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 공천 및 청년 정책 발의 실질적 참여 보장하는 당규 개정 목소리

선거철마다 주요 정당들이 앞다퉈 청년 인재를 영입하고 청년위원회를 확대 개편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이들 기구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는 구조적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각 정당이 표심을 잡기 위해 청년을 전면에 내세우는 이벤트성 정치를 반복하면서 정작 청년 세대의 삶을 바꿀 실질적인 입법 성과는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년 당원들이 제안한 의제가 당론으로 채택되거나 국회 상임위원회 법안 심사로 이어지는 통로가 극히 좁아, 정당 내 청년 기구가 단순한 홍보나 행사 동원 조직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현행 정당법과 각 정당 당헌·당규를 살펴보면 청년위원회의 법적 위상과 권한은 여전히 모호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대부분의 정당이 최고위원회 산하에 전국청년위원회나 청년최고위원 직책을 두고 있으나, 예산 편성권이나 공천 심사권 등 핵심 권한에서는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당내 주요 의사결정 기구인 당무위원회나 최고위원회에서 청년 대표가 실질적인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독자적인 의안을 상정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 이로 인해 청년 세대가 직면한 주거, 일자리, 자산 형성 등 시급한 민생 현안이 정당의 공식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당 활동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정당의 2030 당원 비율은 최근 수년간 꾸준히 증가해 전체 당원의 30% 안팎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청년층의 정당 가입과 정치 참여 욕구는 양적으로 팽창했으나, 이를 제도적으로 수용할 당내 의사결정 구조는 과거의 수직적 틀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청년 당원들이 주도적으로 정책 토론회를 열거나 당내 의견을 수렴하려 해도 중앙당의 승인과 지원 절차가 까다로워 자발적인 활동이 위축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정당 국고보조금 중 청년 정치 발전을 위해 의무적으로 배정해야 하는 청년발전기금의 집행 내역을 보면 실질적인 정책 연구나 입법 지원보다는 일회성 행사 비용이나 단순 홍보비로 쓰인 비중이 70%를 웃돌았다. 정당법 제28조는 경상보조금의 100분의 5 이상을 청년정치 발전을 위해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사용처에 대한 엄격한 사후 검증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기금의 상당 부분이 지도부 주관 청년 간담회 대관료나 홍보물 제작비, 행사 진행비 등으로 전용되면서 청년 정책 역량 강화라는 본래 목적은 퇴색되고 있다.

정치권 밖에서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청년층의 정치 혐오와 무력감을 심화시킨다고 분석한다. 정당 정책연구위원은 선거 국면에서 청년 기구가 발표하는 공약들이 실제 당의 총선 공약집이나 대선 공약집에 반영되는 비율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짚었다. 선거가 임박해 급조된 청년 기구는 당내 주류 세력의 정견을 전달하는 통로로 활용될 뿐, 청년 당원들이 현장에서 수렴한 요구를 상향식으로 관철할 수 있는 내부 의사결정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정책 개발을 담당할 전문 인력과 독립된 예산이 주어지지 않는 환경에서는 청년들이 지속 가능한 정책 생산 주체로 성장하기 어렵다는 점도 덧붙였다.

행정학 교수는 청년 당원의 참여가 단순한 자원봉사나 선거 운동원 수준에 머무는 현실을 지적했다. 청년위원회가 독자적으로 정책을 발굴하고 이를 당 지도부에 공식 안건으로 회부할 수 있는 정례 협의 채널이 전무하다는 분석이다. 정책 입안 과정에서 청년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의무 협의 규정이 당헌·당규에 명시되지 않는 한, 청년 기구의 정책 참여는 지도부의 온정주의적 배려나 일회성 이벤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정당 내 청년 조직 비교 연구를 보면 해외 주요 선진국의 경우 정당 청년 조직에 고유한 자치권과 재정권을 부여해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다. 독일의 주요 정당들은 청년 조직인 주소(Jusos)나 융에 우니온(Junge Union)에 독자적인 규약 제정권과 예산 집행권을 부여하며, 모정당의 정책 방향에 대해 공개적인 비판과 독자 안건 발의를 제도적으로 허용한다. 이들 조직은 독자적인 전당대회를 통해 청년 지도부를 선출하고 자체 강령을 마련해 모정당의 보수화나 관료화를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스웨덴과 영국의 정당 청년 기구 역시 청년 정책뿐만 아니라 외교, 안보, 조세 등 국가 전반의 중장기 의제에 대해 독자적인 정책 백서를 발간하고 이를 당 지도부 협상 테이블에 직접 올린다. 청년 조직에서 검증된 정책 역량과 리더십은 향후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 공천의 핵심 평가 기준으로 작용한다. 반면 한국의 정당 청년 조직은 당 지도부의 임명권에 종속돼 있어 지도부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조직의 존폐나 활동 반경이 좌우되는 실정이다.

정당 활동에 직접 참여했던 당사자들의 경험도 제도적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모 정당 청년위원회에서 2년 동안 정책위원으로 활동했던 김모 씨(28)는 대학생과 취업준비생 당원들이 수개월간 밤을 새워 만든 청년 고용 안정 대책 법안 초안을 당 정책위원회에 제출했으나 검토 회의조차 열리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당 지도부는 선거 유세 현장에 청년 당원들이 피켓을 들고 참석하는 것에는 적극적이었지만, 정작 기성세대의 이해관계가 걸린 노동 시장 구조 개혁이나 정년 연장 관련 청년 입법 과제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지역 청년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이모 씨(26)는 당내 교육 프로그램의 부실함을 지적했다. 청년 정치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강의 대부분이 기성 정치인의 무용담이나 선거 전략 특강에 편중돼 있고, 실질적인 법안 성안 기법이나 예산안 분석, 조례 입법 훈련 등 정책 역량을 기를 수 있는 실무 과정은 전무했다는 설명이다. 당내 청년 인재 양성 시스템이 체계화되지 않은 탓에 청년 당원들이 정책 전문가로 성장하지 못하고 소모품처럼 쓰이다 사라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정당에서 활동했던 박모 씨(34) 역시 청년 최고위원 출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성 정치인의 줄 세우기 관행을 절감했다고 토론회에서 밝혔다. 독자적인 정책 비전이나 지역 기반이 없는 청년 후보들은 당내 유력 계파의 후원을 받지 못하면 경선 기회조차 얻기 힘든 구조라는 지적이다. 이로 인해 청년 정치인들이 세대 전체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보다 특정 파벌의 대변인 역할을 수행하게 되면서, 청년 정치가 정당 내 하부 조직으로 종속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입법부 내부에서도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 정개특위 관계자는 청년 의무 공천 비율을 법제화하거나 청년발전기금의 사용 목적을 정책 입법 개발비로 엄격히 한정하는 방안이 논의 테이블에 올라왔으나 당내 기성 세력의 반발로 번번이 무산됐다고 밝혔다. 현재 공직선거법상 청년 추천 보조금 제도가 존재하지만 지급 기준이 모호하고 정당에 대한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 청년 당원들이 당내 정책 연구소와 연계해 법안을 직접 성안하고 이를 상임위에 회부할 수 있는 패스트트랙 제도의 도입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정치학 교수는 정당 내 청년 기구가 선거용 치어리더라는 오명을 벗으려면 인사와 예산의 독립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년위원장을 당 대표가 지명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청년 당원들의 직접 투표로 선출하고, 청년 조직에 자체적인 징계권과 공천 추천권을 부여하는 당헌 개정이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청년 기구가 단순한 연령별 분과가 아니라 정당 내 하나의 독립된 정책 결사체로 기능할 때 비로소 청년 입법이 단발성 선심성 공약에 그치지 않고 국가 백년대계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각 정당 정책연구원의 청년 연구 인력 비중을 확대하는 방안도 필수 과제로 꼽힌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정당 정책 분석 자료를 종합하면, 각 정당 싱크탱크 내에서 청년·미래 세대 전담 연구 인력은 전체 연구원의 5% 미만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청년 문제를 전담하는 상설 연구 조직이 없다 보니 발표되는 청년 정책 대부분이 기존 부처의 청년 고용 대책이나 주거 지원책을 짜깁기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초저출생, 지방 소멸, 국민연금 개혁 등 청년 세대의 미래가 걸린 거대 의제에서 정당 청년 기구가 주도권을 잡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거제도 개혁과의 연계 필요성도 꾸준히 제기된다. 비례대표 국회의원 및 지방의원 공천 시 청년 후보를 당선 안정권에 의무적으로 배치하는 청년 할당제가 실질적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행 제도하에서는 청년 후보들이 험지에 출마해 낙선하거나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비례대표 후순위에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회 진출 통로가 막혀 있는 상태에서는 청년 기구의 정책 역량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원내 입법으로 이어지는 추진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지방의회 청년 의원 비율이 한 자릿수에 머무는 구조 역시 풀뿌리 청년 정치의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지목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정당의 청년 정치 활동 지원 실태를 점검하기 위해 회계 감사를 강화하고 국고보조금 정산 보고서의 세부 공개 항목을 확대하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는 청년 정치 참여 확대를 위한 정당법 개정안과 공직선거법 개정안 다수가 계류되어 있다. 당내 청년 기구의 정책 입안 절차를 의무화하고 보조금 전용을 방지하는 내용의 법안들이 발의된 상태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정당별 청년발전기금 집행 실태에 대한 현장 실사를 정례화하고 부정 집행 적발 시 보조금 환수 기준을 강화하는 세부 지침을 각 정당에 통보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청년 정치 참여 보장 법안들을 안건으로 상정해 심의 절차를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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