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1TV '역사스페셜-시간여행자'가 30일(일) 오후 9시 30분 35회 '호랑이를 잡아라! 조선 특수부대 착호갑사' 편을 방송한다. 이번 회차는 조선을 휩쓴 호환의 원인과 규모, 이를 막기 위한 대응 전략을 통해 조선의 통치 이념 '위민제해(爲民除害)'가 어떻게 실행됐는지 돌아본다.
한반도는 신석기 시대부터 호랑이의 주요 서식처였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도 호랑이가 새겨져 있으며, 시베리아 호랑이를 백두산 호랑이라 부르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들어 국가 주도의 농지 개간 사업이 이어지면서 생태계 붕괴가 초래됐고, 서식지와 먹이를 잃은 호랑이가 인간의 땅으로 향하게 됐다.
국가적 재난으로 번진 호환
호환은 제주도와 울릉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매년 다수의 사상자를 냈고, 민가와 도성, 궁궐까지 호랑이가 침투하는 일이 벌어졌다. 유몽인의 『어우집』 「호정문」에는 "밭 갈다가 해를 당하고, 김매다가 해를 당하고, 물 긷다가 해를 당해서, 깊은 산골 우거진 수풀 속에서 목숨을 잃고 혈육이 낭자한 채 귀신이 되어 밤새 울부짖는 자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심승구 전 한국체육대 교양학부 교수는 "조선 왕조는 이런 호환과 흉년 그리고 전염병을 조선의 가장 큰 재난 중 하나로 인식할 정도였다"고 설명한다.
착호갑사와 백액호의 등장
조선은 호환에 대응하기 위해 호랑이를 잡는 특수부대 '착호갑사'를 조직했다. 착호갑사는 궁술, 창술, 근력 등에서 최고 수준의 시험을 거쳐 선발됐으며, 호환이 급증하면서 세종 때 80명이었던 인원이 성종 때는 440명까지 늘었다. 이들은 호전(虎箭), 함기(檻機) 같은 특수 무기를 사용해 산을 누볐다. 『경국대전』 「병전」에는 "착호갑사를 선발할 때는 활과 창을 시험하는데 힘이 세고 용맹한 자를 선택하여 임명한다. 창이나 화살로 호랑이를 2마리 이상 잡은 경험이 있는 자는 시험을 면제하고 착호갑사에 임명한다"는 내용이 전한다. 1571년에는 이마가 흰 호랑이 '백액호'가 나타나 가축과 사람 400여 두를 죽였다. 『선조실록』 선조 4년(1571년) 10월 27일 기록에는 "백액호가 공순릉 산림과 고양 등지에 출몰하여 사람과 가축 400여 두를 죽였으므로 조정에서 대대적으로 포획하게 했다"고 적혀 있으며, 선조는 한 달간 대대적인 토벌 작전을 지시했다.
민족 상징에서 침탈의 제물로
호랑이는 무관의 흉배와 관모 장식, 신부 가마 위에 얹는 가죽 등으로 조선 사회에서 용맹과 액운을 물리치는 상징으로도 여겨졌다. 그러나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호랑이 고기를 주문하면서 일본 장수들이 한반도에서 호랑이 사냥에 나섰고,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가 '해수 구제' 사업을 명분으로 한반도 호랑이를 멸종에 이르게 했다. 이 방송분은 이러한 역사적 정황을 함께 조명한다.
| 항목 | 내용 |
|---|---|
| 프로그램 | 역사스페셜-시간여행자 35회 |
| 방송 | KBS 1TV, 2026년 8월 30일(일) 오후 9시 30분 |
| 주제 | 호랑이를 잡아라! 조선 특수부대 착호갑사 |
| 자문 | 심승구 전 한국체육대 교양학부 교수 |
출처 : KBS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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