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옻칠과 자개 기술을 현대 식기와 리빙 소품에 접목해 크라우드펀딩 대흥행

박물관 진열장 안에서나 볼 법했던 나전칠기와 분청사기가 도심 속 젊은 층의 식탁과 사무 공간 위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모셔야 하는 감상의 영역에서 벗어나 매일 손에 쥐고 물을 마시는 텀블러와 스마트폰 케이스, 아침 식사에 쓰이는 버터 나이프로 모습을 바꾸는 중이다. 오래된 기술을 고루한 유산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동시대의 쓸모와 미감에 맞춰 새롭게 벼려내는 청년 장인들의 발걸음이 공예 생태계 전반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들은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장인 정신과 정밀한 손기술의 뼈대를 고스란히 지켜내면서도 형태와 색채, 쓰임새는 철저하게 2020년대의 감각으로 재구성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발간한 공예산업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공예 시장에서 20대와 30대 공예 종사자 비율은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며, 일상생활 용품군으로 분류되는 테이블웨어 및 리빙 소품의 매출 비중이 전통 장식용품을 앞지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통적인 장식품이나 제기 중심의 소비 구조에서 벗어나 실생활에서 직접 만지고 사용하는 생활 밀착형 공예품에 대한 수요가 뚜렷하게 확인되는 대목이다. 대량 생산된 공산품이 흉내 낼 수 없는 손맛과 천연 재료 특유의 온기를 품으면서도 현대 주거 공간에 이질감 없이 어우러지는 디자인을 갖춘 기물들이 젊은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만들고 있다.

현대적 재해석의 선봉에 선 분야 중 하나는 단연 나전과 옻칠이다. 얇게 간 전복 껍데기를 오려 붙이는 나전 기술은 과거 자개장롱이나 패물함의 상징이었으나, 이제는 무선 이어폰 케이스와 휴대용 보온병, 현대식 와인 잔 받침 위에서 영롱한 빛을 낸다. 천연 도료인 옻칠 역시 전통 목기에 머물지 않고 티타늄이나 스테인리스 스틸 같은 금속 소재와 결합해 방수와 항균 기능을 갖춘 현대식 커트러리로 변신했다. 옻칠 특유의 차분한 색조와 묵직한 질감이 차가운 금속과 만나 독특한 대비를 이루면서 고급 다이닝 시장과 홈카페족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전통 기술을 현대 기물에 적용하는 과정은 단순한 디자인 변경을 넘어 소재 간의 물리적 충돌을 극복해야 하는 고난도 작업의 연속이다. 나무와 금속은 열 팽창률과 수축률이 판이하게 달라 금속 표면에 천연 옻칠을 안착시키거나 자개를 견고하게 부착하는 데 상당한 기술적 시행착오가 뒤따른다. 금속 표면을 미세하게 부식시켜 도료의 접착력을 높이거나 전통 아교 대신 열경화성 친환경 수지를 배합하는 등 전통 제조 공법의 기본 원리를 유지하면서도 과학적 접근법을 결합하는 실험이 현장에서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다.

공예디자인 분야 연구위원은 전통 기술이 현대 사회에서 지속 가능한 생명력을 얻으려면 박제된 보존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며 일상적인 쓰임과의 접점을 지속적으로 넓혀야 한다고 짚었다. 과거의 제작 방식을 맹목적으로 답습하기보다 현대인의 생활 주기와 주거 환경, 관리의 편의성까지 계산에 넣은 디자인 혁신이 결합해야만 지속적인 구매력과 자생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전통의 본질은 형태가 아니라 기술과 태도에 있으므로 시대에 맞는 변용이야말로 가장 적극적인 계승 방식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도자 공예 분야에서도 분청과 백자의 현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거친 흙의 질감을 살려 분을 바른 분청사기는 찻사발이나 항아리 형태를 벗어나 평평한 플레이팅 접시나 파스타 볼, 에스프레소 잔으로 다시 태어났다. 조선 백자의 담백한 곡선을 재해석한 현대식 조명 기구와 디퓨저 용기는 미니멀한 인테리어를 선호하는 1인 가구 사이에서 조용한 인기를 끌고 있다. 규격화된 틀로 찍어내는 양산형 식기와 달리 손으로 깎아낸 미세한 비대칭과 가마 안에서 불의 세기에 따라 다르게 발현되는 유약의 자연스러운 번짐이 특별한 가치를 부여한다.

방짜유기 역시 식기 세척기 사용과 간편한 세척을 원하는 현대 소비자들의 생활 습관을 반영해 무게를 줄이고 산화 방지 표면 처리를 더한 형태로 진화했다. 구리와 주석을 78대 22의 비율로 합금해 수천 번을 두드려 만드는 전통 방짜 기법은 고스란히 유지하면서도, 서양식 정찬에 어울리는 포크와 나이프, 버터 스프레더 등으로 품목을 다변화했다. 구리 합금 특유의 천연 살균력과 보온·보냉 효과라는 본래의 장점은 그대로 살리되 사용과 보관의 번거로움을 줄여 젊은 신혼부부의 혼수 품목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전통 목공예의 결구(짜맞춤) 기법을 활용한 가구와 소품 제작도 주목할 만한 흐름이다. 못을 일절 쓰지 않고 나무와 나무를 요철 형태로 끼워 맞추는 사개맞춤과 장부맞춤 방식을 소형 협탁, 모니터 받침대, 수납함 등에 적용해 견고함과 조형미를 동시에 잡았다. 원목이 지닌 고유의 나뭇결을 최대한 살리면서 현대 주거 공간의 협소한 평수를 고려한 모듈형 조립 구조를 접목해 실용성을 극대화했다. 낡고 거대한 전통 가구 대신 원룸이나 오피스텔 등 작은 공간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실용적 형태를 띤다.

서울 마포구의 한 공예 공방에서 나전 텀블러를 직접 구매한 직장인 이모 씨(33)는 매일 들고 다니는 일상용품에 자개의 영롱한 빛이 담겨 있어 책상 위에 올려두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만족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흔한 플라스틱 텀블러 대신 전통 공예 기술이 깃든 물건을 사용하면서 오래 두고 쓸 수 있는 나만의 물건을 소유했다는 가치를 체감한다는 소감이다. 주변 동료들 역시 공예품 특유의 질감과 세련된 디자인에 높은 관심을 보이며 구매처를 묻곤 한다고 덧붙였다.

전통 섬유 공예 분야에서는 쪽염색과 감물염색 등 천연 염색 기법을 활용한 패션 소품과 침구류가 자연주의 생활 방식을 추구하는 이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화학 염료가 낼 수 없는 깊이 있는 색조와 피부 자극이 적은 천연 섬유의 장점이 결합해 스카프, 에코백, 쿠션 커버 등으로 활발히 제작된다. 전통 자수 기법의 점 선 면 표현을 현대적인 그래픽 패턴으로 전환해 적용한 파우치와 명함 지갑도 일상적인 선물용 아이템으로 널리 소비되고 있다.

이러한 공예 트렌드는 해외 시장에서도 긍정적인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해외 수출 지원 사업 현황에 따르면 파리 메종앤오브제나 밀라노 디자인위크 등 세계적인 리빙 박람회에 출품된 한국 공예품 중 전통 기법을 현대식 기능과 결합한 생활 식기 및 조명류의 현지 바이어 계약 성사율이 매년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적 정체성을 품고 있으면서도 서구식 식문화와 주거 환경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기능적 완결성을 갖춘 점이 글로벌 경쟁력의 핵심 요인으로 평가받는다.

유통과 소비 방식의 변화도 공예 시장의 저변을 넓히는 데 결정적인 몫을 하고 있다. 과거에는 인사동이나 장터 같은 특정 오프라인 거점이나 전시장에 가야만 공예품을 살 수 있었으나, 지금은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과 소셜 미디어 기반의 자체 쇼핑몰을 통해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는 통로가 열렸다. 젊은 장인들은 제작 과정 전체를 짧은 영상으로 기록해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며 전통 기술에 깃든 수작업의 가치와 시간의 무게를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대량 복제 상품에 피로감을 느낀 소비자들이 이러한 제작 서사에 공감하며 후원자이자 능동적인 소비자로 참여하고 있다.

독립 브랜드를 운영하는 공예 디자이너는 젊은 소비층이 공예품을 단순히 물건으로 사기보다는 물건이 만들어진 배경과 장인의 숙련된 손길이라는 문화적 경험을 함께 구매하는 경향이 짙다고 설명했다. 전통을 무조건적으로 숭상하기보다는 완성도 높은 디자인과 내구성, 실질적인 사용성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일상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제작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물리적 시간차를 메우는 디자인 설계 작업에 전체 작업 시간의 절반 이상을 쏟아붓는 공예가들이 늘고 있다.

공예품을 일상에서 온전히 오래 쓰기 위해서는 올바른 관리와 사용 습관을 익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옻칠 식기나 금속 공예품은 전자레인지나 오븐, 고온 열풍 건조 기능이 있는 식기 세척기에 넣을 경우 표면 코팅이 손상되거나 변형이 올 수 있으므로 미온수와 부드러운 수세미로 세척하는 관리가 기본이다. 유기 제품은 장기간 보관 시 공기 중의 습기로 인해 표면 변색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마른 헝겊으로 물기를 완전히 닦아내고 마른 상태를 유지해야 고유의 은은한 광택을 지속할 수 있다.

전통 공예의 현대적 진화는 기술의 전승 방식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내고 있다. 국가무형유산 이수자나 전수자들이 전통 방식의 원형을 엄격하게 지키는 한편, 대학이나 사설 아카데미에서 디자인과 조형 예술을 전공한 청년들이 장인의 문하로 들어가 기술을 익힌 뒤 현대적 상품으로 발전시키는 협업 구조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기술을 보유한 고령의 장인과 시장의 유행을 읽어내는 젊은 기획자의 협업 프로젝트는 전통 기술의 단절을 막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지속적인 순환 고리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도 공예산업 육성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투자를 넓히는 추세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역 공예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청년 공예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창작 공간 지원 및 시제품 제작 지원 사업을 지속해서 추진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역시 전통 기술을 기반으로 한 혁신형 공예 기업에 사업화 자금과 지식재산권 확보 컨설팅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서울시는 북촌과 서촌 일대를 중심으로 공예 창작 스튜디오를 확충하고 시민들이 일상 도구를 직접 깎고 칠해보는 체험형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개설하고 있다. 청년 공예가들이 작업실 임대료 부담을 덜고 안정적인 창작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공공 임대 공방을 제공하는 지자체 지원 사업도 전국 단위로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국립무형유산원은 전승자들의 현대적 디자인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융합 교육 과정을 매 학기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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