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축수산물 가격 급등과 공공요금 인상 압박 겹쳐 통화정책 완화 시점 안갯속

추석 명절을 앞두고 농축수산물 가격 오름세가 두드러진 가운데 8월 말 기준 주요 공공요금 인상 요인까지 겹치면서 하반기 소비자물가 흐름에 경고등이 켜졌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내수 회복 지원과 물가 안정이라는 두 갈래 목표 사이에서 통화정책 운용 방향을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가계대출 증가세와 수도권 중심의 부동산 가격 불안이 여전한 상황에서 성수품 중심의 생활물가 상승 압력마저 가중되자 기준금리 조정 시점과 폭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한층 짙어지는 양상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최근 물가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2%대 중후반에서 등락을 반복하며 겉으로는 둔화세를 이어가는 듯한 흐름을 보였다. 그러나 체감도가 높은 신선식품지수와 생활물가지수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폭염과 국지성 집중호우가 반복된 여름철 기상 이변 여파로 채소류와 과실류 출하량이 급감하면서 밥상물가에 직접적인 부담을 주고 있다. 배추, 무, 시금치 등 주요 채소 가격은 평년 대비 두 자릿수 이상 뛰었고, 햇과일 수확량 역시 온난화와 병충해 피해로 평년 수준을 밑도는 실정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수급 분석 자료를 살펴보면 추석 성수기를 앞두고 사과와 배 등 차례상 필수 품목의 시장 공급량은 평년 대비 제한적일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가 정부 비축 물량을 방출하고 할인지원을 확대하는 등 성수품 수급 안정 대책을 쏟아내고 있으나, 산지 출하 가격 자체가 워낙 높아 유통 단계에서의 가격 안정 효과는 제한적인 범위에 머물고 있다. 기상 요인으로 인한 농산물 작황 부진은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로 전이되는 2차 파급 효과를 낳는다.

먹거리 물가뿐 아니라 하반기 에너지 및 공공요금 조정 일정도 물가 상방 압력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들은 누적된 적자와 미수금 해소를 위해 단계적인 요금 현실화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상반기 물가 안정을 이유로 억눌렀던 도시가스 요금과 전기요금의 인상 압력이 3분기 말과 4분기로 넘어가면서 원가 상승분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는 한계 상황에 도달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중교통 요금과 상하수도 요금 등 지방 공공요금도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순차적 인상이 예정돼 있어 서민 가계의 고정비 지출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국제 금융시장과 에너지 시장의 변동성도 물가 불안을 부추기는 요소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으면서 국제유가는 배럴당 80달러 안팎에서 불안정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것도 수입 물가를 밀어 올리는 주요 요인이다. 원자재와 곡물, 원유의 수입 단가가 환율 상승으로 인해 높아지면 국내 생산자물가가 시차를 두고 상승하게 되며, 이는 결국 최종 소비재 가격으로 전가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생산자물가지수에서도 전력·가스·증기 및 수도 부문과 농림수산품 부문이 전월 대비 상승 전환하며 하반기 소비자물가 반등 신호를 보냈다.

이러한 물가 지표의 흐름은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셈법을 극도로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내수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경제계의 요구와, 물가 및 금융안정을 위해 금리 인하에 신중해야 한다는 경계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고금리 장기화로 인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연체율이 상승하고 소매판매와 설비투자가 위축되는 등 실물경제 둔화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는 것은 금리 인하를 지지하는 주요 근거다. 하지만 물가상승률이 한국은행의 중장기 목표치인 2.0%에 확실하게 안착했다는 확신을 갖기에는 공급 측면의 불안 요인이 지나치게 많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 따르면 다수의 통화정책위원들은 물가 경로의 불확실성과 함께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최대 경계 요인으로 꼽고 있다.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세와 이에 연동된 주택담보대출 급증세가 꺾이지 않는 상황에서 섣부른 통화 완화 신호는 자산시장 과열과 가계부채 팽창을 부추길 위험이 크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대출 규제를 강화하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 체계를 손질하는 등 거시건전성 정책을 동원하고 있으나, 통화정책과의 엇박자가 발생할 경우 정책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시장 분석관은 현재의 경제 국면이 공급발 물가 상승 압력과 자산시장 불안, 내수 침체가 얽혀 있는 다중 복합 국면이라고 짚었다. 기준금리를 조기에 인하할 경우 부동산 시장으로 자금이 쏠리면서 가계부채가 다시 폭증하고 기대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는 반면, 금리 인하를 마냥 지연시킬 경우 한계 자영업자와 취약차주의 채무 불이행 위험이 급증해 금융시스템 전반의 리스크로 전이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통화당국은 물가의 기조적 안정 여부와 수도권 부동산 시장의 과열 진정세를 지표로 확인할 때까지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태다.

거시경제 연구위원은 통화정책의 파급 시차를 고려할 때 하반기 농축수산물 가격 급등과 공공요금 조정이 단기적인 충격에 그칠지, 아니면 기대인플레이션을 자극해 기조적 물가 상승세로 굳어질지를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밝혔다. 근원물가(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가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 매일 접하는 생활물가가 치솟으면 임금 인상 요구와 서비스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는 2차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구조적 요인은 중앙은행이 물가 목표 달성을 선언하고 통화 완화로 기조를 전환하는 데 커다란 걸림돌이 된다.

현장 자영업자들의 고통도 깊어지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박모 씨(52)는 추석을 앞두고 채소와 고기 등 식자재 가격이 일제히 오른 데다 상가 전기요금과 가스요금 고지서의 금액이 전달보다 크게 늘어 재료비와 관리비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출 이자 부담 때문에 음식 가격을 올려야 할지 고민이지만, 손님들의 발길이 끊길까 두려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매출은 늘지 않는데 고정비용만 지속적으로 증가해 한계 상황에 다다랐다는 토로가 이어진다.

금융 소비자들의 가계 재정 운용에도 비상이 걸렸다. 경기도 수원시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모 씨(41)는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액이 매달 수십만 원 늘어난 상태에서 식비와 공공요금 지출이 급증해 여유 자금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전했다. 하반기에 금리가 내려갈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대출 갈아타기를 준비하고 있었으나 금리 인하 시점이 늦춰진다는 소식에 대출 상환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처지라고 덧붙였다. 소득 증가세가 물가 상승세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실질소득이 줄어든 가구들의 소비 여력 위축이 가속화되고 있다.

정부는 추석 민생안정대책을 본격 가동하며 주요 성수품의 공급량을 역대 최대 수준으로 늘리고 농축수산물 할인 쿠폰 발행 규모를 확대하기로 했다. 농협과 대형마트 등 유통업계와 협력해 주요 채소와 과일류의 할인 판매를 지원하고 수급 불안 품목에 대한 수입 할당관세 적용을 유지하는 조치도 병행한다. 공공요금의 경우 서민 부담 완화를 위해 인상 시기를 최대한 분산하고 취약계층에 대한 에너지 바우처 지원과 가스·전기요금 감면 혜택을 연장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한국은행은 8월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 이후 발표한 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연간 물가상승률 경로를 재점검하고 대내외 위험 요인을 반영한 거시경제 지표를 수정 발표했다. 금통위는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긴축 기조를 충분히 유지하되, 향후 입수되는 데이터에 기반해 금리 인하 시점과 속도를 결정하겠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수도권 부동산 가격 동향과 금융권 가계대출 취급 실적, 그리고 추석 명절 전후의 실물 가격 동향이 향후 금통위의 정책 판단을 좌우할 핵심 잣대로 꼽힌다.

추석 성수품 공급과 공공요금 산정 기준, 농축수산물 정부 비축 물량 방출 계획에 대한 세부 공고는 기획재정부와 농림축산식품부, 산업통상자원부 공식 누리집에 게시되어 있다. 한국은행의 차기 기준금리 결정 회의 일정과 통화정책방향 의결문 전문은 한국은행 누리집 통화정책 게시판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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