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날씨에 몰리는 문화생활 수요, 오픈런 매진 속출

직장인 김모 씨(38)는 지난달 말 오전 예매 창을 열어두고 알람까지 맞췄지만 원하는 좌석을 잡지 못했다. 대형 뮤지컬의 티켓 오픈 시작 3분 만에 1층 전 좌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김 씨는 "예매 전쟁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며 "결국 취소표를 기다리다 다른 요일로 일정을 바꿨다"고 말했다. 그는 "몇 년 전만 해도 하루 이틀 여유를 두고 예매해도 원하는 자리를 골랐는데 요즘은 아예 접속조차 힘들다"고 덧붙였다.
선선해진 날씨와 함께 가을 공연·전시 시장이 본격적인 성수기에 접어들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9월 들어 뮤지컬 티켓 판매량은 여름철 대비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대형 창작 뮤지컬과 라이선스 뮤지컬이 잇따라 개막하거나 재연에 들어가면서 티켓 예매 사이트 접속자가 몰리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관계자는 "가을철은 통상 상반기 대비 매출이 큰 폭으로 뛰는 시기"라며 "특히 9월 말부터 11월까지 대형 공연장 가동률이 연중 최고 수준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올가을 공연가에는 브로드웨이 라이선스 작품과 국내 창작 뮤지컬이 동시에 무대에 오른다. 대극장급 공연장에서는 스테디셀러로 꼽히는 작품들의 재연이 이어지고 있으며, 신작 창작뮤지컬도 관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여기에 아이돌 출신 배우들이 캐스팅되면서 팬덤을 중심으로 한 예매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시 분야에서도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주요 미술관이 가을 기획전을 잇따라 선보이며 관람객을 맞고 있다. 인상주의나 근현대 회화를 주제로 한 해외 소장품 전시가 특히 관심을 모으는 분위기다. 일부 사립 미술관은 해외 유명 컬렉션을 통째로 들여와 한정 기간 전시하는 방식으로 관람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가을철 공연·전시 수요가 늘어나는 배경에는 계절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공연 기획사 관계자는 "여름철 무더위로 실내외 활동이 줄었던 관객들이 날씨가 선선해지면 야외활동과 함께 문화생활도 함께 늘리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추석 연휴와 학교 개학, 직장인들의 가을 정기 인사 시즌이 겹치면서 여가 시간을 계획적으로 배분하려는 심리도 반영된다는 해석이다. 이 관계자는 "연말 시상식이나 각종 문화 행사 일정과 맞물려 마케팅 효과가 배가되는 것도 가을 성수기를 만드는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수요가 몰리는 만큼 예매 경쟁도 덩달아 치열해진다는 점이다. 티켓 예매 플랫폼에서는 인기 공연의 경우 오픈과 동시에 서버 접속이 지연되거나 대기열이 수천 명 단위로 형성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일부 관람객들은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부정 예매 의혹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예매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매크로 차단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지만 완전한 근절은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탐지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이를 우회하는 수법도 함께 진화하고 있어 매 시즌 새로운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암표 거래로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는 매년 가을 성수기를 전후해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한 웃돈 거래 피해 상담이 접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연법에 따라 매크로를 이용한 부정 판매는 처벌 대상이지만, 개인 간 직거래 형태의 암표 거래는 단속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공연예술 분야 연구위원은 "정가 이상의 웃돈을 주고 거래하는 관행이 반복되면 일반 관객의 접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예매처와 제작사가 본인 확인 절차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대형 공연은 예매자 본인과 실제 입장자가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도입해 재판매 자체를 원천적으로 막는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전시 분야는 뮤지컬만큼 예매 경쟁이 격렬하지는 않지만, 인기 기획전의 경우 특정 시간대 입장권이 조기에 소진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한 미술관 관계자는 "주말 오후 시간대와 마감 임박 시기에 예매가 몰리는 경향이 뚜렷하다"며 "평일 오전이나 개막 초반을 활용하면 비교적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평일 낮 시간대를 이용하는 30~40대 직장인 관람객이 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관계자는 "연차를 내고 평일 오전에 방문하는 관람객 비중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혼자 조용히 전시를 감상하려는 수요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가을 문화생활을 계획하는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예매 전략을 공유하는 움직임도 늘고 있다. 여러 예매처를 동시에 모니터링하거나, 공연 오픈 시간에 맞춰 미리 로그인과 결제 수단을 등록해두는 식이다. 회사원 이모 씨(41)는 "예매 하나 성공하려고 회의 중간에 몰래 창을 켜둔 적도 있다"며 "그만큼 가을에는 보고 싶은 공연이 몰려 있어 선택하기가 오히려 어렵다"고 전했다. 대학원생 박모 씨(27)는 "전시는 그나마 여유가 있어서 학기 중에도 틈틈이 예매해 다닌다"며 "뮤지컬은 티켓값도 부담스러워서 한두 편만 골라 예매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뮤지컬 티켓 판매액은 매년 가을 시즌에 연중 최고치를 기록하는 흐름을 보여왔다. 전시 업계에서도 가을을 연간 관람객 수 목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시기로 보고 마케팅과 라인업 구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공연장과 전시장 모두 하반기 매출 비중이 상당히 높은 편"이라며 "관람객 편의를 위한 온라인 예매 시스템 개선을 관련 업계와 함께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티켓 예매 경쟁이 매년 되풀이되면서 예매처와 주최 측의 시스템 개선 요구도 함께 커지고 있다.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통합전산망
한국소비자원
국립현대미술관
한국공연예술경영협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