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고려인마을이 러시아 고려신문과 공동으로 연해주 지역 독립유공자 후손 찾기 사업을 진행 중인 가운데, 서른 번째 인물로 김치보(1859~1941) 선생을 조명했다. 평양 출신인 김 선생은 1908년 연해주로 이주해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한약방 ‘덕창국’을 운영하며 독립운동가들의 거점으로 활용했다.
김 선생은 권업회 통신부장, 대한국민의회 의원 등을 역임하며 항일 운동의 기틀을 다졌다. 특히 1919년 3월 대한노인동맹단을 조직해 초대 단장을 맡았으며, 강우규 의사의 서울역 의거를 지원하는 등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무장 투쟁의 배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1996년 정부는 그의 공로를 인정해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일제 강점기 연해주 독립운동의 전반을 아우른 김 선생의 행적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다만 선생의 묘소 위치와 후손의 행방이 여전히 확인되지 않고 있어, 향후 체계적인 자료 조사와 발굴 작업이 시급한 과제로 남았다.
고려인마을 관계자는 “김치보 선생은 연해주 독립운동사의 주요 현장을 지킨 인물”이라며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일대에 흩어진 증언을 추적해 묘소 확인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 · · · · · · · ·
관련기사
▶ 광주 월곡2동 달아실상인회, 고려인마을 특화거리 환경 개선 나서
· · · · · · · · · ·
스페셜타임스는 AI 기술의 도움을 받아 더 빠르고 다양한 뉴스를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