문을 받을 수 있다.

현재 국토교통부는 정비사업 공사비 갈등 해소 지원단을 통해 지자체별 분쟁 현장에 대한 현장 밀착형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은 공사비 검증 지원 전담 조직을 개편해 검증 대상 확대와 처리 기간 단축을 위한 세부 검증 기준 개정 작업을 추진 중이다. 공사비 내역 작성 기준을 통일하고 검증 수수료 체계를 합리화하는 내용의 정비사업 표준 가이드라인은 각 지자체 정비사업 인허가 부서와 정비사업 종합정보시스템을 통해 순차적으로 배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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