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부착 의무화 검토와 이동권 침해 반발 사이 해법 논의

초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둔 한국 사회에서 고령 운전자의 교통안전 대책을 둘러싼 논의가 전환점을 맞았다. 가속 페달 오조작 등으로 인한 다중 추돌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도로 위 안전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탓이다. 이에 정부와 관계 부처는 실제 운전 능력에 따라 야간 운전이나 고속도로 주행을 제한하는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 도입을 검토해 왔다. 하지만 고령층의 생계 유지와 기본적 이동권을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게 맞서고 있다. 공공의 안전 확보라는 법익과 헌법상 기본권인 이동의 자유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정교한 사회적 합의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경찰청과 도로교통공단이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유발한 교통사고 건수는 최근 수년간 꾸준한 증가세를 나타냈다. 전체 교통사고 건수가 전반적인 정체 혹은 완만한 감소세를 보이는 것과 달리 고령 운전자 사고 비율은 해마다 최고치를 경신하는 양상이다. 고령 운전자 면허 소지자 수 자체가 급증한 데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으나, 돌발 상황 대처 능력 저하로 인한 사고의 심각성은 단순 통계를 넘어선 사회적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가속 페달과 제동 페달을 착각해 인도로 돌진하거나 차량 여러 대를 들이받는 페달 오조작 사고는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지기 쉽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사고 분석 결과에서도 급발진을 주장한 사고 다수가 실제로는 페달 오조작으로 판명된 사례가 적지 않게 나타났다. 노화에 따른 시야각 축소, 반사신경 저하, 공간 지각 능력 감소는 운전자가 위급 상황에서 올바른 페달을 즉각 밟는 반응 속도를 늦춘다. 뇌와 근육의 연결 속도가 지연되면서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착각한 채 가속 페달을 더욱 강하게 밟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일정 연령 이상의 운전자를 대상으로 정밀한 신체 및 인지기능 검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운전 범위를 제한하는 조건부 면허제가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는 운전자의 신체적·인지적 한계를 고려해 특정 조건에서만 운전을 허용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야간 시력이 저하된 운전자에게는 주간 운전만을 허용하고, 고속 주행 시 반응 속도가 떨어지는 운전자에게는 최고 속도를 제한하거나 고속도로 진입을 금지하는 식이다. 또한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이나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가 장착된 차량만 운전할 수 있도록 면허 조건을 한정하는 방안도 포함된다. 독일, 미국, 호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이미 이러한 제도를 도입해 고령자의 이동권을 완전히 박탈하지 않으면서도 사고 위험을 낮추는 절충안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적용을 두고는 법률적, 현실적 쟁점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헌법재판소 판례상 이동의 자유는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과 제14조의 거주·이전의 자유에서 도출되는 중요한 기본권으로 인정받는다. 면허 제한이 자칫 고령자에 대한 획일적 차별로 변질될 경우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법조계 한 전문변호사는 특정 연령에 도달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운전 자격을 제한하는 것은 평등권을 침해할 수 있으므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능력 평가 기준이 전제되어야만 위헌성 논란을 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면허 제한이 생계 위협으로 직결되는 계층의 반발도 거세다. 화물차 운전이나 택시 운전, 대리운전 등 운전을 직접적인 생계 수단으로 삼고 있는 고령 노동자들에게 조건부 면허는 곧 소득 활동의 중단을 의미할 수 있다. 대중교통망이 촘촘하지 못한 농어촌 및 지방 중소도시 지역 거주민들에게도 자동차는 병원 진료나 필수 생활필수품 구매를 위한 유일한 이동 수단이다. 이동권이 차단될 경우 사회적 고립과 건강 악화로 이어지는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방의 한 읍 단위 지역에 거주하는 박모 씨(71)는 대중교통 배차 간격이 2~3시간에 달하는 환경에서 운전을 하지 못하면 일주일에 세 번 정기적으로 다녀야 하는 병원 치료를 포기해야 할 형편이라고 토로했다. 농자재 운반과 생필품 구입 역시 차량 없이는 불가능한 구조여서 일률적인 면허 규제보다는 대체 이동 수단이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다. 이처럼 수도권과 지방 간의 대중교통 인프라 격차는 고령 운전자 대책이 단일한 잣대로 추진되기 어려운 현실적 배경으로 작용한다.

기존에 시행 중인 고령자 운전면허 자진 반납 제도의 실효성 한계도 조건부 면허 논의를 촉발한 주요 원인이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65세 또는 70세 이상 운전자가 면허를 자진 반납할 경우 10만 원 안팎의 교통카드나 지역화폐를 일회성으로 지급하는 인센티브 정책을 펴왔다. 하지만 도로교통공단 통계에 따르면 전국 고령 운전자의 면허 자진 반납률은 매년 2% 안팎에 머무르고 있다. 일회성 지원금으로는 지속적인 교통비 지출을 감당하기 어렵고, 운전을 중단함으로써 발생하는 일상생활의 불편을 상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조건부 면허 도입의 성공 여부가 정밀하고 공정한 평가 시스템 구축에 달려 있다고 본다. 단순히 나이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가상현실(VR) 기반 주행 시뮬레이터나 실제 도로 주행 시험을 통해 개별 운전자의 인지·신체 능력을 정량적으로 측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운전 적합성을 판별하는 평가 도구가 과학적 타당성을 갖추지 못하면 탈락한 고령자들의 행정소송 등 불복 절차가 잇따를 수 있다며, 표준화된 능력 측정 매뉴얼과 공인된 검사 기관의 확충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적 보완 장치의 제도화도 주요 과제로 꼽힌다. 고령자 차량에 급발진 방지 장치나 긴급자동제동장치(AEBS),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장착을 의무화하거나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일본의 경우 2022년부터 비상자동제동장치 등이 장착된 '서포트 카(Support Car)'만 운전할 수 있는 한정 면허를 신설해 운전자의 이동권을 유지하면서도 오조작 사고를 대폭 줄이는 성과를 거두었다. 국내에서도 국토교통부와 완성차 업계를 중심으로 관련 기술 상용화와 보급 지원 방안에 대한 실무 검토가 진행 중이다.

교통복지 차원의 인프라 확충 없는 일방적 규제는 사회적 갈등만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지배적이다. 농어촌 및 교통 취약 지역을 중심으로 수요응답형 버스(DRT)와 100원 택시 등 맞춤형 공공 교통 서비스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고령자가 스스로 운전대를 놓더라도 일상적인 이동에 지장이 없도록 촘촘한 교통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조건부 면허 도입의 실질적 전제 조건이라는 분석이다.

대한교통학회 관계자는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문제는 개인의 부주의 차원을 넘어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구조적 위험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규제와 지원이 균형을 이루는 입법적 정비가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국회에서도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해 조건부 면허의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고, 운전 능력 평가 기준 및 지원 대책을 포괄하는 법안 발의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공청회와 관계 기관 협의를 거쳐 조건부 면허제의 세부 시행 방안과 평가 체계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경찰청은 특정 연령층 전체를 일괄 규제하기보다는 고위험 운전자를 선별해 맞춤형 조건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구체화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 역시 주행 평가 시스템 개발과 시범 사업 운용을 통해 데이터 축적에 주력하고 있다. 도로교통법 개정안의 국회 심의 일정과 맞물려 관련 법제 정비 절차는 단계적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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