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 시장의 실속형 IP 확장과 글로벌 유통 전략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들의 하반기 오리지널 시리즈 라인업이 일제히 윤곽을 드러내면서 국내 콘텐츠 제작 생태계가 뚜렷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막대한 자본을 쏟아붓던 과거의 물량 공세에서 벗어나 제작비의 효율적 집행과 장르 다변화, 검증된 지식재산권(IP)의 다각적 확장을 핵심으로 삼는 전략적 재편이 가속화하는 양상이다. 전 세계적인 경기 둔화와 구독자 수 성장 정체라는 복합적인 위기 상황 속에서 플랫폼과 제작사들은 양적 팽창보다 질적 완성도와 수익 구조 다변화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방송영상콘텐츠 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OTT 오리지널 시리즈의 편당 평균 제작비는 지난 3년 동안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며 전통적 지상파 방송사 드라마 제작비의 2배를 웃도는 수준까지 치솟았다. 회당 제작비가 수십억 원대에 달하는 텐트폴(흥행 가능성이 높은 대작) 작품들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전반적인 제작 단가가 급격히 상승했고, 이는 플랫폼과 제작사 양측 모두에 막대한 재정적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에 따라 올 하반기부터는 제작비 총액을 무작정 늘리기보다는 기획 개발 단계부터 손익분기점을 면밀히 계산하는 제작비 현실화 기조가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플랫폼 기업들은 가입자 유치를 위한 단발성 대작 경쟁을 지양하고 플랫폼 체류 시간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실속형 콘텐츠 편성을 확대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 동향 자료에 따르면 주요 OTT 이용자들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 증가율은 완만한 둔화세를 보이고 있으며, 복수 플랫폼을 넘나드는 교차 구독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이용자들의 플랫폼 이탈을 막기 위해서는 분기별로 특정 대작에만 의존하기보다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촘촘한 라인업 구성이 필수적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다.

제작 현장에서는 제작비 효율화를 위한 실질적인 공정 개선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시각특수효과(VFX)와 버추얼 프로덕션(가상 배경을 활용한 실시간 촬영 기술)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적극 도입해 로케이션 촬영 비용과 후반 작업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가상 스튜디오를 활용한 촬영 비중을 늘림으로써 해외 로케이션에 수반되던 막대한 체류비와 장비 운송비를 절감하고, 컴퓨터 그래픽 작업의 사전 시각화를 통해 재촬영 위험을 줄이는 방식이다.

장르적 측면에서는 전통적인 흥행 공식으로 통하던 대규모 액션이나 판타지 블록버스터 일변도에서 벗어나 심리 스릴러, 휴먼 드라마, 오피스 코미디, 범죄 수사극 등 중소 규모 예산으로 제작 가능한 웰메이드 장르물이 하반기 라인업의 전면에 배치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한국영화 및 OTT 결합 시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거대 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대비 탄탄한 서사와 독창적인 설정을 갖춘 중예산 시리즈물의 투자 대비 수익률(ROI)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흐름을 나타냈다. 자극적인 볼거리보다는 완성도 높은 각본과 밀도 높은 연출력이 시청 지속 시간을 결정짓는 핵심 요인으로 부각된 셈이다.

대중문화평론가는 글로벌 플랫폼들이 단기적인 화제성 몰이용 프로젝트를 축소하고 현실에 밀착한 서사와 세밀한 감정선을 다루는 미드폼 및 웰메이드 시리즈에 주목하고 있다고 짚었다. 화려한 볼거리로 초반 시선을 끄는 전략은 한계에 다다랐으며, 시청자가 인물들의 관계와 이야기에 깊이 몰입하게 만드는 내러티브의 힘이 플랫폼 충성도를 좌우하는 결정적 기준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검증된 원천 IP를 활용한 세계관 확장과 스핀오프(파생작) 제작 경향도 한층 뚜렷해졌다. 웹툰, 웹소설, 인기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한 시리즈 제작은 이미 보편화된 경로로 자리 잡았으며, 이제는 하나의 성공한 오리지널 IP를 웹툰, 게임, 애니메이션, 공연 등 다양한 미디어 포맷으로 동시다발적으로 확장하는 트랜스미디어 전략이 정착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콘텐츠 가치 분석 자료에 따르면 원천 IP 기반 시리즈는 오리지널 기획작 대비 초기 인지도 확보 비용을 최대 30% 이상 절감하는 효과를 나타냈다.

제작사들은 단일 플랫폼에 전적으로 종속되던 방영권 납품 구조에서 벗어나 IP 권리를 부분적으로 확보하거나 공동 소유하는 형태의 계약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글로벌 OTT의 전액 투자 및 독점 소유 모델(코스트 플러스)은 안정적인 제작비 조달이라는 장점이 있었으나, 흥행에 따른 초과 수익을 온전히 플랫폼이 독식하고 제작사는 하청 기지로 전락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따라 국내 주요 제작사들은 해외 선판매와 부가 판권 사업을 자체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리쿱(제작비 회수) 모델을 구축하며 협상력을 높이고 있다.

미디어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제작사들이 단순 용역 제공자에서 벗어나 IP 홀더(권리자)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자체 자금 조달 및 글로벌 공동 제작을 늘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플랫폼에 모든 권리를 넘겨주는 방식으로는 장기적인 생존과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위기의식이 확산하면서, 지분 공유형 투자 유치와 판권 분할 계약이 산업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진단이다.

시청자들의 관람 패턴 역시 이러한 콘텐츠 공급 구조의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주말이나 여가 시간에 한꺼번에 전편을 몰아보는 '빈지 왓칭(몰아보기)' 문화가 여전히 유지되는 가운데, 최근에는 회차당 방영 시간을 30분에서 40분 내외로 압축한 미드폼 시리즈나 주 1~2회 순차 공개 방식을 택하는 플랫폼이 늘고 있다. 순차 공개 방식은 콘텐츠의 온라인 화제성을 수주에 걸쳐 길게 유지할 수 있고, 시청자들의 구독 유지를 유도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평소 다양한 OTT 서비스를 구독해 온 직장인 박모 씨(38)는 대작이라고 홍보하는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 위주의 액션물보다는 현실적인 고민을 다루거나 반전이 치밀한 추리물을 더 선호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꺼번에 공개되는 대작들은 주말에 반짝 보고 잊히기 쉽지만, 매주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흡입력 있는 드라마는 커뮤니티에서 다른 시청자들과 의견을 나누며 오랫동안 즐기게 된다고 덧붙였다.

대학원생 정모 씨(29)는 구독료가 지속해서 인상되면서 여러 플랫폼을 상시 유지하기보다는 보고 싶은 시리즈가 완결되거나 특정 화제작이 공개되는 달에만 선택적으로 결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전했다. 플랫폼마다 비슷비슷한 좀비물이나 자극적인 장르물이 반복되면 쉽게 피로감을 느끼게 되는데, 신선한 소재와 개성 있는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 많은 플랫폼에 자연스럽게 더 오래 머물게 된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유통망 다변화도 하반기 K-콘텐츠 시장의 핵심 전략으로 부상했다. 북미와 서유럽 등 전통적인 주력 시장 외에도 동남아시아, 중동, 중남미, 인도 등 잠재 성장력이 높은 신흥 시장을 겨냥한 맞춤형 로컬라이징(현지화) 작업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6년도 콘텐츠 수출 지원 정책 자료에 따르면 권역별 언어 번역 자막 및 더빙 지원 예산이 전년 대비 증액 편성되었으며, 현지 유력 배급사와의 직접 유통 연계를 지원하는 해외 비즈니스 센터 운영이 확대되고 있다.

이와 함께 인공지능(AI) 기술의 실제 제작 공정 도입도 빠르게 가시화되고 있다. 기획 단계에서의 시나리오 데이터 분석, 다국어 자막의 초안 번역 및 검수, 음성 복제 기술을 활용한 다국어 더빙 등 제작 전반에 걸쳐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AI 솔루션 활용이 늘고 있다. 다만 인공지능 활용에 따른 저작권 침해 분쟁과 창작자의 권리 보호 문제는 산업계 내부에서 여전히 뜨거운 논쟁거리로 남아 있으며, 이에 대한 표준 계약 가이드라인 마련 작업이 관계 부처를 중심으로 진행 중이다.

국내 주요 스튜디오들은 하반기 라인업 공개에 맞춰 후속 시즌 제작 시스템을 사전 정례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단발성 기획에 머물던 과거 관행을 개선해, 초기 기획 단계부터 다중 시즌 구조를 설계함으로써 세트장 건립비와 캐스팅 비용 등 고정 비용을 차기 시즌으로 분산시키는 구조다. 이는 제작비의 효율적 안배뿐만 아니라 플랫폼 내에서 장기적인 프랜차이즈 팬덤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하반기 플랫폼 경쟁은 단순한 구독자 유치 숫자를 넘어, 제작 원가 관리의 정밀성과 IP 확장을 통한 다각적 부가가치 창출 역량에 따라 성패가 갈릴 것으로 평가된다. 각 플랫폼과 제작사들은 공개 일정을 전략적으로 분산 배치하며 본격적인 가을·겨울 성수기 콘텐츠 시장 공략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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