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출발선을 결정짓는다는 인식이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조사업체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3~69세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6 수저계급론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계층 이동이 어렵다는 회의적 시각이 여전히 강한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78.5%는 '집안 형편이 여유로우면 더 많은 기회를 누릴 수 있다'고 답했고, '사람마다 출발선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데 동의한 비율은 80.7%에 달했다. 부모의 재산이나 지원이 부족하면 자립이 어렵다는 응답도 50.9%로 절반을 넘었다. 경제적 배경은 물질적 풍요를 넘어 정서적 안정과도 연결되는 요소로 여겨졌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구김살 없는 것도 하나의 스펙'이라는 응답이 70.5%에 이르렀고,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일수록 자존감이 높다는 응답도 57.4%로 집계됐다. 반면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걸맞은 정당한 보상과 기회를 받고 있다고 느끼는 비율은 36.8%에 그쳐, 체감 격차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이런 인식은 스스로를 특정 '수저계급'으로 규정하는 태도로 이어졌다. 재산과 지위로 계급을 나누는 수저계급론에 대해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는 응답은 82.0%였고, 이에 공감한다는 응답은 2024년 68.4%에서 올해 69.5%로 소폭 늘었다. 스스로를 '흙수저'로 평가한 비율이 45.6%로 가장 많았으며 '은수저' 36.0%, '금수저'는 1.6%에 불과했다. 흙수저와 은수저 응답자 각각 89.9%, 84.0%는 자신의 계층 평가에 수긍한다고 답해, 스스로의 처지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짙었다. 계층별 이미지에서도 금수저와 은수저는 '여유 있는', '자신감 있는' 등 긍정적 표현이 두드러진 반면 흙수저는 '악착같은', '피해의식이 많은', '자신감이 없는' 등 부정적 표현이 다수를 차지했다. 스스로의 계층을 낮게 평가할수록 노력만으로 계층 상승이 어렵다고 답한 비율도 하층 69.2%, 중하층 61.3% 등으로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는데, 이는 현재의 자원 격차가 미래에 대한 기대 격차로까지 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제적 배경에 대한 민감도는 출산과 양육에 대한 태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응답자의 84.9%는 요즘 시대에 부모라면 자녀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고 답했고, 78.7%는 부모의 지원 수준에 따라 자녀의 앞길도 달라진다고 봤다. 이런 인식은 결국 출산 결정에도 영향을 미쳐,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면 자녀를 낳지 않는 편이 낫다는 응답이 52.4%로, 여유가 없어도 낳아 기르는 것이 좋다는 응답(36.7%)을 크게 웃돌았다. 특히 10대(63.0%)와 20대(67.0%)에서 이런 인식이 두드러졌다. 스스로의 계층을 낮게 평가하는 이들일수록 경제적 형편 때문에 부모를 원망해본 경험도 상대적으로 많았는데, 경제적 불안정이 가족 간 정서적 유대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남기는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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