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고려인마을 산하 고려인문화관이 재소 고려인 한글문학평론가 정상진의 기고문 「내가 직접 겪은 강제이주」를 통해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의 비극을 다시 조명하고 나섰다. 고려인문화관에 따르면 이 글은 2007년 8월 24일자 고려일보에 실린 것으로, 강제이주를 몸소 겪은 정상진이 이주 결정 과정부터 화물열차 이동, 중앙아시아 정착 초기의 참상까지를 자신의 기억에 의지해 남긴 증언이다.

정상진의 기록에 따르면 소련 당국은 1937년 8월 21일 일본 첩자의 침투를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극동지역 고려인들을 카자흐스탄과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키기로 결정했다. 삶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등져야 했던 고려인들은 집과 농토, 가축을 제대로 정리할 겨를도 없이 짐을 꾸려 화물열차에 몸을 실어야 했다.

당시 대학생이던 정상진도 그해 9월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난 강제이주 열차에 올랐다. 병든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남겨둔 채 떠나야 했던 그는 가족과 친지들이 역전에서 통곡하며 이주민들을 배웅하던 장면을 생생하게 남겼다. 강제이주에 앞서 벌어진 탄압으로 부친마저 희생됐던 그는 “나는 지금 부친의 묘소를 모르고 있다”고 적어, 가족조차 마지막 흔적을 찾지 못했던 당시 고려인들의 참상을 전했다.

중앙아시아에 도착한 이후에도 고난은 이어졌다. 집도, 먹을 것도 변변치 않은 낯선 초원에서 혹독한 겨울을 맞은 고려인들 사이에서는 추위와 굶주림, 질병으로 어린이와 노인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대목은 강제이주가 단순한 인구 이동이 아니라 한 공동체의 삶 전체를 무너뜨린 사건이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손을 내민 것은 현지 카자흐인들이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고려인들에게 빵과 음식을 나누고 어린이와 노인을 돌보며 생존을 도운 이들 덕분에 정상진은 카자흐스탄을 평생 ‘은혜의 나라’이자 또 다른 고향으로 기억했다고 한다. 이 같은 기록은 모든 것을 잃은 고려인들이 현지 주민들의 도움 속에서 다시 삶을 일으켜 세운 과정을 함께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병학 고려인문화관장은 “정상진 선생의 글은 강제이주 열차에 직접 올랐던 당사자가 남긴 생생한 증언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며 “한 개인의 아픔을 넘어 고려인 전체가 겪은 상실과 생존의 역사를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날 국내로 귀환한 고려인동포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1937년 강제이주의 역사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며 “고려인문화관은 앞으로도 이러한 증언과 기록을 발굴해 선조들의 아픈 역사가 다음 세대에 잊히지 않도록 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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