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직해병 특별검사팀의 구명로비 의혹 수사를 받던 중 지인에게 자신의 휴대전화를 파손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에게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은 이 전 대표를 증거인멸을 시킨 교사범이 아니라 휴대전화 파손에 함께 가담한 공동정범으로 본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형사사건에서 자기 사건의 증거를 인멸한 행위는 원칙적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법리가 적용됐다. 휴대전화 파손과 폐기를 실행한 차모씨에게는 벌금 300만원이 확정됐다. 특검팀은 전원합의체 판단을 요청했으나 회부되지 않았다며 유감을 표하고, 판결문이 공개되면 구체적인 판단 이유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대법원, 교사 아닌 공동정범으로 판단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8일 이 전 대표의 증거인멸교사 혐의 사건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특검 측과 차씨가 제기한 상고는 모두 기각됐다. 휴대전화 파손·폐기를 실행한 차씨에 대해서는 벌금 300만원형이 유지됐다. 대법원은 증거인멸교사죄의 성립과 공동정범·교사범의 구분 등에 관한 원심 판단에 판결을 바꿀 잘못이 없다고 봤다. 대법원 2부는 원심의 법리 판단과 이유에 문제가 있는지도 살폈지만, 무죄 판단을 유지했다.
원심은 이 전 대표가 차씨에게 휴대전화 파손을 지시한 데 그치지 않고 직접 파손 행위에도 가담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이 전 대표를 교사범이 아니라 차씨와 함께 범행을 한 공동정범으로 봤다. 형사사건에서 자신의 증거를 없앤 행위는 원칙적으로 증거인멸죄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법리에 따라 이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도 1심 판단을 유지했고, 대법원 역시 이를 확정했다. 차씨는 휴대전화를 파손하고 폐기한 행위가 인정돼 유죄 판단을 받았다.
잠원한강공원서 휴대전화 파손·폐기
이 전 대표는 지난해 7월 15일 서울 서초구 잠원한강공원에서 지인 차씨에게 자신의 휴대전화를 파손·폐기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특검 수사 내용에 따르면 이 전 대표가 먼저 휴대전화를 땅바닥에 던졌고, 차씨가 이를 발로 짓밟은 뒤 한강공원 휴지통에 버렸다. 참고 기사에 따르면 해당 기기는 특검팀이 압수한 휴대전화보다 앞서 이 전 대표가 사용했던 기기로 알려졌다. 이 전 대표가 차씨에게 파손을 지시하고 두 사람이 함께 휴대전화를 망가뜨린 뒤 버렸다는 것이 수사와 재판에서 다뤄진 행위의 내용이다.
당시 순직해병 특검팀은 이 전 대표가 김건희 여사와의 친분을 이용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로비에 관여했는지를 수사하고 있었다. 특검팀은 이 전 대표가 임 전 사단장을 돕기 위해 김 여사에게 접촉했다는 의혹을 살폈다. 이 전 대표가 휴대전화를 파손한 혐의도 이 수사 과정에서 불거졌다. 참고인 수사를 받던 중 휴대전화 파손·폐기가 이뤄졌다는 내용이 보도됐지만, 재판의 쟁점은 휴대전화가 훼손됐는지에 그치지 않았다. 이 전 대표의 행위를 교사로 볼지 공동정범으로 볼지, 그리고 자신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없앤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됐다.
약식명령 청구 뒤 정식재판서 무죄
특검팀은 지난해 11월 이 전 대표에게 벌금 500만원, 차씨에게 벌금 300만원의 약식명령을 청구했다. 재판부가 사건을 정식 재판에 회부하면서 두 사람은 법정에서 혐의에 관한 판단을 받았다. 1심은 이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차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이 전 대표가 차씨에게 범행을 시킨 교사범이라기보다 함께 휴대전화를 파손한 공동정범에 해당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자기 형사사건의 증거를 스스로 없앤 경우에는 증거인멸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원칙을 적용했다.
특검 측이 1심 판단에 불복했으나 2심도 결론을 바꾸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이 전 대표가 휴대전화에 담긴 불법 로비 관련 내용이 드러날 경우 자신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며 “(해당 증거가) 자기 증거가 아닌 타인의 증거에 해당한다는 특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전 대표가 휴대전화 속 내용과 관련해 자신도 처벌받을 수 있다고 인식했으므로, 해당 증거를 타인의 증거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이 같은 1·2심 판단을 최종적으로 유지했다.
| 대상 | 약식명령 청구액 | 확정된 벌금액 또는 판단 |
|---|---|---|
| 이종호 | 500만원 | 무죄 |
| 차씨 | 300만원 | 300만원 |
특검, 전원합의체 회부 불발에 유감
특검팀은 판결 선고 뒤 입장문을 내고 “결과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사건의 유무죄에 그치지 않고 증거인멸 법리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에 대해 대법원이 정면으로 답해주기를 바랐기 때문에 전합 회부를 요청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특검팀은 자기 사건의 증거를 없앤 행위는 원칙적으로 처벌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시킨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처벌하는 현행 법리의 문제를 제기했다. 지시를 넘어 직접 실행에 가담한 사람이 오히려 처벌을 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특검팀은 “피고인 이종호는 지시를 넘어 범행을 실행까지 했음에도 무죄가 됐다”며 “증거를 없앤 사람의 책임으로 연결하지 못한 결론은 많은 국민께서 납득하기 어려우실 것”이라고 밝혔다. 또 “증거를 없애고도 책임을 피할 수 있다는 선례가 남는다면, 앞으로 수사 대상자들이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을 막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특검팀은 판결문이 공개되면 구체적인 판단 이유를 살펴보고, 입법과 학계, 사법부 안에서 관련 문제가 논의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한편 이 전 대표는 별도 사건에서 실형이 확정된 바 있다. 그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1차 주포’로 알려진 이정필씨의 형사재판에서 실형 대신 집행유예를 선고받도록 힘써주겠다며 이씨에게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원문에 따르면 금품 수수는 2022년 6월부터 2023년 2월까지 25차례에 걸쳐 이뤄졌고, 액수는 8000여만원이었다. 이 사건에서 이 전 대표는 지난 7월 징역 1년 2개월을 확정받았다.
대법원 판결로 이 전 대표의 휴대전화 파손 지시 혐의 재판은 무죄 확정으로 끝났다. 특검팀은 판결문이 공개되면 구체적인 판단 이유를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며, 증거인멸 법리를 둘러싼 논의가 입법·학계·사법부에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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