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희대 대법원장이 청와대와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관행을 깨고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대법관 후보로 서면 제청한 사실이 19일 법조계 취재 결과 확인됐다. 청와대와 사법부는 지난 1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4명을 추천한 이후 최종 후보를 놓고 물밑에서 조율을 이어왔다. 청와대는 이재명 정부 첫 대법관 인선이라는 상징성을 고려해 여성이자 진보 성향인 김민기 서울고법 고법판사를 1순위로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고, 대법원은 윤성식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우선순위로 고려했으나 윤 부장판사가 내란전담재판부 재판장을 맡게 되면서 어려워졌다.
대법원은 이후 또 다른 여성 후보인 박순영 고법판사를 밀었지만 청와대와 접점을 찾지 못했다. 박 고법판사는 2021년 3월부터 중앙선관위원을 겸직해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은 제3의 후보로 손봉기 부장판사를 임명 제청했다. 손 부장판사는 이념적 성향이 뚜렷하지 않은 영남 지역 향판(지역법관) 출신으로, 서울대 출신이 아니며 지방법원 부장판사 출신으로는 처음 대법관 후보로 제청됐다.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청와대와 끝까지 협의를 진행했으나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며 "저희는 책임을 다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헌법상 대법관은 대법원장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며 국회 동의를 거쳐야 하지만, 대통령과 사전 협의를 거쳐 제청해야 한다는 법 규정은 없다. 다만 그동안 사전 협의를 관행으로 이어온 만큼 이번 제청을 계기로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양새가 됐다. 여권에서는 대통령 임명권 침해를 이유로 탄핵까지 거론하고 있다.
정태호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대법원장 제청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대통령과 국회가 거부하면 되지만, 그 경우 거부하는 쪽도 대법원장도 부담스러우니 사전에 협의를 해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헌환 아주대 로스쿨 명예교수는 "지금 상황은 대통령과 대법원장 간 정치적 투쟁"이라며 "사전협의 없는 제청이 위헌이나 위법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워 법적 판단이 아닌 정치적 판단의 대상"이라고 밝혔다.
현재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자리가 5개월 넘게 공석인 가운데 내달 이흥구 대법관마저 퇴임하면 대법관 2명 공석 상황이 발생한다. 대법관 증원법에 따라 현재 14명인 대법관은 2028년부터 12명이 늘어 총 26명이 되며, 이재명 대통령은 임기 내 22명을 임명하게 된다. 공은 일단 청와대로 넘어간 상태로, 청와대가 거부 의사를 밝히면 정면충돌로 이어질 수 있고 국회로 공을 넘길 가능성도 거론된다.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결국 대통령이 대법원장 제청을 거부하는 모양새가 되면 사법부 독립이 흔들리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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