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 수·수면 기록 연동한 보험 상품 확산에 개인정보 우려도 커져

매일 아침 손목시계형 웨어러블 기기로 걸음 수와 수면 시간을 확인하는 일이 습관이 된 김모 씨(41)는 최근 가입한 보험 상품에서 건강 데이터를 제출하면 보험료를 일부 할인해준다는 안내를 받았다. 걷기 목표치를 채우고 수면 시간을 일정 수준 유지하면 매달 보험료가 조금씩 낮아지는 구조였다. 김씨는 "처음엔 반가웠지만 내 생활 패턴이 그대로 회사에 넘어간다는 게 걸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할인 폭이 크지 않은데도 매일 걸음 수를 채우려고 신경 쓰게 되더라"며 "이 데이터가 나중에 어떻게 쓰일지 약관을 다시 들여다보게 됐다"고 덧붙였다.

웨어러블 기기로 측정한 걸음 수, 심박수, 수면 데이터 등을 보험료 산정이나 보험 상품 설계에 연계하려는 움직임이 국내외 보험업계에서 확산하고 있다. 건강 관리 실천 정도에 따라 보험료를 할인해주거나 포인트를 적립해주는 형태가 대표적이다. 일부 보험사는 이미 걸음 수 목표 달성 시 보험료 일부를 환급하는 특약을 운영하고 있고, 스마트워치 제조사와 제휴해 실시간 건강 데이터를 보험 심사나 갱신 절차에 반영하는 방식을 검토하는 곳도 늘고 있다. 걸음 수 목표는 하루 8000보에서 1만보 사이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고, 목표를 연속으로 채우는 기간에 따라 할인율이 단계적으로 높아지는 구조를 택한 상품도 있다.

이런 흐름의 배경에는 만성질환 예방과 관련한 사회적 관심이 있다. 규칙적인 신체 활동과 수면 관리가 심혈관 질환이나 대사증후군 위험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은 여러 의학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돼 왔다. 보험업계는 가입자의 건강 관리 노력을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다면 보험료 산정의 형평성을 높이고, 가입자에게는 건강 관리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걸음 수나 운동 빈도 같은 단순 지표부터 심박변이도, 수면 단계 분석까지 측정 항목도 점차 세분화하는 추세다. 일부 상품은 여기에 더해 스트레스 지수나 혈중 산소포화도 같은 부가 지표까지 반영해 건강 점수를 산출하고, 이 점수를 매달 갱신해 보험료에 반영하는 방식도 시도하고 있다.

문제는 이 데이터가 어디까지, 어떻게 활용되느냐다. 건강 데이터는 민감정보로 분류돼 보험사가 이를 수집하고 활용하려면 가입자의 명시적 동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보험료 할인이라는 유인이 걸려 있을 때 소비자가 충분한 정보를 이해한 상태에서 동의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약관에 명시된 동의 항목이 여러 페이지에 걸쳐 나열돼 있는 경우가 많아, 정작 어떤 데이터가 누구에게 어떤 목적으로 전달되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동의 버튼을 누르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보험업 관련 협회 관계자는 "건강 데이터를 활용한 특약은 어디까지나 가입자의 자발적 선택에 기반해 설계되고 있다"며 "다만 데이터 수집 범위와 보관 기간, 제3자 제공 여부를 약관에 명확히 고지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정보 보호 분야를 연구하는 한 연구위원은 "웨어러블 데이터는 위치, 생활 패턴, 건강 상태를 동시에 드러낼 수 있는 고밀도 정보"라며 "보험료 산정이라는 목적을 넘어 향후 갱신 거절이나 보장 범위 축소의 근거로 쓰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사용 목적을 엄격히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특정 질환의 전조로 해석될 수 있는 심박수나 수면 패턴 이상 데이터가 축적되면, 가입자 본인도 모르는 사이 위험군으로 분류될 소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건강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보험 상품이 확산하면서 데이터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재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정 질환 위험군으로 분류된 가입자가 향후 보험 가입이나 갱신에서 불리한 조건을 적용받을 가능성, 데이터 유출 시 발생할 수 있는 2차 피해 등이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쟁점이다. 국내에서도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중심으로 건강 관련 마이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을 정비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지만, 웨어러블 기기에서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방대한 데이터를 보험 산업에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한 구체적 기준은 아직 정립 단계에 있다. 금융감독원 역시 건강관리 특약의 소비자 보호 실태를 점검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어, 관련 제도 정비가 속도를 낼 가능성이 거론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보험료 할인이라는 즉각적인 혜택과 개인정보 노출이라는 잠재적 위험 사이에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보험 상품 가입 전 건강 데이터 제공 특약의 세부 약관을 꼼꼼히 확인하고, 수집되는 데이터의 종류와 보관 기간, 해지 시 데이터 삭제 절차 등을 사전에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건강 데이터를 근거로 보험료가 인상되거나 갱신이 거절될 수 있는 조건이 약관에 포함돼 있는지는 반드시 확인해야 할 대목으로 꼽힌다.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할인 혜택만 강조된 광고 문구에 이끌려 가입하기보다, 데이터 활용 동의서 조항을 하나씩 읽어보고 궁금한 부분은 상담 창구에 직접 문의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의료계에서도 웨어러블 데이터의 정확성 문제를 함께 짚는다. 한 내과 전문의는 "소비자용 웨어러블 기기의 심박수나 수면 측정값은 의료기기 수준의 정밀도를 보장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데이터가 보험료 산정처럼 금전적 이해관계가 걸린 영역에 쓰일 때는 측정 오차로 인한 불이익 가능성도 함께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동일한 활동을 해도 기기 제조사나 착용 위치에 따라 측정값이 달라지는 사례가 보고돼 왔다는 점도 소비자들이 유념할 부분이다. 손목 착용 위치가 조금만 헐거워도 심박수 측정값이 실제보다 높거나 낮게 나오는 경우가 흔하고, 수면 단계 분석 역시 기기별로 판정 기준이 달라 같은 밤의 수면을 두고도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일부 보험사는 특정 시점의 단발성 수치가 아니라 장기간 누적된 경향성을 지표로 활용하기 때문에 개별 측정 오차의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입장을 내놓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누적 데이터라 하더라도 애초에 기기 자체의 측정 편차가 반복적으로 쌓이면 왜곡된 경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반론을 제기한다.

금융당국과 보험업계는 건강 데이터 연계 상품의 확대에 발맞춰 관련 가이드라인 마련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터 활용의 투명성을 높이고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소비자단체와 학계에서 동시에 나오고 있다. 웨어러블 기기 보급이 늘어나면서 건강 데이터와 보험 상품을 둘러싼 논의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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