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고려인마을 산하 고려인문화관이 1937년 소련 당국의 고려인 강제이주를 앞두고 연해주 재갑동에서 벌어졌던 이별의 사연을 관련 기록을 통해 다시 조명하고 나섰다.
10일 고려인마을에 따르면 고려인 1세대 작가 김기철(1907~1993)은 자신과 동시대인들이 직접 겪은 일을 바탕으로 1990년 역사기록소설 『이주초해; 두만강-씨르다리야강』을 펴냈다. 이 작품에는 두만강 너머 연해주 뽀시에트 구역 고려인마을 재갑동 ‘붉은노을’ 꼴호즈 주민들이 강제이주 직전 겪은 비극이 담겨 있다.
기록에 따르면 1937년 9월 재갑동 들판에는 곡식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주민들은 풍작을 기대하며 추석을 준비했고 집집마다 술을 담그고 가축을 살찌우던 참이었다. 그러나 이틀 뒤 모든 주민이 기차에 실려 떠나야 한다는 당국의 강제이주 명령이 갑작스레 전해졌다.
주민들은 지어놓은 집과 논밭, 길러온 가축을 대부분 남겨둔 채 떠나야 했다. 추석을 위해 담가둔 탁주를 냇가에 쏟아부으며 눈물을 흘렸고, 더는 데려갈 수 없는 돼지와 닭을 잡아 쌀로 떡을 빚어 이웃과 나눠 먹었다. 풍년과 명절을 축하하려던 음식이 하루아침에 고향과의 이별을 앞둔 ‘슬픈 잔치’ 상으로 바뀐 셈이다.
혼인을 앞두고 있던 젊은이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이미 날짜까지 정해뒀지만 갑작스러운 이주 명령으로 정식 혼례를 치르지 못하게 되자, 양가는 서둘러 음식을 마련하고 친인척을 불러 자녀들의 예식을 급히 치렀다. 가장 기뻐야 할 혼례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고향에서 이별의 슬픔 속에 치러진 것이다.
기록은 당시 상황을 “뽀시에트 바닷가를 쉼 없이 쓸어내리는 짜디짠 파도”에 빗대며,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날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고 전한다. 평범한 이들의 일상이 이틀 만에 무너진 정황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 기록은 단순한 통계나 사건 서술을 넘어 강제이주를 겪어낸 사람들의 삶과 감정을 보여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
재갑동의 사연은 한 마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 연해주 곳곳에서 이주 열차에 올라야 했던 수많은 고려인 가족이 겪은 이별과 상실을 대변하는 생활사 기록이기도 하다. 터전을 잃은 고려인들은 이후 중앙아시아의 낯선 땅에서 다시 생존 기반을 일궈야 했고, 그 역사는 오늘날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사는 고려인 후손들의 디아스포라로 이어졌다.
김병학 고려인문화관 관장은 “재갑동의 슬픈 잔치는 거대한 역사 속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았던 평범한 고려인들의 삶과 눈물을 보여주는 기록”이라며 “추석을 기다리던 주민들이 불과 이틀 만에 고향을 떠나야 했고, 기쁨이어야 할 잔치와 혼례마저 이별의 자리가 됐다는 사실은 지금 읽어도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강제이주의 역사를 몇 명이 어디로 이동했다는 숫자로만 기억해서는 당시 사람들이 겪은 아픔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기억이 담긴 기록을 발굴·보존해 강제이주를 ‘사람의 역사’로 후세에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려인문화관은 소장 중인 문서와 신문, 사진, 문학자료 등 다양한 사료를 바탕으로 고려인 선조들의 연해주 이주와 항일독립운동, 정치적 탄압과 1937년 강제이주, 중앙아시아 정착, 대한민국 귀환으로 이어지는 160여 년의 디아스포라 역사를 알리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개인의 기억을 발굴해 역사교육 자료로 활용하려는 이런 시도는 강제이주를 추상적 사건이 아닌 구체적 삶의 기록으로 남긴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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