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맹정음 100주년 전시 자료 (사진= 연합뉴스 제공)

“눈이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닫히고 세상도 닫히고 맙니다.” 우리 말과 글을 읽을 수 없던 시각장애인 학생들을 위해 한글 점자를 만든 송암 박두성의 활동과 훈맹정음의 역사를 살펴보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은 국립한글박물관, 송암점자도서관과 함께 인천 연수구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서 ‘점에서 세상으로: 훈맹정음 100주년’을 7일 개막한다고 6일 밝혔다. 전시에는 한글 점자의 연구·제작·보급 과정에 관한 자료와 국내외 점자의 역사를 보여주는 유물 등 65점이 나온다. 관람객이 만져보고 들으며 자료를 접할 수 있도록 촉각 모형과 점자·촉각책 체험 공간도 마련했다. 전시는 내년 2월 14일까지 이어진다.

일본어 점자 대신 우리 말과 글을 읽도록

박두성은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교사의 길을 걸었다. 그의 삶에 변화가 생긴 계기는 1913년 1월 제생원 맹아부 학생들을 만난 일이었다. 당시 시각장애인 학생들은 우리 말과 글이 아니라 일본어 점자만 배울 수 있었다. 박두성은 이런 교육 상황을 안타깝게 여겨 점자 체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점자 체계를 만드는 일은 학생들이 우리 말과 글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과제였다.

박두성은 1923년 제자들과 비밀리에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해 한글 점자 연구를 이어갔다.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1926년 여섯 점으로 이뤄진 점자를 완성했다. 박두성은 ‘한글 전자에 관하여’에서 점자의 조건으로 “1. 배우기 쉬워야 할 것 2. 점 개수가 적어야 할 것 3. 서로 헷갈리지 않아야 할 것”을 제시했다. 전시에서 소개하는 훈맹정음은 세종대왕이 완성한 훈민정음의 뜻을 이어 시각장애인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가 되길 바라며 붙인 이름이다. 박두성과 제자들의 연구는 우리 말과 글을 점자로 읽고 배울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데로 이어졌다.

돌출 문자에서 여섯 점 점자까지

전시는 한글 점자에 앞서 점자와 시각장애인 교육이 형성된 과정을 보여주는 국내외 자료도 함께 소개한다. 프랑스 출신 교육자 발랑탱 아위가 1786년 저술한 ‘시각장애인 교육에 관한 시론’이 전시 자료에 포함됐다. 아위는 1784년 파리에 세계 최초의 시각장애인 학교를 세웠고, 손으로 읽는 돌출 문자를 제시하며 시각장애인 교육의 필요성을 설파한 인물이다. 전시에서는 그가 저술한 책을 통해 당시의 시각장애인 교육과 읽기 방식에 관한 자료를 살펴볼 수 있다.

시각장애인 학교 학생이었던 루이 브라유가 고안한 6점식 점자판, 샤를 바르비에의 12점식 점자판도 공개된다. 서로 다른 점자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도록 구성해 점의 수와 체계가 다른 자료를 함께 소개한다. 전시에는 점자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가 모두 65점 나오며, 이 가운데 한글 점자 훈맹정음 관련 자료가 중심을 이룬다.

자료점의 수
루이 브라유 점자판6점
샤를 바르비에 점자판12점

제작·보급의 흔적을 담은 유물 11점

훈맹정음 관련 자료 가운데는 1926년 반포한 한글 점자표와 한글 점자의 탄생 배경 및 연구 과정을 기록한 ‘한글점자의 유래’ 초고본이 있다. 이 자료들은 한글 점자가 어떤 배경에서 만들어졌고, 연구 과정이 어떻게 기록됐는지를 보여주는 전시물로 소개된다. ‘한글점자 훈맹정음 제작 및 보급 유물’은 2020년 시각장애인 관련 자료로는 처음 국가등록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 전시에서는 해당 유물 가운데 11점을 한자리에서 선보인다.

점자를 금속 인쇄판에 찍어내는 제판기도 전시된다. 자판으로 점자 한 글자를 친 뒤 발로 페달을 밟아 금속판에 새기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기기다. 이 제판기는 1933년 일본맹인협회가 기증한 것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전시장에는 점자 인쇄와 관련된 기기뿐 아니라 1940년대 시각장애인 교육의 필요성과 단체 설립 이유를 소개하려고 대한맹인사업협회가 작성한 ‘앞 못 보는 이와 그의 친구들에게 드림’도 나온다. 박물관 관계자는 “한글 점자가 문자의 역할을 넘어 시각장애인의 삶과 권리를 넓혀 온 시간의 기록도 전시에서 소개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손으로 보고 소리로 듣는 전시

전시는 관람객이 자료를 눈으로 보는 데 그치지 않고 만지고 들을 수 있도록 꾸몄다. 설명문에는 점자를 함께 표시했고, 주요 자료 옆에는 만져볼 수 있는 촉각 모형을 뒀다. 점자책과 촉각책을 활용하는 체험 공간도 마련했다. 관람객은 전시장에 놓인 자료와 모형을 손으로 접하고, 점자책과 촉각책을 활용해 점자와 촉각 자료를 경험할 수 있다.

전시는 엄정순 작가의 대표작 ‘코 없는 코끼리’로 시작한다. 엄 작가는 1996년 사단법인 우리들의 눈을 설립한 뒤 시각장애인 어린이들이 실제 코끼리를 만져보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코끼리 작품을 만드는 활동을 해왔다. 관람객은 코가 없는 대형 조형물 ‘코 없는 코끼리 no.7’을 직접 만져볼 수 있다. 김명인 국립세계문자박물관장은 “한글 점자 100년의 성취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100년, 그리고 그 이후로도 더 많은 사람이 차별 없이 지식과 문화를 향유하는 길을 여는 작은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은 국립한글박물관, 송암점자도서관과 함께 마련한 이번 전시를 내년 2월 14일까지 운영한다. 관람객은 훈맹정음 관련 유물과 점자의 역사 자료를 살펴보고, 점자와 촉각책 체험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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